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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May 12. 2024

드라마: 독안룡 마사무네(獨眼龍政宗)

일본 전국시대의 효웅 다테 마사무네의 일생

■ 개요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KBS의 주말 역사 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이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것 같다. KBS는 오래전부터 주말마다 역사 대하드라마를 방영하고 있는데,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것 같다. 일본에서는 국영방송인 NHK가 1963년부터 대하 역사드라마를 시작하였다. 1년에 걸쳐 매주 일요일 저녁에 방영하는 드라마는 한 편의 드라마가 대개 50회 정도로 구성되어 있는데, 2024년 현재 방영 중인 <빛나는 그대에게>(光る君へ)까지 포함하면 63편이 방영되었다.  


수많은 일본의 역사상의 인물을 영웅으로 재탄생시킨 이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오늘 소개하는 <독안룡 마사무네>는 1987년에 방영되었는데, 전국시대 동북지방의 효웅(梟雄)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의 일생을 다룬 드라마이다. 이 드라마는 평균 시청률 39.7%, 최고시청률 47.8%를 기록하여 대하드라마 역사상 가장 인기가 있었던 드라마로 평가되고 있다. 


■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라는 인물에 대하여  


다테 마사무네는 일본 동북지방의 센다이(仙台)를 거점으로 하는 전국무장(戰國武將)으로서, 동북 지방에서 큰 위용을 떨쳤다. 오다와라 전투(小田原合戦)를 계기로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에게 충성을 맹세했으며, 히데요시가 죽은 후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측에 가담하였다. 도쿠가와막부가 출범한 후에는 부쇼군(副將軍)이라는 이름을 얻을 정도로 막부에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다테 마사무네의 대대의 본거지는 요네자와(米沢)였으냐, 그의 대에서 센다이로 이동하여 센다이 성을 건축하고 그곳을 터전으로 그의 후손들이 대대로 이 지역을 다스렸다. 다테 마사무네의 영지는 62만 석으로서, 전체 무장들 가운데 5위권 정도 된다고 할 것이다. 일본의 전국 무장들을 클래스로 구분한다면 S급으로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들 수 있을 것이며, 다테 마사무네는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 다케다 신겐(武田信玄), 모리 데루모토(毛利輝元),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 등과 함께 그 아래 A등급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 줄거리


이 드라마는 50회에 걸쳐 방영된 대하드라마이기 때문에 여기서 줄거리를 모두 설명하기는 어렵다. 크게 보면 이 드라마는 3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 부분은 다테 마사무네가 동북지방의 굴지의 무장으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이다. 전국시대에는 동북지방에서도 수많은 무장들이 각축하고 있었다. 다테 마사무네는 지금의 아키타 현에 속한 데와 지방(出羽国) 요네자와에서 제법 세력을 가진 무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때는 전국시대인지라 동북지방에서도 많은 무장들이 서로 각축을 벌이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마사무네는 전쟁에서 아버지를 잃었지만, 젊은 나이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무장이 된 후 차근차근 영지를 늘려나갔다. 


이 당시 일본의 동북지방은 아주 변방에 불과하였다. 정치과 권력은 간사이(關西) 지방에 집중되어 있었다. 오나 노부나가나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모두 간사이 일대에서 전국을 호령하고 있었다. 이런 속에서 다테 마사무네도 전국의 패권을 노린다. 

두 번째 부분은 다테 마사무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중앙정치에 참여하고부터 도쿠가와막부가 수립되기까지의 이야기이다. 오다 노부나가의 뒤를 이어 패권을 잡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다테 마사무네를 오사카로 불러들여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할 것인지 아니면 맞설 것인지 결정하라고 겁박한다. 마사무네는 히데요시에게 충성을 맹세한다. 그렇지만 뒤에서는 패권의 꿈을 포기하지 않으며, 히데요시도 그에 대한 의심을 지우지 않는다. 히데요시가 몇 번이나 반역 혐의로 그를 의심하여 취조하였으나, 그는 그때마다 겨우 위기를 벗어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후 이제 권력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로 넘어갔다. 이전에 마사무네가 히데요시의 의심을 살 때는 이에야스가 그를 많이 옹호해 주었지만, 스스로 권력을 잡은 이에야스는 마사무네에 대한 경계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이에야스 역시 그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경계하였지만, 마사무네는 마치 외줄 타기를 하듯 그 위기를 극복하였다. 


