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형 Jun 11. 2024

일본애니메이션: 바람의 검심–유신지사를 위한 진혼곡

메이지 정부 전복을 노리는 조직과의 화해의 길에 나선 켄신

■ 개요


이 블로그에서는 <바람의 검심> 시리즈 영화 및 애니메이션을 지금까지 7-8편 정도 소개한 바 있는데, 이들 작품은 같은 제목의 만화를 영화화한 것이다. 이 영화는 일본의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전후를 시대배경으로 하여 유신파의 선두에 서서 활약한 켄신(劍心)이라는 검객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다.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에 대해서는 다음의 링크를 참고하기 바란다. 


메이지유신에 이르기까지 일본은 막부파(幕府派)와 막부를 쓰러트리려는 토막파(討幕派) 혹은 유신파(維新派) 사이에 피 터지는 대결이 벌어졌다. 유신파는 결국 전쟁을 통해 막부파에 승리하지만, 그 이전에 이미 칼잡이들을 고용하여 서로를 베려는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이때 막부파의 무력집단이 바로 신센구미(新選組)인데, 바람의 검심의 주인공인 히무라 켄신은 유신파에 앞장 서서 신센구미를 상대로 칼을 휘두른다. 


대개의 일본 영화나 소설 등에서는 신센구미나 이들과 맞서 싸우는 유신파 사이의 무력대결을 선악의 대결로 그리지는 않는다. 대체로 둘 다 모두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들인데, 다만 그 애국에 대한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싸울 수밖에 없다고 하는 식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오늘 소개하는 <바람의 검심 – 유신지사를 위한 진혼곡>(るろうに剣心 ―明治剣客浪漫譚― 維新志士への鎮魂歌)도 기본적으로 이러한 시각에서 그려진 애니메이션으로서, 1997년에 제작되었다. 여기에서는 켄신과 아이즈번(会津蕃) 출신 무사 사이의 슬픈 대결을 그리고 있다. 


■ 메이지유신(明治維新)과 아이즈번(会津蕃)


19세기 중반 흑선으로 상징되는 서양세력의 일본진출이 본격화되자, 각지에서 이제 막부가 일본을 통치하기에는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막부를 타도하고 천황 중심의 새로운 정치체제로 나아가야 한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주로 죠슈번(지금의 히로시마 일대) 및 사쓰마번(지금의 가고시마 현 일대)의 무사들이 중심이 된 이 움직임은 일본의 수도인 교토를 중심으로 활발히 전개되었다. 막부는 이들을 불온세력으로 규정하고, 이들의 움직임을 막기 위하여 아이즈번의 영주에게 명하여 교토의 치안을 맡도록 하였다. 


아이즈번(会津蕃)은 지금의 일본의 후쿠시마 현에 위치한 번으로서, 아이즈와카마츠(会津若松)의 와카마츠성(若松城)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군사를 이끌고 교토에 진주한 아이즈번의 영주 마츠타이라 가타모리(松平容保)는 휘하의 군대를 통해 교토의 치안을 관장하여 불온세력(유신파)의 준동을 억눌렀다. 그러나 아이즈번의 군대는 어디까지나 정규군으로서 그 활동에는 한계가 있었다. 즉, 반대파의 암살 등과 같은 “더러운 일”을 정규군을 통해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러한 더러운 일을 할 사적인 무력조직으로서 신센구미(新選組)를 만든 것이었다. 이리하여 신센구미는 유신파를 죽이고 제거하는 험한 일을 맡았다. 


유신파와 막부파의 대결은 결국 유신파의 승리로 끝나고, 일본은 250년의 도쿠가와막부가 막을 내리고 메이지 정부가 새로이 출발하게 된다. 그러자 이제 마지막까지 막부 쪽에 있던 아이즈번은 “역적”이 된 것이다. 아이즈번은 막부가 쓰러진 후에도 저항을 하다가 결국은 정부군의 공격을 받고 스스로 성문을 열고 항복을 한다. 이렇게 되자 막부에 충성한 아이즈번과 정부군의 선봉에 선 쵸슈번은 서로 철천지의 원수가 된 것이다. 지금까지도 두 지역 간의 지역감정은 강하게 남아있다. 

이전에 본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옛 쵸슈번에 속한 하기(萩) 시에 살고 있는 청년이 약사인 여자를 사랑하게 되는데, 그 여자의 고향은 후쿠시마, 즉 옛 아이즈번이다. 청년은 아버지에게 결혼승낙을 받으려고 가는데, 결혼할 여자가 아이즈 출신이라는 말을 듣고 이렇게 말한다. 

“너도 이젠 어엿한 어른이니까 네 결혼 상대는 네가 정하는 것이 당연하다. 네가 결혼하려는 여자가 화류계 여자일지라도, 외국인이라 할지라도 너의 선택이니까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마음이 전혀 없다. 그렇지만 아이즈 여자만은 절대 안 된다!” 


■ 줄거리  


메이지 정부가 들어선 지 11년이 지났다. 이제 일본은 개방되어 외국 공관들이 설치되고, 많은 외국 선박들이 일본을 들락거렸다. 그러다 보니 많은 서양인들이 일본에 왔는데, 일본정부는 외국과의 우호를 위해 외국인을 특별히 보호하고 있었다. 


켄신은 카오루를 비롯한 친구들과 벚꽃 구경과 새로운 문물 구경을 위하여 요코하마로 왔다. 그들이 거리 풍경을 즐기는 중 서양 선원들이 난동을 부리는 모습을 목격한다. 건장한 체격의 서양 선원들이 일본 여자들을 희롱하다가 이를 말리는 사람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다. 이들의 난동을 보고서도 구경꾼들은 그들의 엄청난 체격과 힘에 기가 눌려 아무 소리도 못하고 있다.  

