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그리고 여행의 정리
(2024-06-03 월) 서유럽 렌터카 여행(63)
약 40일간의 독일, 이태리, 프랑스 여행을 마치고 오늘 귀국 비행기를 탄다. 집사람이 선물을 사겠다길래 호텔 근처의 슈퍼마켓과 드러그스토어에 갔지만 별로 살 것이 없다. 여러 종류의 치즈를 사고 싶었지만, 도심에 있는 작은 슈퍼마켓이라 물건이 별로 없다. 한국에서 보기 어려운 차를 몇 통 샀다.
비행기 시간은 오후 2시 30분이다. 중간에 혹시 돌발변수가 생길 수도 있어 10시에 호텔을 출발했다. 트램을 한번 갈아타야 하는데, 예상외로 매끄럽게 연결된다. 공항에 도착하니 너무 시간이 이른 탓인지 체크인이 시작되지 않아 한참을 기다렸다. 체크인 후 출국심사에서 갑자기 막힌다. 탑승장별로 출국심사가 각각 이루어지는데, 줄이 도무지 줄어들지 않는다. 출국 심사대가 10개인데 1개만 열려있다. 한 사람 한 사람 출국심사를 받는데 느릿느릿 한정 없다.
1시간 이상을 그렇게 기다렸는데 줄은 얼마 나가지도 못했다. 이러다간 비행기 놓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되었다. 출국심사의 지연으로 이미 대기장은 만원이 되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줄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7개 심사대가 동시에 더 열린 것이었다. 아마 그동안 직원들의 점심 식사시간이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이전에 미국에서도 그랬지만 서구에서는 고객이 아니라 직원 중심으로 일을 하는 것 같다. 직원중심, 고객중심 어느 쪽이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직원을 더 채용한다면 두 조건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을 거 같은데...
10시간을 날아 상해 푸동공항에 도착했다. 트랜스퍼를 하기 위해 이동하는데, 공항의 분위기가 옛날과는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이전에는 마치 공안 스타일의 직원들이 승객을 감시하듯 하는 분위기에서 상당히 불친절했는데, 지금은 젊은 직원들이 웃는 얼굴로 친절히 안내해 준다. 조금 불편한 일이 생겼다 싶으면 먼저 달려와 도와준다. 중국도 이제 소프트웨어의 변화가 시작된 것 같다.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마음이 푹 놓인다. 유럽은 위도가 높아 흐린 날은 공기가 차가웠는데, 우리나라는 여름의 초입에 들어섰다. 이전엔 해외여행을 다녀오면 순댓국에 막걸리가 제일 먹고 싶었는데, 이번엔 감자탕에 소주가 먹고 싶다.
세종시로 향하는 공항버스 안에서 바깥 풍경이 펼쳐진다. 유럽의 풍경과는 정반대이다. 유럽의 도시들이 대부분 중세 혹은 르네상스풍의 모습을 가진데 비하여 이곳은 고층건물이 즐비한 초현대풍이다. 푸른 평원이 계속되는 유럽과 달리 여긴 산과 산이 이어진다. 버스 터미널에서 내려 집까지 택시를 타니 4천 원이다. 엄청 싼 느낌이다.
집이 엄청 넓은 것 같다. 40일 동안 물을 못 받은 화분의 식물들이 말라비틀어져 가고 있다. 일순 긴장이 확 풀린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니, 우리 집이 제일 좋다. 이것으로 40일간의 서유럽 여행은 끝이다.
작년 12월에서 금년 1월 말까지 40일에 걸친 베트남/라오스 배낭여행에 이어 3개월 만에 간 서유럽 여행이다. 어느 쪽이 더 좋았는지를 묻는다면 베트남/라오스 여행이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유럽 여행이 도시와 문화를 즐기는 여행이라면 동남아 여행은 자연과 사람을 만나는 여행이다. 각각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당분간 유럽여행은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지만, 그렇지만 이번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으므로, 다시 갈 수 있다면 이젠 훨씬 편하게 다녀올 수 있을 것 같다. 동남아 여행은 이번 겨울에 또 가고 싶다. 중국 일주여행, 네팔과 인도, 중앙아시아도 끌린다. 천천히 생각해 보자.
여행 중 몇 가지 느낀 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유럽과 우리의 생활을 비교하자면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든다.
