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언제나 마음은 태양>(To Sir with Love)은 영국 런던의 빈민가에 있는 고등학교에 에 새로 부임한 흑인 선생과 아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서 1967년 영국에서 제작되었다. 새로 부임한 교사는 아이들이 비뚤어지게 된 것은 상처받고 자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아이들의 마음을 치유해 주며, 교사에게 반항만 하던 학생들은 자신들을 이해해 주는 선생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바른 길로 나가며, 졸업 파티를 하는 날 “선생님에게 사랑을 바친다.”는 쪽지로 교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시한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교사 체커리 역으로는 당시 인기절정이었던 흑인배우 시드니 포에티에가 맡았다.
이 영화의 원제목은 “To Sir with Love”, 즉 “선생님에게 사랑을”이다. 그런데 이것이 “언제나 마음은 태양”으로 번역된 것은 일본에서 이 영화의 제목을 “언제나 마음에 태양을”(いつも心に太陽を)로 번역하였기 때문에 이를 따라한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는 교사와 학생 사이의 교감을 그린 것이기도 하지만, 백인학교에 부임한 흑인 교사라는 설정으로 인종차별 문제도 동시에 건드리고 있다.
이 영화는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주제가는 그 이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아마 이 영화에 대해서 잘 모르는 젊은 사람들도 주제가는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영국 가수 루루가 부른 주제가 “To Sir with Love”는 전미차트 5주 연속 1위를 기록하여 당시의 인기절정을 달리던 비틀즈와 몽키즈도 눌렀다. 루루는 이 영화에도 출연하여 노래를 불렀다.
흑인인 체커리는 원래 통신 엔지니어였으나 적당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영국의 빈민가에 위치한 어느 고등학교의 교사가 된다. 그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모두 문제아로서, 교사들도 이제 아이들의 지도를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체커리가 담임을 맡은 클래스는 졸업반이었만, 거의가 어떻게 손쓸 수 없을 정도의 문제아들뿐이었다. 그러나 체커리는 옛날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학생들은 처음부터 문제아였던 것은 아니며, 불우한 환경으로 인해 그렇게 되었다고 믿는다.
그들은 학생들의 규율을 지키고 스스로 자존심, 자제심, 책임감 등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존중해야 한다고 믿고, 먼저 그들에게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도록 설득하였다. 체커리의 이런 교육방식은 불량학생들을 동요시키기도 하였지만, 조금씩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아이들도 조금씩 자긍심을 되찾게 되면서 체커리를 존경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몇 명은 체커리에 대해 강한 반항심을 보이고 있다.
체커리는 학생들이 너무나 아는 것이 없어 현장교육을 위해 박물관에 데려가려 한다. 그렇지만 교장은 아이들을 밖으로 데려나갔다가는 무슨 일을 저지를지도 모른다고 반대한다. 체커리는 교장을 겨우 설득하여 아이들을 박물관으로 데려갔다. 박물관에서 체커리는 전시된 전시물을 통해 역사와 사회에 대해 가르친다. 아이들도 이러한 현장교육을 아주 즐거워하고 있다.
어느 날 체육교사가 학생들에게 짚고 뛰기 체조를 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겁이 많은 한 학생이 싫다는 것을 교사가 억지로 강요하여 뛰게 하다가 그만 중상을 입었다. 체육교사는 그 문책으로 수업에서 빠지고 대신 체커리가 수업을 맡게 되었다. 그때 항상 체커리에게 반항적인 모습을 보이던 덴햄이 체커리에게 복싱 도전을 해온다. 체커리는 학생과의 복싱을 피했지만, 덴햄은 계속 모욕적인 말을 퍼부으며 도발한다. 결국 복싱 시합을 하게 된 체커리는 덴햄을 때려눞히고 만다. 이 사건은 오히려 학생들이 체커리를 따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체커리는 순간적인 분을 참지 못하여 학생을 때려눕힌 자신에 대해 심하게 자책한다. 그리고는 자신은 교사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여 학교를 떠나려고 한다. 마침 그때 이전에 지원을 하였던 라디오 회사에서 출근하라는 연락이 왔다. 체커리는 그곳으로 옮기려고 마음을 먹었다. 체커리는 학생들의 졸업 댄스파티에 초대되었다. 그곳에 참석한 학생들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훌륭한 성인이 되어있었다. 학생들은 체커리에게 조그만 상자를 선물하였다.
그날밤 집으로 돌아온 체커리는 선물 상자를 열어본다. 그 안에는 조그만 선물과 함께 “To Sir with Love”(선생님에게 사랑을)이라는 카드가 꽂혀 있었다. 카드를 읽은 체커리는 학교에 머무르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 약간의 감상
불우한 환경으로 인해 문제아가 된 학생들을 바른길로 이끄는 교사의 모습을 그린 훈훈한 영화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와 서양적 가치관의 차이도 느낄 수 있었다.
만약 이러한 영화를 우리나라에서 제작되었으면 어떤 내용이었을까? 아마 교사는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 가면서 학생들을 바르게 가르치기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하는 모습을 그렸을 것이다. 가난한 학생에게는 어떻게나마 경제적인 도움을 주며, 가정에서 학대받는 학생들에 대해서는 부모를 찾아가 설득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범죄에 빠진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아이를 바른 길로 인도하려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 교사 체커리는 학생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학생들의 생활에 과도한 간섭도 하지 않는다. 가정적으로 불우한 아이라 해도 그 아이의 가정사에는 결코 개입하지 않는다.
그가 학생들한테 한 것은 단 두 가지였다. 첫째는 학생들 간에 서로를 존중하라는 것이다. 그를 위해서는 아무렇게나 부르지 말고, 이름에 미스나, 미스터의 호칭을 붙여 부르라는 것, 그리고 교사에 대해서는 꼭 “선생님”(Sir)라고 부르도록 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아이들을 믿는 것이었다. 교장을 비롯한 다른 교사들이 학생들을 불신해도 체커리는 학생들을 믿고 박물관에 데려가며, 학생들이 그것을 너무나 즐거워하자 교장과 교육위원회를 설득하여 다시 학생들을 박물관에 데려가려 한다.
그리고 체커리가 가졌던 교사로서의 아주 중요한 자질은 자제심이었다. 학생들이 아무리 자신을 도발하여도 감정적으로 학생을 대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고, 단 한번 자신이 자제심을 잃어버리자 그걸로 자신은 교사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여 학교를 떠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