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8 토b) 서유럽 렌터카 여행(43)
다음 행선지는 "무스티에 생뜨 마리"(Moustiers-Sainte-Marie)라는 작은 마을이다. 이 마을은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가운데 하나로 알려졌다 한다. 나는 이 마을을 여행계획에 넣으면서 아름다운 프로방스의 시골에 있는 목가적 풍경을 가진 마을로 상상하였다. 내 생각은 엄청 빗나갔다. 이 마을은 고르즈 뒤 베르동의 가파른 산 자락에 위치한 마을로서 중세마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이 마을의 아름다움이 알려지면서 마을은 완전히 관광지로 탈바꿈하였다.
마을로 들어가니 주차할 곳을 찾기 어려웠다. 마을 아래쪽부터 시작하여 위쪽까지 여러 개의 주차장이 있었지만 주차장마다 꽉꽉 찼다. 할 수 없이 점점 더 높은 곳 높은 곳으로 찾아가 겨우 주차할 수 있었다. 내가 주차하자 내 옆으로 현대자동차 SUV 차가 주차하는데 알고 보니 한국에서 여행온 20대 후반 정도의 젊은 아가씨 둘이다. 내 딸도 저 나이 또래에는 해외여행을 많이 다녔다. 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한국 젊은이들을 종종 만나는데, 여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 같다. 이번 여행에서 동양인들은 그다지 많이 보진 못했다. 그런 중에 대략 10명 중에 중국인이 6명, 한국인이 3명, 일본인이 1명 정도의 꼴이었다.
무스티에 생뜨 마리는 오밀조밀한 중세마을이었다. 경사가 심한 지역에 자리 잡은 마을이라 좁은 터에 건물들이 오밀조밀하게 들어서 있었다. 마을 뒤에는 프로방스 알프스의 블라카스 산(Baou de Blacas)이 자리 잡고 있는데, 마을은 그 계곡을 따라 이루어져 있다. 좁은 골목길이 마치 개미집같이 마을 전체를 얼기설기 연결하고 있다. 집들은 손바닥만 한 정원과 담장에 갖가지 꽃을 가꾸어 골목을 지날 때면 마치 꽃의 아치를 지나는 것 같았다. 마을의 아름다움이 널리 알려지면서 관광지화되어 완전히 상업화한 느낌이다 마을의 대부분의 집들이 레스토랑이나 카페, 상점 등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
작은 마을이지만 있을 것은 다 있다. 마을 위쪽에는 노트르담 드 보봐 성당(Notre-Dame de Beauvoir)이 자리 잡고 있는데, 성당까지 올라가는 길은 계단길로 이루어져 있다. 마을 가운데에는 작지만 아름다운 광장이 있고, 그 안에는 분수가 있다. 이탈리아에서도 여러 곳의 중세마을을 가보았는데, 이탈리아의 중세마을이 옛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하여 이곳은 새로이 꽃단장을 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이탈리아의 중세마을에 가면 마치 중세시대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이 드는데 비하여 이곳은 마치 판타지 세상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갑자기 굵은 빗발이 내려치기 시작한다. 서둘러 마을을 출발하였다. 유럽 날씨가 보통 이런 줄은 모르겠지만 이번 여행에서 경험한 날씨는 그야말로 변화무쌍하였다. 맑다가 금세 비가 몰아치고 다시 맑아지고 하는 날이 많았다.
이제 마르세유를 향해 달린다. 아직도 지대가 높은 것 같은데 주위는 끝없는 평야이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프로방스의 시골풍경이다. 푸른 초원이 끝없이 펼쳐지고 가끔 저 멀리 외딴집이 한두 채씩 보인다. 정말 평화롭기 그지없는 농촌풍경이다. 청보리, 밀밭이 펼쳐지다가 유채밭, 라벤더밭이 나타난다. 어떻게 이렇게 푸를 수가 있는지 멀리서 보면 마치 녹색의 융단을 깔아놓은 것 같다. 우리나라를 금수강산이라 하지만, 유럽이야말로 진정한 금수강산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너무나 아름답고 부러운 풍경이다. 거기다가 하늘은 얼마나 푸른지....
마르세유 시내에 들어왔다. 호텔 위치를 내비에 입력하여 왔는데, 호텔 근처에 왔건만 호텔을 찾을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길가에 임시로 주차를 하고 나와서 근처 사람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작은 간판이 달려있는 호텔을 가르쳐 준다. 주차를 하여야겠는데 호텔 주차장이 보이지 않는다. 먼저 호텔 리셉션으로 가서 주차장의 위치를 물었다. 그랬더니 먼저 체크인을 하여야 주차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체크인을 하니까 룸 키 외에 카드키 한 장과 일반 열쇠를 한 개 주는데, 카드 키는 지하주차장 출입 키이고 일반 열쇠는 주차면으로 들어가는 키라고 한다.
지하주차장 입구에 카드키를 갖다 대니까 여닫이식 주차장 문이 열린다. 지하주차장에는 차들이 거의 없다. 그런데 주차면에 차를 주차하려니 철봉으로 된 된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다. 이것을 열쇠키로 여는구나 생각하고 철봉 장애물을 살피니 과연 열쇠구멍이 있다. 그런데 열쇠를 놓고 아무리 돌려도 철봉 장애물이 움직이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다시 리셉션으로 올라와 사정을 이야기하니 여직원이 주차장으로 따라 내려와 장애물을 제거해 준다. 열쇠를 넣고 돌리면서 다른 손으로 장애물을 쓰러트려야 하는 것이었다. 유럽은 왜 모든 것이 이렇게 구식인지 모르겠다.
마르세유에서는 2박을 할 예정인데, 2박에 17만 원 정도로 예약한 호텔이다. 대도시에, 그것도 주말 2박에 17만 원이라 형편없는 싸구려 호텔일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아주 괜찮은 데다 간단한 취사시설까지 갖춰져 있다. 호텔은 아파트형 호텔을 표방하고 있다. 마치 작은 콘도와 같은 느낌이다.
호텔 뒤쪽 가까운 곳에 상당히 큰 슈퍼마켓이 있다. 산책 겸 슈퍼마켓에 장 보러 갔다. 도시 분위기가 꼭 우리나라 중소도시 같은 기분이 든다. 가는 길에 조그만 성당이 보인다. 유럽의 도시에는 어딜 가더라도 성당이 보인다. 보기에는 제법 역사가 긴 성당처럼 보이는데 어떤지는 모르겠다. 프랑스에 와서 처음으로 도시 분위기를 느낀다. 슈퍼마켓 입구에는 노숙자와 구걸하는 사람들이 몇몇 보인다.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어제는 쇠고기를 구워 먹었는데 예상대로 맛이 없었다. 유럽에서도 거의 목초로 소를 키우기 때문에 쇠고기 맛은 거의 무미(無味)에 가깝다. 육향이 듬뿍 배어나는 한우나 한국수출용 미국 쇠고기와는 맛이 전혀 다르다. 오늘은 돼지고기를 샀다. 삼겹살이 없기 때문에 등심을 사서 버터기름으로 구웠다. 아르헨티나산 마늘도 아무래도 우리나라 마늘보다는 맛이 못하다. 우리나라 마늘은 약간 단 맛이 나는데 비하여 외국 마늘은 맵기만 하고 맛은 별로 없다. 그렇지만 아쉬운 대로 그럭저럭 괜찮다. 10유로짜리 프랑스 와인을 곁들이니 이런 행복이 다시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