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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Jul 15. 2024

포로 로마노에서 로마의 영광의 흔적을 찾다

(2024-05-12 일 a) 서유럽 렌터카 여행(33)

바티칸 구경을 끝낸 후 성당 주위 그늘에서 지친 다리를 쉬다가 포로 로마로 가기로 하였다. 내가 이번에 로마 여행을 하면서 가장 보고 싶었던 곳이 포로 로마였다. 사실 지금까지 본 대부분의 유적과 문화재는 로마의 것이 아니다. 대부분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후에 수백 년이 지나 만들어진 것이다. 진정한 로마는 포로 로마에 잠들어있다.


따가운 햇볕을 받으며 걷는다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다. 오늘은 어제의 일을 경험 삼아 물 4병에 주스, 빵 몇 개를 가지고 나왔다. 물이 금방금방 없어진다. 포로 로마까지는 약 3킬로, 이 땡볕을 받으며 언제 걸어가나 생각하는데, 마침 근처로 가는 버스가 오길래 올라탔다. 유럽의 대중교통은 대개가 환승권이다. 따라서 표 한 장을 사면 그날 하루는 버스든 지하철이든 트램이든 얼마든지 탈 수 있다.   


포로 로마 입구에서 집사람은 더 이상 못 걷겠다면서 그늘이 있는 계단에 걸터앉는다. 나 혼자 둘러보기로 하였다. 포로 로마는 옛날 로마 시대 주요 공공건물들이 있던 곳이다. 대부분의 건축물이 지하에 묻혀 자금은 거대한 발굴장이 되고 있다. 건물터와 그 잔해들과 함께 아직도 쓰러지지 않은 굵은 기둥들이 서있다. 포로 로마 발굴장을 보며 의문이 떠올랐다. 대부분의 건물들이 현재의 길에서 4-5미터 깊은 곳에 묻혀 있는데, 거의 2,000년이 지났다 해도 어떻게 저렇게 되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었다. 

건물들이 하루아침에 묻힌 것은 아니고 서서히 묻혀 같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포로 로마의 시설들이 묻히는 동안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는 것인지, 아니면 묻히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금 발굴되고 있는 포로 로마의 건물을 보면, 그동안 땅 속에 묻혀있다고 하더라도 정말 아름답다. 저런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땅 속으로 사라져 가는 것을 어떻게 보고만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완전히 방치했다고 하더라도 2000년이라는 세월 사이에 땅이 어떻게 이렇게 높아질 수 있는지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포로 로마는 트라야누스 포럼(Trajan's Forum)부터 시작된다. 이 광장은 로마제국의 황제 트라야누스(Trajan)의 통치 시대인 1세기말에서 2세기 초에 걸쳐 조성되었는데, 로마의 중요한 공공건물들이 모여있다. 광장의 중앙에는 높은 원통형의 탑이 있는데, 바로 트라야누스 기념탑(Trajan's Column)이다. 트라야누스는 인프라를 개선하고 문화적 발전에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다키아, 아르메니아, 메소포미미아 등을 쳐 로마 영토를 크게 확장시킨 공로가 있다. 트라야누스 기념탑은 특히 트라야누스의 전쟁승리를 찬양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원통형 탑의 겉면에는 나선형의 형태로 트라야누스의 승전기록들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으나, 멀리 서는 그것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이번 로마 여행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유물이었다. 사진으로 볼 때는 아주 굵고 높은 탑이라고 생각했는데, 상상했던 것만큼 굵지도 높지도 않다. 


트라야누스 포럼 건너편 언덕에는 오래된 로마시대의 건축물들이 서있다. 그곳의 건물을 모두 합하여 트라야누스 시장이라 부른다고 한다. 트라야누스 시장은 로마시대 상업의 중심지로서 많은 다양한 건물들이 있었다고 한다. 2000년을 살아남은 건축물들이지만, 지금의 눈으로 보더라도 잘 지은 건축물이다.

트라야누스 포럼을 돌아 나오면 3개의 높은 돌기둥이 동량을 받치고 있는 유적이 나온다. 바로 베누스 게네트릭스 신전의 유적이라 한다. 베누스 게네트릭스 신전(Temple of Venus Genetrix)은 “사랑의 여신”인 비너스의 신전이다. 이 신전은 0세기 카이사르에 의해 건립되었다. 중요한 다른 신들도 많은데 왜 하필 비너스의 신전을 이곳에 지었는가 의문이 떠오롤 수 있는데, 로마인들은 자신이 비너스의 자손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리스는 트로이를 멸망시켰다. 살아남은 트로이의 왕자 아이네아스(Aeneas)는 비너스의 아들로서, 수많은 난관을 헤치고 이탈리아 반도로 온다. 그곳에서 아이네아스는 이탈리아 여인과 결혼하여 정착하는데, 그의 자손인 실비아가 전쟁의 신 마르스와의 사이에서 로물루스와 레무스 쌍둥이 형제를 낳는다. 두 쌍둥이 형제는 버려져 늑대 젖을 먹고 자라며, 나중에 자라서 로마를 건국하게 된다. 이후 로물루스는 레무스를 죽이고 첫 로마의 왕이 된다. 이러한 로마의 건국신화를 볼 때 비너스는 신들의 왕인 주피터보다 더 중요한 자신들의 어머니 신인 셈이다. 작년인가  <듀얼 오브 타이탄>(Duel of the Titans)이란 영화를 감상한 적이 있는데, 신화적 요소를 배제한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 이야기였다.  

https://blog.naver.com/weekend_farmer/223014389740


로마는 그 후 그리스를 공격하여 식민지로 삼는다. 수많은 그리스의 학자와 예술가들은 로마인들의 노예가 되었다. 그로부터 그리스 인들은 현대에 들어오기 전까지 거의 2000년을 로마를 비롯한 다른 나라들의 식민지로서 지배를 당하며 살아왔다. 리스인들은 이렇게 수백 년 전에 자신들의 손으로 멸망시킨 트로이 왕국의 후손들에게 처절한 복수를 당했나 보다.   

베누스 게네트릭스 신전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개선문이 나온다. 세베루스 황제가 파르티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유심히 살펴보면 이 개선문은 어딘가 파리의 개선문과 닮았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개선문은 바로 이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개선문에 영감을 받아 건축되었다고 한다. 


로마 관광은 이것으로 끝이다. 집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돌아오는데, 도로 위에서 큰 음악소리가 들리고 많은 사람들이 둘러서서 구경을 하고 있다. 뭔가 해서 가보니 한 청년이 마이클 잭슨 흉내를 내는 거리 공연을 하고 있었다.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에 맞춰 춤을 추는데 아주 잘한다. 특히 문워크는 일품이다. 관중들이 힘찬 박수를 보낸다.

이젠 숙소로 돌아가야 한다. 로마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이제 점점 익숙해진다. 버스를 탄 후 지하철을 두 번 갈아 타 무사히 호텔에 도착하였다. 오늘도 거의 3만 보 가까이 걸었다.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니다. 내일 아침 일찍 피사를 향해 출발하여야 한다. 독일에서 산 맥주를 한 캔 들이켜니 좀 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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