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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Jul 01. 2024

님펜부르크 궁전과 영국 정원

(2024-05-04 토) 서유럽 렌터카 여행(19)

어제는 하루종일 뮌헨 중심지를 돌아다녔더니 2만 보 이상 걸었다. 지금까지 뮌헨 하면 내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1972년 뮌헨 올림픽 때 있었던 참사였다. 팔레스타인의 테러조직인 검은 9월단이 선수촌에 잠입하여 2명의 이스라엘 선수를 죽인 후 9명을 인질로 잡고, 투옥된 동료들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서독 경찰은 인질 구출작전에 나섰으나 실패하고, 결국 인질 9명은 전원 사망하였으며, 인질범들은 사살되거나 체포되었다. 


그랬기 때문에 뮌헨이라면 항상 이 사건이 먼저 떠올라, 뮌헨이 이렇게 역사가 깊고 문화재가 풍부한 지역이란 것을 몰랐다. 어제 숙소로 돌아오면서 트램과 버스를 타고 바깥 경치를 구경할 수 있었는데, 도시 곳곳이 유적과 문화재로 넘쳤다. 어디에서 버스를 내려도 유서 깊은 문화재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제는 하루종일 흐렸지만 오늘은 날이 맑았다. 이곳은 공기가 아주 좋은 것 같다. 날이 개면 하늘이 그렇게 푸를 수 없다. 어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하루종일 돌아다녔으니 이젠 대중교통 이용에 자신이 붙는다.

님펜부르크 궁전

오늘은 먼저 님펜부르크 궁전으로 갔다. 바이에른 지역의 선제후였던 페르디난트 마리아가 18세기 초 아들의 탄생을 기념하여 지은 궁전이라 한다. 이 궁전은 건물도 크지만, 부지 면적도 어마어마하게 넓다. 아들 탄생 기념 한 번  뻑적지근하게 했다는 생각이 든다. 옛날 독일은 신성로마제국의 일부였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7명의 제후들의 투표에 의해 선출되는데, 이때 황제선출 투표권을 갖는 제후가 선제후이다. 그러니까 선제후는 수많은 영주들 가운데서도 단연 손꼽히는 실력자들이라 할 수 있다. 

버스에서 내리니 바로 저 멀리에 님펜부르크 궁전 건물이 보인다. 숨이 턱 막힐 정도의 넓은 부지이다. 가운데는 차라리 호수라고 해야 할 넓은 연못이 있는데, 이 연못 둘레에 있는 길을 따라 궁전으로 간다. 궁전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면 입장권을 끊어야 한다. 궁 안에는 진귀한 보물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하지만, 구태여 볼 마음은 들지 않는다. 건물과 정원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연못을 지나면 넓은 잔디밭이 나오고 잔디밭을 지나면 궁전 건물이다. 궁전은 반달형 모습을 하고 있는데, 특별히 아름답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학교건물같이 보이기도 한다. 건물을 지나면 뒷 정원이 나오는데, 이건 진짜 입이 쩍 벌어진다. 광장형태의 넓은 공간이 있고, 그리스 신화의 신들로 생각되는 아름다운 석상들이 광장을 장식하고 있다. 마치 그라스 신화 속에 나오는 궁전 같은 느낌이다.

님펜부르크 궁전

이곳을 지나면 넓은 호수와 이를 감싸고 있는 숲이 나온다. 숲과 호수가 얼마나 긴지 걸어보았지만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 호수를 따라 나있는 숲길을 걸으면 기분이 그렇게 상쾌할 수 없다. 이곳에 더 오래 머물 수는 없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이번에 찾은 곳은 '영국정원'이다. 이 공원은 18세기말에 조성되었는데, 영국식 정원의 디자인을 도입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지하철을 내려 어느 쪽 출구로 나가는 것이 좋을지 몰라 안내판을 보면서 생각을 하고 있는데, 세련된 모습의 중년 여성이 다가와 어딜 찾느냐고 묻는다. 영국정원으로 간다고 하니까, 내가 가려던 길은 지름길이지만 별로 볼 것이 없다면서 돌아가는 길을 가르쳐 준다.

그녀가 가르쳐 준 대로 옛 건물을 통과하니 넓은 정원이 나온다. 알고 보니 방금 통과한 건물은 근대미술박물관인 호프가르텐이고, 정원은 호프가르텐에 속한 정원이라 한다. 정원 한가운데는 여러 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는 작은 하얀 건물이 있다. 마치 우리나라의 정자와 같은 느낌으로서, '다이애나 템플'이라고 한단다. 원형으로 된 건물 안에서는 한 여성이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으며, 관광객들은 둘러서서 음악을 듣고 있다. 

다이아나 템플
영국정원

호프가르텐의 정원을 지나 잠시 걸으면 영국정원으로 연결된다. 숲길을 한참 걸어 들어가면 작은 폭포가 있는 계류가 나온다. 도심인데도 불구하고 맑은 물이 쏟아진다. 이곳을 지나면 곧 넓은 잔디밭이 나온다. 그냥 넓다는 정도가 아니다. 넓어도 무지무지 넓다. 잔디밭 저쪽 까마득한 곳에 있는 낮은 언덕에는 마치 우리나라의 팔각정을 연상시키는 하얀 건물이 보인다. 그리스식 회전 고리 형태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모놉테로스(Monopteros)라 부른다고 한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휴식과 공원의 모습을 조망하기 위한 구조물이다. 

넓은 잔디밭에는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 가벼운 공놀이를 즐기는 사람들, 소풍 나온 가족들이 먹을 것을 함께하는 광경 등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입장했지만 잔디밭이 워낙 넓어 붐빈다는 느낌은 조금도 들지 않는다. 잔디를 밟으며 모놉테로스까지 걸어갔다. 잔디밭이 끝나면 숲이 시작되는데, 그 숲 또한 얼마나 넓은지 알 수 없다.


영국정원의 면적이 얼마나 되는지 챗 APT에게 물어보았다. 1.6억 평방미터라 한다. 너무 터무니없어 믿기지 않아 다시 물으니 1,600만 평방미터라 한다. 또 한 번 더 물으니 160만 평방미터라 한다. 이 녀석은 늘 이런 식이다. 160만 평방미터가 맞는 것 같다. 

벌써 오후 4시가 가까워진다. 오늘 국립독일박물관에 가려 했는데, 또 너무 늦어졌다. 오늘은 빨래방에 가서 빨래를 해야 한다. 지하철을 타려고 지하철 역으로 갔는데, 어쩐지 주위 풍경이 익숙하다. 바로 어제 갔던 뮌헨 레지던츠 앞이다. 알고 보니 영국정원은 뮌헨 레지던츠와 연결되어 있었다. 놀랍다. 이곳은 서울로 치면 덕수궁쯤 되는 시내 중심가이다. 이런 시내 중심지에 영국정원과 호프가르텐을 합쳐 거의 100만 평에 가까운 녹지공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부럽기 짝이 없다. 


호텔에 돌아와 빨랫감을 싸들고 호텔직원이 가르쳐 준 빨래방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 빨래방은 이미 폐업해 버렸다. 어쩔 수 없이 그냥 돌아왔다. 급한 대로 양말 몇켤례만 빨고 본격적인 빨래는 다음으로 미루어야겠다. 다이소에서 1,000원 주고 산 빨랫줄이 의외로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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