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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Jun 26. 2024

로덴부르크 중세거리

(2024-05-01 수) 서유럽 렌터카 여행(14)

나 혼자서 여행을 할 때면 숙소에서 짐을 싸서 나오는데 5분이면 충분하다. 그런데 집사람과 같이 다니니 1시간 이상 걸린다. 특히 이번엔 렌터카 여행이라 짐이 많아, 짐 꾸리는 시간은 더욱 많이 걸린다. 6시에 일어나 아침 먹고 짐 싸고 나오니 벌써 9시이다. 


지하주차장에서 나오려는데 여전히 셔터 문이 닫혀 있다. 차에서 내려 셔터 문을 열려고 했는데 아무리 해도 안된다. 호텔 프런트에 가서 물으니 주차장 가운데 있는 줄을 잡아당기면 된다고 한다. 다시 내려와 줄을 찾는데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폐철선처럼 생긴 줄이 보이길래 설마 이건 아니겠지 하면서 당겨보니 셔터가 열린다.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산업이 발전한 국가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시설이 이런 식이다. 디지털화가 거의 되어 있지 않다.  


오늘 숙박지는 뉘른베르크로서, 슈투트가르트에서 약 200킬로 떨어져 있다. 중간에 로덴부르크(Rothenburg)라는 도시에 들르기로 했다. 출발한 지 한 시간이 좀 지나 로텐부르크에 도착했다. 이 도시는 중세 성곽도시로서 지금도 그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도시 관광에서는 주차가 제일 골치가 아프다. 로덴부르크 시내를 헤매다 큰 주차장을 발견하고 주차를 했다.

로덴부르크 성벽
로덴부르크 거리

이제 주차권을 끊어야 한다. 마침 주차권 발매기에서 한 중년 여성이 표를 끊고 있다. 그녀가 표를 끊고 난 후 발매권을 끊는 방법을 물어보았다. 쉬웠다. 동전을 넣을 때마다 주차 한도 시간이 늘어나는데, 자신이 원하는 시간이 되면 발권 단추를 누르면 표가 나온다. 이 표를 차 앞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두면 된다. 그리고 출차할 때는 아무런 절차 없이 그냥 나가면 된다. 만약 표를 끊지 않거나 시간을 초과하면 어떡하나? 그건 모르겠다.


마침 주차한 곳이 성곽 담장 옆이라  작은 문을 통해 쉽게 성곽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성곽 벽을 보니 충청도에 있는 우리의 해미 읍성이 생각난다. 성곽 안으로 들어가면 바로 중세 도시로 변한다. 어제 갔던 튀빙겐의 중세도시에 비해 훨씬 크다. 그리고 오래된 건물도 훨씬 많다. 골목마다 중세풍의 집들이 서있고 길 포장은 석재로 되어있다. 여러 색깔의 집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고 있다.

도시 한가운데는 큰 성당이 세워져 있다. 성요셉 성당이라 한다. 무척 오래된 건물처럼 보였지만, 19세기에 건립되었다고 하니 의외로 역사가 짧다. 성당문은 열려있다. 그런데 예배당에 들어가려면 티켓을 끊어야 한단다. 구태여 돈을 들여서까지 예배당을 볼 필요는 없다.


성당에서 조금만 걸으면 시청이 나오고 시청 앞은 넓은 광장이다. 시청건물은 아주 고색창연한 석조건물이다. 건물 가운데에 탑이 우뚝 솟아있다. 오늘은 노동절이리 시청은 휴무라 한다. 그렇지만 탑에 올라갈 순 있다. 탑으로 올라가는 좁은 계단이 계속 연결된다. 끝날 듯하면서 끝나지 않는다. 마지막 한 층을 남겨놓고 매표소가 있다. 탑 위에서 경치를 보려면 돈을 내라는 것이다. 정말 이곳 독일에서는 몸만 움직이면 돈이다.


시청 앞 광장은 바로 성곽 정문과 연결된다. 성곽 정문으로 내려가는 길 양쪽에는 여러 종류의 상점들과 카페, 레스토랑 등이 줄지어 서있다. 이곳으로 오면 정말 중세시대로 시간여행을 한 느낌이다.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뭘 먹을지 막막하다. 우선 음식 이름과 음식 내용이 매치가 되지 않으므로 제대로 주문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제일 만만한 것이 피자와 파스타이다. 유럽의 피자와 파스타가 우리나라 것보다 맛있을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나라 것에 비해 짜기만 하고 맛은 훨씬 없다. 아무래도 우리나라의 피자는 우리의 입맛에 맞춘 것이라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중국 북경에 있는 구운 오리고기(베이징 코야)의 원조집이라 할 전취덕(全聚德)에 여러 번 가본 적이 있다. 그런데 내 입에는 한국의 구운 오리고기가 훨씬 맛있었다. 피자도 마찬가지라 생각된다.  


어쩔 수 없이 오늘 점심도 그냥 빵과 주스 등으로 때우기로 하였다. 이러다간 정말 독일 음식을 제대로 먹어보지도 못하고 독일을 떠나게 되는 게 아닐지 모르겠다. 점심을 해결한 후 다시 뉘른베르크를 향해 달린다. 


곁가지 이야기: 스톡(stock) 국가 유럽


개발연대부터 일본정부는 국가발전 지향 방향을 제시하는 슬로건을 내걸곤 했다. 대표적인 것이 1950년대의 "중화학 공업화" 등일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재미있는 슬로건을 하나 발견하였다. '스톡(stock) 국가 일본'이라는 것이었다. 이 시대 일본은 버블붕괴의 후유증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경제적으로는 미국과 유럽을 제친 최일류 국가로서 여전히 세계경제를 석권하고 있었다.


그런 일본이 스스로의 국가발전 방향으로 제시한 "스톡(stock) 국가"란 무엇인가? 당시의 시점에서 이미 일본은 GDP라는 플로우(flow)에서는 전통적 선진국인 미국과 유럽을 훨씬 추월하였다. 그렇지만 19세기말에서야 비로소 산업화되고 민주주의가 시작된 일본으로서는 수백 년 동안 부를 축적해 오고, 문명과 문화를 발전시켜 온 서구제국과 비교한다면 스톡(stock)은 모든 면에서 현저히 뒤떨어져 있다. 


이것은 비단 경제적 자산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 사회자본, 시민의식 등 모든 분야에 걸친 문제이다. 일본은 이제 플로우인 GDP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경제적 및 경제외적 부문에까지 시야를 넓혀 경제, 사회, 문화, 시민의식 등 모든 면에 걸쳐 스톡을 축적해 나가 진정한 선진국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스톡국가 일본"이라는 슬로건의 지향점이었다.


현직에 있을 때 유럽으로 몇 차례 출장 온 적이 있었다. 출장이라는 것이 일만 끝나면 그냥 허급지겁 돌아가기에 바쁜 일정이라 유럽사회를 눈여겨보지는 못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비교적 오랜 일정으로 유럽에 와 느긋이 돌아다니다 보니, 비록 며칠 되지는 않았지만 이들의 저력을 알 것만 같다. 정말 이들이 그동안 축적한 자산은 엄청나다. 수많은 역사 유적들을 보면서 그랬고, 또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적인 삶을 흘리듯 지나가면서 봐도 그렇다. "스톡 국가"란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 같다. 유럽은 진정한 스톡 국가이다.


다른 한 편으론 이런 자산이 짐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자산이 많으면 그만큼 움직이기 어렵다. 자산이 없는 빈 몸은 몸이 가벼워 움직이기 쉽다. IT 등에서 유럽의 변화가 둔한 것은 쉽게 사회를 바꾸기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스톡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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