이때 아름다운 처녀와 사무라이 복장의 청년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서양 선원들은 그 처녀를 희롱한다. 참다못한 켄신이 그들을 말리려고 뛰어들려는 순간 사무라이 복장의 남자가 나서 선원들을 간단히 제압해 버린다. 화가 난 서양 선원들은 총을 꺼내 그를 쏠려고 하는데, 켄신이 그들을 물리쳐 버린다. 사무라이 복장의 청년은 시구레(時雨)란 이름의 아이즈 출신 무사였고, 도키(朱鷺)란 이름의 처녀는 그의 연인이었다. 겐신과 시구레는 의기투합하여 서로를 좋아하게 된다.  


그러나 시구레는 메이지유신 직전 막부파의 선두에 서서 유신파를 처단하려 한 무사였다. 시구레는 도키의 오빠인 다카츠키 겐다츠(高槻厳達)와 함께 반유신파 무력집단을 이끌고 있었는데, 하루는 그들에게 사카모토 료마(坂本竜馬)의 중재로 쵸슈번과 사쯔마번이 동맹을 맺으려 한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그렇게 될 경우 막부는 큰 위기에 처한다. 시구레와 겐다츠는 그들의 회합장소를 습격하여 그들을 모두 베겠다는 계획을 세우지만, 회합장소가 어디인지 알 수 없다. 협의를 한 결과 유력한 회합장소가 떠올라 그곳으로 출발하려고 하는데, 시구레의 머리에 갑자기 다른 장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그래서 본대는 겐다츠가 이끌고 유력 회합장소로 가고, 겐다츠가 나머지 일부 무사를 데리고 다른 곳을 습격하자고 결정하였다. 


그런데 시구레가 자신이 짐작한 장소로 갔지만, 그곳은 회합장소가 아니었다. 그래서 다시 부하들을 이끌고 허둥지둥 본대가 간 곳을 찾아갔는데, 그곳에는 벌써 겐다츠가 이끄는 아이즈번 무사들과 유신파를 지키려는 무사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즈번 무사들은 둘로 나뉘어진 탓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죽은 가운데 대장격인 겐다츠와 유신파 무사와의 대결이 벌어지고 있었다. 겐다츠도 뛰어난 무사였지만, 가공할 상대의 실력에 그만 죽고 만다. 그 상대가 바로 켄신이었다. 

시구레는 친구이자 약혼녀의 오빠인 겐다츠의 복수와 함께 썩어빠진 메이지 정부를 타도하기 위해 동지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왔다. 영국 정부의 고관이 일본에 국빈방문할 예정인데, 시구레는 동지들과 함께 이곳을 습격하여 메이지 정부를 끝장내려는 것이었다. 그는 육군의 고급장교인 타마노를 통해 몰래 육군의 무기를 전달받는다. 이 거사에 육군이 무기가 흘러들어 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야마가타 육군장관은 궁지에 몰리게 되고, 그러면 자신이 그 자리를 물려받으려는 것이 타마노의 속셈이었다.   


도키는 시구레의 이러한 계획을 알고 걱정이 되어 켄신에게 의논해 왔다. 켄신은 시구레의 계획을 모두 알게 되었다. 켄신은 육군의 시구레가 이끄는 무력단 사이의 싸움을 막으려고 국빈이 도착할 예정인 영빈관으로 달려간다. 영빈관은 삼엄한 경계 속에 있다. 시구레는 일행을 이끌고 영빈관으로 쳐들어간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던 육군 경비대는 치열한 사격으로 응전한다. 시구레의 일행은 용감히 싸우지만 어차피 칼로써 총을 당할 수는 없다. 이때 켄신이 나타나 싸움을 말리려 하고, 시구레 일행은 후퇴한다. 


시구레 일행은 넓은 신사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육군을 지휘하는 야마가타 육군장관은 공격을 개시하여 이들을 일망타진하려고 하는데, 켄신이 나서서 자신이 그들을 설득할 테니 불필요한 희생을 줄이자고 설득한다. 이리하여 켄신은 홀로 시구레를 만나러 그들이 농성하는 곳으로 들어간다. 켄신과 마주한 시구레는 처음에는 켄신의 제안을 완강히 거부하지만, 어린 그의 부하들을 생각하라는 간곡한 켄신의 설득에 마침내 투항하기로 결정한다. 

시구레가 투항할 경우 자신의 음모가 드러날 것을 두려워한 타마노가 부하들을 이끌고 난입하여 시구레 일행에게 일제 사격을 가한다. 시구레는 총구가 도키에게 향하는 것을 보고는 자신의 몸을 던져 도키의 목숨을 건지고는 대신 총을 맞고 죽는다. 격노한 켄신은 혼신의 힘으로 타마노를 치고, 곧이어 달려온 야마가타에게 그의 신병을 넘긴다. 


모든 싸움이 끝났다. 며칠 후 켄신과 그의 친구들은 시구레의 유골을 안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도키를 먼발치에서 지켜보며 위로한다. 


■ 약간의 평


<바람의 검심>은 검객의 이야기이지만 언제나 슬프다. 격변의 시대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칼을 들고 서로 죽고 죽이는 슬픈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번 영화도 그 예외가 아니다. 이 영화의 부제는 “유신지사를 위한 진혼곡”이다. 보통 “유신지사”라면 사카모토 료마, 다카스기 신사쿠, 오쿠보 토시미치, 사이고 다카모리 등 유신파의 사람들을 말한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시구레를 비롯한 반유신파의 무사들도 유신지사라 표현하고 있는 점이 이채롭다. 


작가의 이전글 영화: 불량인 유명고왕(不良人 幽冥蠱王)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