세 번째 부분은 도쿠가와막부가 출범한 이후의 이야기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막부를 설치하고 스스로 쇼군이 되어 권력을 움켜 잡았지만, 언제 어디서 반역이 일어날지 몰라 항상 노심초사하고 있다. 다테 마사무네 62만 석이라면 막부에 대항할 무력을 갖추고 있다. 물론 마사무네 혼자서 막부에 맞선다는 것은 어림도 없다. 그렇지만 그가 동북지방의 무장들과 손을 잡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래서 이에야스는 한편으로는 그를 달래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를 경계하면서 그를 관찰한다. 

한편 마사무네로서도 매일매일이 바늘방석에 앉은 나날이었다. 최고권력자 이에야스는 자신에 대한 경계를 조금도 늦추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에게 반역의 마음이 있다는 증거를 잡는다면 이에야스는 가차 없이 자신의 목을 칠 것이다. 반드시 자신이 반역할 마음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실제로는 그런 마음이 없더라도 조그만 꼬투리라도 잡히면 영락없이 역적으로 몰려 집안이 몰살할 수 있다. 


이에야스는 자신의 아들 마쯔다이라 타다데루(松平忠輝)를 마사무네의 딸을 결혼시킨다. 마사무네를 잡아두기 위한 정략결혼이다. 그런데 타다데루는 이에야스의 서자로서 항상 아버지가 자신을 소홀히 여긴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다 거칠 것 없는 성격이라 깊은 생각 없이 독단적으로 행동한다. 그것이 오히려 이에야스로 하여금 역모의 뜻으로 비쳐진다. 마사무네로서는 이에야스에 대한 충성의 맹세로서 맺은 정략결혼인데, 오히려 사위로 인해 이에야스의 의심을 더 사는 꼴이 되었다. 


몇 번이나 마사무네는 막부에 대한 반역의 혐의가 씌워지지만 그때마다 어렵게 그 고비를 넘긴다. 그러면서 막부의 원로로서 스스로의 위치를 반석에 올린다. 

마사무네는 본거지를 센다이로 옮겨 센다이 성을 건설하고, 이를 자손 대대로의 터전으로 삼게 한다. 이후 마사무네의 후손들은 센다이를 중심으로 센다이번 62만 석을 다스리며 동북지방의 실력자로서 지내게 된다. 


■ 약간의 평


NHK 대하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을 아주 비상한 인물로 표현하지만 드라마를 볼 때마다 사실 그랬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다테 마사무네는 어릴 때 병으로 한쪽 눈을 잃었다. 그래서 이후 그가 무용을 떨치자 “독안룡”(獨眼龍), 즉 외눈박이 용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의 집안은 동북지방의 제법 실력 있는 영주였는데, 그의 대에 이르러 여러 차례의 전투를 거쳐 영지를 확대하여 동북지방의 실력자로 등장하였다. 그렇지만 비록 그가 동북지방의 실력자라 하지만, 다른 무장들을 압도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다른 무장들에 비해 실력이 좀 더 강하였던 정도라 보면 될 것이다. 

그는 여러 차례 전쟁에서 승리하는데, 객관적으로 볼 때 그리 큰 전쟁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마사무네는 어느 정도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을까? 마사무네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영주가 되었을 때 그의 영지는 30만 석 정도였다. 보통 100석에 군사 2~3명 정도를 보유할 수 있으니까 마사무네가 보유하는 병력은 약 6~7천 명, 아무리 많아도 1만 명을 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병력이 영지 내에 있는 여러 성에 분산되어 있었으므로, 마사무네의 전쟁에 동원되는 병력은 기껏해야 몇천 명 정도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일본의 중심지역에 있던 큰 무장들은 이미 몇만 명이 투입되는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예를 들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오다와라 정벌에서는 도요토미 측이 약 22만, 호죠 측 약 8만 명의 군사가 동원되었다. 마사무네로서는 이러한 대규모 전투는 한 번도 치러보지 못하였다. 그런 점에서는 일반적인 평가와는 달리 무장으로서의 그의 능력은 제대로 시험받은 적이 없다고 할 것이다.    


마사무네의 체격조건은 어떠하였을까? 이 드라마에서 마사무네 역을 맡은 와타나베 켄(渡辺謙)은 키 184센티의 건장한 체구를 가진 배우이다. 그런데 30여 년 전 마사무네의 무덤이 발굴되어 그의 유골과 유품들이 출토되었다. 유골을 토대로 전문가들이 추정한 바에 따르면 그의 키는 158센티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일본인으로서는 작지 않은 키였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위풍당당한 체격의 소유자가 아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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