(2020-10-12) 화양구곡과 산책과 불빛 속 대청댐
오후가 되었으니 슬슬 산책이나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집 옆 금강변을 산책하려다가, 늘 다니던 곳이라 좀 지겹고 하여 이번엔 청주 쪽으로 한번 가볼까하는 생각이 든다. 청주는 세종과 바로 붙어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동안 거의 가 본 적이 없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미동산 수목원>이라는 곳이 있다. 그래, 그리로 가보자. 가는 중간에 대청댐이 있다. 미동산 수목원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대청댐을 들리기로 하였다.
<미동산 수목원>은 청주시에 있다고 하는데 거리가 꽤 멀다. 집에서 거의 50킬로 이상되며, 시간도 1시간 정도 걸리는 것으로 나온다. 내비가 안내해주는대로 따라가니 청주에서 보은 속리산 가는 길 도중에 있다. 한 시간 정도 차를 달려 겨우 수목원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주차장에 차도 전혀 보이지 않으며, 입구쪽으로도 드나드는 사람이 없다. 가까이 가보니 오늘은 월요일이라 정기 휴장일이라 한다. 직원들이 상시적으로 근무하는 왠만한 관광시설들은 대개 월요일이 정기휴일이다. 그걸 뻔히 알면서 또 그 생각을 못하고 이렇게까지 달려왔으니, 나도 참.....
여기서 조금만 가면 <화양동 계곡>, 그러니까 <화양구곡>이 있다. 이왕 왔는 김에 화양구곡으로 가기로 하였다. 화양동 계곡은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쯤 한번 와서 1박2일로 물놀이를 한 적이 있는데, 그러고 보니 근 30년 가까이 된 것 같다. 그때 화양동 계곡물에 다슬기가 많다고 하여 준비해와서, 밤에 다슬기를 잡으러 갔다가 꽝친 기억이 난다.
<미동산 수목원>에서 30분이 채 못 걸려 화양동 계곡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상큼한 나무 양기가 코를 자극한다. 넓은 주차장에는 차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평일날 여행을 오면 이게 좋은 점이다. 사람들에게 시달리지 않고 넓은 자연을 완전히 독점할 수 있다.
계곡을 따라 산 위 쪽으로 넓은 길이 나 있다. 자동차도 함께 다니는 길로 보이는데, 포장길을 반으로 나누어 한 쪽은 차가 다니고, 한 쪽은 보행자 전용으로 만들어놓았다. 인도에다가 자동차 다니는 길도 보행도로로 만들었으니까 꽤 넓게 넉넉하게 걸을 수 있다. 아주 완만한 오르막 길로 되어 있어 걷기가 아주 좋다. 옆의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나무 향기를 맡으며 천천히 계곡을 거슬러 산책을 한다. 길 양쪽의 가로수가 우거져 완전히 나무로 된 터널을 만들고 있다.
옛날에 왔을 때는 계곡 옆은 전부 음식점이나 민박집이 난립해있었다. 아마 대부분 무허가 건축이었는지, 지금은 깨끗이 정비되어 그런 집들은 보이지 않으며, 가끔 카페나 펜션이 듬성듬성 보인다. 이미 가을이라 여름처럼 계곡물은 많지 않지만, 가을날 늦은 오후, 이제 막 시작할 듯한 단풍이 한편으로는 쓸쓸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가을다운 정취를 준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계곡은 어딜 가더라도 온통 삼겹살 굽는 냄새로 가득 찼다. 아니 계곡 뿐만 아니라 온 산과 바다가 다 그랬다. 그 때는 누구든 계곡에 자리를 잡자 마자 바로 버너를 피우고 고기를 굽는 것이 일상화된 패턴이었다. 온 일행이 둘러앚아 삽겹살을 구으며, 바리바리 사온 술이나 음식을 먹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때부터인가 계곡에서 취식행위를 못하게 하자 무슨 재미로 계곡에 놀러가냐라는 불만도 적지 않았지만, 지나고 나서보니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참 걸어올라갔는데, 시간가는 줄을 모르겠다. 가다보니 잘 지은 한옥 건물이 보인다. <화양서원>이다. <화양선원>은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을 모시기 위해 만들어진 서원으로 조선시대의 유명한 서원 가운데 하나였다. 건립할 당시에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후세에 들어 그 행패가 극심하여 대원군이 적폐 서원을 철폐할 때 그 대표적인 서원의 하나로서 폐쇄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다시 윗 쪽으로 걸어 올라가다 보니까 문득 시간이 너무 지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5시, 조금 있으면 어두워질 시간이다. 아쉽지만 할 수 없다. 발길을 돌려 서둘러 내려왔다. 다음에는 시간을 좀 더 넉넉히 잡아 오도록 하여야 겠다.
차를 출발하니 날이 어두워진다. 이대로 바로 집에 돌아갈까 생각하다가, 요즘은 왠만한 명소에는 조명시설이 잘 되어 있으니까 괜찮을 거라 생각하여 계획한대로 대청댐 전망대를 거쳐가기로 하였다. 대청댐 초입으로 들어서니 이미 날은 깜깜하다. 차가 거의 다니지 않은 길로 한참을 올라가다 보니 대청댐 전망대가 나온다. 넓은 주차장은 텅텅 비었다. 주차장 옆 편의점 불빛만이 주차장을 밝히고 있다.
주차장 옆 언덕에 정자가 하나 세워져 있는데, 그곳이 바로 대청댐 전망대이다. 밤이 되어 어두우니까 전기 등을 몇 개 켜 두었을 뿐 장식을 위한 조명시설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다른 관광객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전망대에 서니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넓게 펼쳐져 있는 대청호가 별빛에 으슴프레 비친다. 호수 한 쪽에는 큰 건물처럼 보이기도 하는 곳에 많은 불빛이 켜져 있는데, 그곳이 댐과 그 관리 사무소 등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불빛 때문에 구조물의 모습이 어떤지는 알기 어렵다.
대청호는 이번이 세 번째다. 아이들이 어릴 때 가족 놀이로 한번 왔었고, 10년전 대전에서 근무할 때 휴일날 벚꽃 구경을 한다고 잠시 온적이 있다. 오늘은 밤에 와서 더 이상 관광을 한다는 것은 틀렸으니까, 1, 2주 지나 단풍이 절정일 때 <청담대>와 묶어 다시 한번 찾아야 겠다. 늦은 가을, 길을 온통 덮은 노란 은행잎 낙엽을 밟으며 걷는 <청남대> 산책도 각별한 재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