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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Jul 17. 2024

피사의 사탑과 갈릴레오

(2024-05-14 화) 서유럽 렌터카 여행(35)

어제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적게 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일어나니 8시 30분이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늦게 일어났다. 로마에서 많이 걷고 해서 피로가 쌓여서 그런 모양이다.


서둘러 짐을 싸 피사의 사탑으로 향했다. 피사의 사탑이 가까워지자 곳곳에 주차장이 보이는데, 빈자리가 좀처럼 눈에 뜨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피사 성곽의 정문이라 할 포르타 누오바(Porta Nuova) 바로 길 건너편에 큰 주차장을 발견하고 보니 자리도 넉넉하다. 편한 곳에 쉽게 주차를 하였다.


피사의 주요 명소는 거의가 피사 성곽 안에 모여있다. 성곽 안으로 들어가면 별로 걷지도 않고 산 죠반니 세례당, 피사 대성당 그리고 피사의 사탑 모두를 볼 수 있다. 주차를 한 후 피사 성곽 정문인 포르타 누오바로 갔다. 성문 앞은 수많은 기념품 노점으로 북적거린다. 성 안으로 들어갔다. 깨끗하게 관리된 성 안에 세례당, 대성당, 사탑의 3개 명소만이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

포르타 누오바. 이곳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피사의 사탑 등 명소가 나온다.

지금까지 가 본 대부분의 이탈리아의 도시에서는 역사유적과 사람들의 일상이 공존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올드타운에는 사람들이 실제로 거주하고 있어 역사적 건축물이 시민들의 생활에 녹아들어 있는 느낌이었다. 이에 비해 피사 성곽 안에는 상주 주민이 없다. 철저히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간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의미이다. 피사 성곽은 우리나라의 읍성 정도의 크기로 보인다. 아마 충청도의 해미 읍성과 비슷한 넓이가 아닐까 짐작된다. 


피사 성곽 안으로 들어가면 제일 먼저 만나는 건물이 산 죠반니 세례당(Battistero di San Giovanni)이다. 돔형의 지붕을 가진 이 건물은 전체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12세기 중반에 착공되어 14세기에 완공되었다고 하니 우리나라의 고려시대에 해당한다. 그 시대에 이렇게 크고 아름다운 건물을 건조할 수 있었다니 감탄이 나온다. 세례당 안팎에는 아름다운 조각이 새겨져 있다. 


그다음에 나타나는 건물이 피사대성당(Duomo di Pisa)이며, 피사의 사탑은 피사대성당의 부속 건물로서 성당 문 앞쪽에 자리 잡고 있다. 피사대성당은 산 죠반니 세례당보다 조금 앞선 11세기에 건축되었다. 대성당과 사탑 역시 대리석으로 건조되었다. 나는 그동안 피사의 사탑은 화강암 아니면 벽돌로 만들어진 걸로 짐작했었는데, 이렇게 화려한 대리석 건축물일 줄은 몰랐다. 그리고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높았다. 

사람들은 피사의 사탑과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갖가지 포즈를 지으며 사진을 찍는다. 그러면 탑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사진, 쓰러지는 탑을 떠받치는 사진, 탑을 업는 사진, 탑을 밀어 쓰러트리는 사진 등 갖가지 포즈가 나온다.


피사의 사탑은 그 모습이 꼭 중국의 탑 같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의 절에 가면 이렇게 누각으로 된 탑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들 중국 탑에서 기와지붕만 제거한다면 피사의 사탑이 될 것 같다. 영화 <조선미녀삼총사>나 <와호장룡 2>에서는 피사의 사탑과 비슷한 모습의 탑에서 화려한 결투가 벌어진다.


피사의 사탑은 약 4도 기울어져 있다. 그러면 피사의 사탑은 왜 기울어졌을까? 건축가가 어떤 의도가 있어서 탑을 기울게 했을까? 아니다. 피사의 사탑이 기울어진 것은 단순한 건축의 실수이다. 이 탑은 약한 지반 때문에 만들 때부터 기울어져, 건축 도중에 바로 세우기 작업을 했으나 실패했다고 한다. 탑이 완성된 이후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탑을 바로 세우기 위한 시도를 했으나 모두 실패하였고, 결국 현대에 와서 탑이 기울어진 채로 안정성을 갖도록 하는 공사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피사의 사탑에서 갈릴레오가 쇠공을 떨어트려 중력실험을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에 대해 그 이야기는 설화에 불과하며 실제는 갈릴레오가 피사의 사탑에서 그런 실험을 한 적이 없다는 말도 들린다. 갈릴레오는 여러 저서를 남겼지만, 그의 저서에는 피사의 사탑에서 쇠구슬 2개를 던져 중력실험을 했다는 기록은 없다고 한다. 갈릴레오의 제자가 갈릴레오의 생애에 대한 책을 썼는데, 거기서 피사의 사탑 중력실험 이야기가 나온다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신빙성이 없다는 의견이 많은 것 같다. 


만약 정말 갈릴레오가 피사의 사탑에서 그 실험을 했다면 정말 두 공이 동시에 떨어졌을까? 난 어릴 때부터 그것이 궁금하여 선생님에게 질문도 해보았지만 속 시원한 답을 듣지 못했다. 어떤 조건의 공을 떨어트렸는지가 늘 궁금하였다. 예를 들면 사이즈가 다른 2개의 볼링공을 떨어트렸는지, 아니면 크기가 비슷한 당구공과 테니스공을 함께 떨어트렸는지.... 전자라면 공이 동시에 떨어졌겠지만, 후자라면 공기의 저항으로 인해 당구공이 먼저 떨어졌을 것 같다. 

갈릴레오의 또 다른 유명한 일화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이다. 지동설을 주장하던 갈릴레오가 종교재판에서 자신의 지동설을 철회한 후, 무죄 선고를 받고 나오면서 중얼거렸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이 말 역시 신빙성을 의심받는다. 이 일화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갈릴레오가 죽은 지 100년이나 지난 후였다고 한다. 갈릴레오는 과학자로서 매우 고집이 세고 신념에 강한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목숨을 위협받는 종교재판이 끝난 후 이런 말을 했을 가능성은 아주 낮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다. 


올해 초 <갈릴레오>란 영화를 감상한 적이 있다. 이 영화에서는 갈릴레오를 약간 사기성이 있는 캐릭터로 표현한다. 네덜란드 상인으로부터 구입한 망원경을 자신이 발명하였다고 하면서 귀족들에게 비싼 값을 받고 팔기도 한다. 그리고 생활비를 벌기 위하여 귀족 자제들에게 과외교습을 하기도 하며, 피사 대학에 가서 교수 자리를 달라고 애원하기도 한다. 갈릴레오의 딸은 귀족과 약혼을 하였으나, 아버지가 종교재판에 회부되는 바람에 파혼당하고 평생을 아버지를 보살피면서 늙어간다. 한 사람의 위대한 과학자가 나오기 위해서는 이렇게 주위 사람의 희생이 필요한 것 같다. 

https://blog.naver.com/weekend_farmer/222984268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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