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30, 화) 서유럽 렌터카여행(13)
원래 계획대로라면 그저께 검은 숲에서 슈투트가르트로 오는 도중에 호헨졸렌 성을 들러야 했다. 호헨졸렌 성(Hohenjzollern castle)은 독일 남부에 위치한 아름다운 성이다. 디즈니랜드의 신데렐라 성이 바로 이 성을 모델로 한 것이 아닐까 싶다. 호헨졸렌 성은 슈투트가르트에서 남쪽으로 50킬로 남짓 떨어져 있다. 먼저 호헨졸렌 성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중세 도시로 인기 있는 튀빙겐(Tübingen)을 들릴 예정이다.
아침을 먹고 9시가 조금 지나 호텔을 출발했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아우토반으로 오른다. 속도 무제한의 고속도로라지만 가능한 한 시속 100킬로가 넘지 않도록 운전을 했다. 한참을 달린 후 우리의 국도 비슷한 도로로 들어섰는데, 이러한 도로도 웬만하면 제한속도가 100킬로가 넘는다.
여행하기 전에는 유럽의 시골길을 쉬엄쉬엄 달리다 멋진 전원풍경이 나오면 차를 세우고 구경도 하는 그런 여행을 기대했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꿈이었다. 거의 대부분의 도로가 자동차 전용도로처럼 만들어져 아무리 시골이라도 도중에 차를 세우거나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독일인들에게 있어 도로란 단순히 이동을 위한 수단에 불과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이웨이 같은 2차선 도로를 달리는데, 저 멀리 제법 높은 산꼭대기에 세워진 아름다운 성이 보인다. 바로 호헨졸렌 성이다. 곧 하이웨이를 빠져나와 시골길을 달린다. 한참을 가다가 성이 있는 산길로 난 도로로 접어든다. 호헨졸렌 성은 해발 800미터가 넘는 산 꼭대기에 세워져 있다. 좁은 도로 옆으로는 초원이 펼쳐지고, 산 저 아래에는 빨간색 지붕을 한 마을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이 한적한 도로에는 곳곳에 차를 세울 장소를 만들어 놓았다. 잠시 차에서 내려 맑은 공기도 마시고 산아래 펼쳐진 풍경을 감상한다.
매표소가 있는 주차장에 차를 대고, 입장권을 사러 갔다. 표는 인터넷으로 구입할 수도 있고, 이곳에서 직접 살 수도 있는데, 인터넷을 통하면 23유로, 직접 구입하면 26유로이다. 너무 비싸다 집사람과 둘이면 거의 50유로, 7만 5천 원이다.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인터넷 발권을 시도했는데, 절차를 밟아 나가다 보면 먹통이 되곤 한다. 어쩔 수 없이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샀다. 이전에 중국에 가서 자금성 입장권이 너무 비싸다고 불평한 생각이 나는데, 여기에 대면 아무것도 아니다.
유럽의 성이란 것이 보통 밖에서 보면 멋있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별 것 없다. 며칠 전 갔던 하이델베르크 성도 그랬다. 그랬기에 이번엔 밖에서만 성을 보고 싶었지만 그럴 방법을 모른다. 집사람과 둘이 52유로를 주고 입장권을 끊었다. 잠시 후 성까지 운행하는 셔틀이 와 타고 성으로 갔다. 멀리서 볼 때는 뾰족한 탑들이 솟아있는 아름다운 성이었지만, 막상 성 안으로 들어가니 그런 모습은 볼 수 없다.
이 성은 호헨졸렌 가가 소유하고 있다. 호헨졸렌 가는 수많은 영주, 귀족, 선제후, 프로이센의 왕들, 그리고 독일 황제를 배출한 독일 최고의 명문가라 한다. 성 안내 전단을 보면 첫 페이지에서 프로이센 왕자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부부의 이름으로 "우리 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로 인사말을 시작한다. 왕자는 40대 중반 정도로 보인다. 이 성이 처음 건설된 것은 11세기 정도로 추정되는데, 그 후 수차례 파괴되었다가 현재의 성은 19세기 중반에 건설되었다고 한다.