1. 이번에 방문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는 1인당 GDP는 4만 불 중반에서 5만 불 중반대로 우리나라에 비해 조금 더 높다. 그러나 이들 나라는 오래전부터 선진국이었기 때문에 스톡에서는 우리나라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쉽게 비유하자면 우리는 최근 몇 년 동안 연봉 1억 봉급자가 되었지만, 이들 나라는 100년 전부터 1억 연봉을 받아왔다. 그러니 가진 재산의 차이는 엄청나다. 우리가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왔다고 하지만 건방을 떨 일은 아니다. 그들이 가진 사회적 자산은 엄청나다.
2. 서유럽 나라와 우리 사이에 생활의 질은 어디가 더 나은지 모르겠다. 많은 아이들이 보이고, 공원에서 아이들과 즐겁게 노는 가족들의 모습은 확실히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아주 부러웠다. 도시의 주택은 대개 중세풍 혹은 르네상스풍의 건물의 일부를 사용하는 것 같았다. 아주 소수는 넓은 정원을 가진 저택에 살고 있었다. 도시 변두리에는 작은 아파트 단지도 있었다. 그런데 중세풍 건물의 경우 관광객이 보기는 좋지만 실제 거주하는 사람들에겐 어떨지 모르겠다. 만약 나보고 선택하라면 당연히 내가 사는 아파트를 선택할 것이다. 그런 집에서 살 마음은 전혀 없다. 도시 외곽 아파트도 우리보단 못한 것 같다. 그러나 시골과 소도시는 확실히 우리보다 나았다.
3. 물가는 전반적으로 우리가 많이 싼 것 같다. 식료품 값은 유럽국가가 엄청 싸다. 우리의 1/3 혹은 절반도 안 되는 것 같다. 돈이 없어 먹을 것 때문에 설움 받을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대부분의 공산품은 우리가 훨씬 싼 것 같다. 그리고 교통비를 비롯한 서비스 요금, 외식비 등은 유럽이 훨씬 비싸다. 집값 같은 건 내가 직접 비교할 수는 없지만, 느낌 상으로는 우리나라가 쌀 것 같다.
4. 세 나라 모두 주민들 중에 외국인의 비중이 생각보다 높았다. 흑인, 동양인, 이슬람권 등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살았다. 특히 이슬람권이 많았다. 히잡을 쓴 여자들은 어떤 소도시에서 볼 수 있어, 히잡은 이제 유럽에서 여성들의 일상적 패션가운데 하나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다인종 국가로의 전환에 대한 대비가 있어야 할 것 같다.
5. 유럽의 도로에서는 제한속도가 우리보다는 훨씬 후했다. 시외 도로의 경우 제한속도가 70킬로 이하는 없었다.(공사중과 같은 특별한 경우 제외). 우리나라 제한속도 50킬로의 지방도로 정도라면 유럽에서는 아마 90킬로는 될 거다. 제한속도 70킬로의 국도라면 그쪽에서는 110킬로 정도는 될 것이다. 우리도 제한속도 규정을 좀 완화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과 관련하여서는 다음과 같이 느꼈다.
6. 유럽 렌터카는 보험료가 엄청 비싸다. 그렇지만 렌터카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이라면 비싸더라도 중개회사 보험보다 렌터카 회사의 풀커버 보험 가입을 권하고 싶다. 그 편이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 좋다. 그리고 여러 도시를 다닐 경우 하루 운전거리를 짧게 하고 여러 도시를 거치는 것보다, 운전 부담이 있더라도 방문 도시를 줄이고 한 곳에 오래 머무는 편이 좋을 것 같다.
7. 숙소를 미리 예약하는 것과 임박하여 예약하는 것을 비교하면, 미리(예를 들면 1달 전) 예약하는 편이 가격이 싼 것 같았다. 물론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임박 예약이 쌀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사전 예약이 싸다. 대신 여행 일정의 탄력성은 없어진다. 에어비앤비의 경우 적어도 2박 이상을 할 때 선택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체크인까지 이런저런 예상치 못하는 어려움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1박을 하기 위해서는 치러야 하는 비용이 크다.
8. 자연경관을 즐기려면 구글 지도에서 "유료도료 제외" 조건을 설정해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들 나라는 고속도로망이 잘 깔려있어 그냥 구글 내비를 따라가다간 고속도로 풍경밖에 못 본다. 다만 지방도로를 이용할 경우, 마을을 통과할 때 제한속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내겐 파리보다도 프랑스의 시골풍경이 더 좋았다.
9. 나는 몇 년 전부터 여행을 하면서 항상 작은 전기 매트를 가지고 다닌다. 위도가 높아 유럽의 밤은 춥다.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는 곳이 적지 않다. 그들은 우리보다 확실히 춥게 지낸다. 전기 매트를 가지고 가면 웬만큼 추운 밤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