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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Jul 14. 2024

바티칸과 성 베드로 성당

(2024-05-12 일) 서유럽 렌터카 여행(32)

어제 예닐곱 시간을 계속 걸었더니 아침이 되어도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 휴대폰의 만보계를 체크해 보니 3만 보 이상 걸었다. 아침을 먹고도 계속 졸음이 온다. 그러나 어쩌랴. 도시세를 45유로나 낸 마당에 호텔에 처박혀 있을 순 없다. 힘들어도 본전은 뽑아야 한다.


어제는 차를 운전해 가서 로마 시내에 주차를 한 후 도보로 관광을 하였다. 로마 시내에서 운전을 하는 것도 부담스러웠고, 또 나중에 주차장을 찾아가는 것도 아주 귀찮았다. 그래서 오늘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하였다. 그러면 마음도 홀가분해져 노변 카페에서 맥주라도 한 잔 하는 여분의 즐거움도 있다. 오늘은 어디로 갈지 미리 정하지도 않은 채 호텔을 나왔다. 

호텔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니 버스 정류장이 나온다. 그런데 티켓 발매기가 보이지 않는다. 오늘도 또 염치불고하고 무임승차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티켓 발매기가 보이면 티켓을 끊을 것이므로 진짜 무임승차는 아니다. 버스를 10 정거장 정도 타고 가 지하철로 환승해야 한다. 지하철 역에 도착했는데, 얼마짜리 표를 사야 할지 알 수 없다. 제일 싼 2유로짜리를 샀다. 만약 문제가 되면 몰랐다고 하지 뭐... 지하철은 한참을 달려 버스 터미널에 세워준다. 오늘은 먼저 포로 로마(Forum Romano)에 가기로 했는데, 어느 버스를 타야 할지 알 수 없다. 


버스 터미널은 아주 넓어 수십 개의 노선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노선별로 승강장이 다르다.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 마당에 여러 곳에 있는 승강장을 무작정 돌아다닐 수는 없다. 그래서 로마 시내는 거기가 거기일 거라 생각하여 아무 버스나 타자하고 가까이 있는 버스에 올라탔다. 오늘은 일단 먼저 포로 로마로 가기로 했다. 어제도 갔지만 하도 피곤하여 제대로 못 보았기 때문이다. 구글맵을 보니 포로 로마는 2.5킬로 정도 떨어진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버스를 타고 보니 포로 로마가 점점 멀어진다. 


몇 정거장을 가다가 버스에서 내려, 이번에는 구글맵으로 포로 로마에 제일 가까이 가는 버스 번호를 확인하였다. 거의 30분을 가다린 끝에 버스를 탔다. 12번째 정거장에서 내리면 된다. 구글맵은 도중에 통과하는 정거장 이름을 모두 알려준다. 내려야 할 정거장의 몇 정거장 전부터 내릴 준비를 하고 있으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버스 안에서 지금 이 버스가 어느 정거장을 지났는지 알 수가 없다는 거다. 버스 안에는 이번에 서는 정거장이 무슨 정거장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알 수 있는 방법은 버스가 정거장에 정차했을 때, 밖에 있는 정거장의 이름을 확인하는 것인데, 버스가 정차하는 위치나 정거장 이름 표시 위치에 따라 대부분은 확인하기 어렵다. 

결국 몇 정거장이나 더 지난 후에 버스를 내렸다. 결국 가기로 했던 포로 로마는 더 멀어졌다. 이때 집사람이 바티칸에 가보자고 한다. 어제부터 집사람이 몇 번 말을 꺼냈으나 나는 별로 가고 싶은 맘이 없어 무시했는데, 자꾸 가고 싶다길래 계획을 바꾸어 일단 바티칸으로 가기로 했다. 지도를 확인하니 도보로 3킬로 정도이다. 알고 보니 바티칸은 어제 주차했던 주차장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다. 어제 갈 걸 그랬다. 버스 정거장을 찾고 하는 것도 귀찮아 그냥 걸어가자고 했다.


도보 3킬로는 짧지 않은 거리다. 게다가 벌써 햇빛이 쨍쨍 내리쬐어 땀도 나고 힘이 든다. 구글맵이 안내하는 대로 걷고 또 걸었다. 이제 800미터 정도만 더 걸으면 된다고 하는 순간 갑자기 무지무지하게 넓은 길이 나타난다. 그리고 길 앞 먼 곳 저 쪽에는 큰 성당이 보인다. 이 길이 바로 바티칸, 그러니까 성 베드로 성당으로 가는 길이다. 길이라고 하기보다는 광장이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길의 폭이 200미터도 넘을 것 같고, 성당까지의 거리는 거의 1킬로 가까이 될 것 같다. 정말 엄청난 길(광장?)이다. 나중에 확인하니 이곳이 성 베드로 광장이다. 성 베드로 광장부터 바티칸 시국(市國)이 시작된다. 


관광객들은 많지만 모두들 햇빛을 피해 길 양쪽 건물과 가로수 아랫길을 걷는다. 성 베드로 성당에는 물론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엄격한 예약을 통해 입장권을 사서 승인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다. 내가 상상하고 있는 바티칸은 두 가지 모습이다. 하나는 거대한 성 베드로 성당, 다른 하나는 <미션 임피서블 2>에서 이단 헌트(톰 크루즈)가 뛰어넘었던 높은 석재 담장이다. 집사람에게 가봤자 담장밖에 못 본다고 했지만 그래도 가보고 싶다고 했다.

멀리서 봤을 때는 성 베드로 성당이 그렇게 큰 줄 몰랐다. 점점 가까워지면서 성당 근처에 있는 사람들이 개미같이 보이는 것을 보고서야 성당이 얼마나 큰지 알았다. 정말 거대한 성당이다. 지금까지 본 어떤 성당과도 규모면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가톨릭 신자들이 돔형 지붕을 가진 이 거대한 성당 가까이 가면 누구나 위축되는 마음과 함께 경건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일반 관람객은 성당 바로 앞까지는 갈 수 없어 성당을 가까운 거리에서는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가까이 가지 않더라도 이 성당을 충분히 볼 수 있어, 이 성당이 얼마나 화려하고 온갖 보물로 가득 찬 곳일지는 짐작할 수 있다.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세계 미술사에 길이 남아있는 건축가, 조각가, 화가들이 이 성당의 건설에 참여하였다는 점에서 이 성당의 위용과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을 것이다. 


입장권을 끊은 사람들은 박물관을 통과하여 성당 바로 아래까지 간다. 그런데 그곳엔 가봤자 성당의 전체 모습은 제대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밖에서 좀 떨어져 보는 것이 훨씬 좋다고 스스로 위안한다. 

성바오로 성당은 교황의 거처이자 집무실이며 또 예배를 집전하는 곳이다. 교황의 생활은 과연 어떨까? 현대에 와서는 교황은 거의 정치에서 벗어나 정신적 지도자로서 세계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지만, 교황의 권력이 가장 강하였던 과거에는 어땠을까? 


몇 년 전 교황 알렉산드레 6세를 주인공으로 하는 <보르지아>(The Borgias)라는 미국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타락하고 권모술수에 능하고 부패한 교황과 고위 성직자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그런 드라마였다. 그 드라마를 보면서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교황을 비롯한 고위 성직자들만은 신의 존재를 믿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그들이 정말 신이 존재한다고 믿었으면 도저히 그런 악행을 저지를 일이 없었을 테니까. 또 <아멘>이란 영화에서는 나치에 영합하는 교황과 고위 성직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https://blog.naver.com/weekend_farmer/222016679624


그렇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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