성이 산꼭대기에 있기 때문에 성에 오르면 아름다운 풍경이 발아래 펼쳐진다. 푸르고 노란 밭들이 펼쳐진 가운데, 이곳저곳 크고 작은 마을들이 자리 잡고 있다. 성 아래 풍경을 감상하면서 성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 성은 왕가의 성이기 때문에 다른 성들과는 다르다. 성 안은 화려한 가구들과 장식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넓은 연회장의 테이블 위에는 황금색의 식기와 장식물이 번쩍인다. 호화와 사치의 극치라는 생각이 든다.
이 높은 곳으로 필요한 물품들을 어떻게 조달했나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이 산꼭대기에서 어떻게 물을 확보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가파른 산꼭대기에 높은 성벽으로 보호받는 이 성은 가히 철옹성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성 아래서 보급만 끊어버린다면 버티기 어려웠을 것 같다. 군사들은 200~300명 정도 이상은 주둔하지 못할 것 같다.
성을 구경한 후 성밖으로 나와 성벽 밑을 걸으니. 성 안에 있는 것보다 성이 훨씬 더 잘 보인다. 역시 입장권을 끊지 말고 성 주위를 걷는 것이 훨씬 나을 뻔했다. 성에서 내려올 때는 셔틀을 타지 않고 걸어 내려왔다. 성 전체의 모습이 점점 더 잘 보였다.
호헨졸렌 성에서 슈투트가르트로 가는 도중에 튀빙겐이라는 작은 도시가 있다. 인구 9만 명 정도의 이 작은 도시는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호헨졸렌 성을 출발하여 30분 정도 지나 튀빙겐 시내로 들어왔다. 마치 숲 속에 숨은 옛 도시 같은 느낌이다. 주차를 해야겠는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 이곳저곳 아무렇게나 주차한 듯 보이는 차가 많은데, 나도 그렇게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시내를 헤매다가 주차빌딩을 발견하고 주차할 수 있었다.
주차장에서 나와 잠시 큰길 따라 걷다가 골목길로 들어서니 중세시대를 연상케 하는 거리 풍경이 펼쳐진다. 간혹 오래된 건물도 중간중간 보이지만, 대부분은 그렇게 오래되어 보이지 않은 건물이다. 현대에 지은 건물도 모두 중세 스타일로 하도록 하는 모양이다. 많은 관광객들이 마치 중세시대로 시간여행을 온 듯 거리를 즐기고 있다. 조금 더 가니 큰 성당이 보인다. 튀빙겐의 대표적 명소인 튀빙겐 교회이다. 그 앞에는 작은 광장이 있다. 많은 관광객들이 교회 계단에 앉아 거리의 모습을 즐기고 있다.
교회 옆길로 나가면 작고 아름다운 강이 나온다. 강 위에는 평범한 시멘트 다리가 놓여있는데, 강의 아름다운으로 인해 이 다리는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강 위에는 보트를 즐기는 사람도 많이 보인다. 강을 따라 공원이 길게 조성되어 있다. 그다지 가꾸지 않은 듯한 공원이지만, 큰 플라타너스 나무들과 강의 풍경이 서로 어울려 한가로운 휴식공간을 제공한다. 튀빙겐의 정취를 마음껏 즐긴 후 슈투트가르트로 향했다.
오늘은 포르셰 박물관에 들러야 한다. 박물관에 도착하니 벌써 오후 5시이다. 박물관을 구경하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다. 게다가 나 자신 자동차에 그다지 관심이 없기 때문에 구태여 관람하고픈 마음도 없다. 기념품점에만 가서 외손자 선물만 몇 개 샀다.
호텔로 돌아와 소시지를 듬뿍 넣고 라면을 끓여 먹었다. 김치만 조금 넣었으면 부대찌개가 되었을 텐데 아쉽다. 치즈를 안주로 와인을 마시니 행복이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