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6-02 일) 서유럽 렌터카 여행(62)
이번 여행은 강행군이었다. 거의 휴식 없이 도시 사이를 이동하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대개 도보로 관광을 하였다. 어떤 날은 3만 보 이상을 걷기도 했으며, 이동시간이 길었던 며칠을 제외하고는 최소한 만 보 이상은 걸었다. 그러다 보니 저녁만 먹으면 잠이 쏟아졌고, 낮에도 관광을 하면서 잠깐 쉬는 사이에는 깜박 졸곤 했다. 당초 집사람과 교대로 운전을 하려 했으나, 매뉴얼 자동차를 렌트하는 바람에 전구간을 나 혼자서 운전하였기에 거의 쉴 틈이 없었다. 71세의 나이로는 꽤 무리를 한 셈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렇게 쏟아지던 잠이 프랑크푸르트에 와서 완전한 여유시간을 가지니 어디론가 달아나버렸다. 어제, 아니 오늘 새벽 2시가 훌쩍 넘어 잠들었는데, 7시가 못 되어 일어났다. 특별한 계획이 없으니 누워서 뒹굴거렸다. 아침을 먹고 나니 또 부슬비가 내린다. 핑계 김에 잘 되었다. 누워서 오랜만에 바둑도 두고, 페이스북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페북의 릴스에 재미있는 동영상이 많아 계속 찾아보다 보니, 어라? 내용이 점점 야리꾸리하게 변해간다. 볼수록 성에 관한 이야기가 많아진다. 물론 노출도가 많은 것은 아니다. 대화내용이 아주 노골적이다. 페북에 이런 동영상이 많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오후가 되면서 날이 개인다. 호텔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마인강변으로 산책을 갔다. 마인강은 라인강의 지류인데, 이 강을 이용한 수상교통과 물류 덕택으로 프랑크푸르트가 일찍부터 상업과 교통의 중심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다. 강은 수량은 풍부한데 그다지 넓어 보이지는 않는다. 기껏해야 300미터 정도에 지나지 않을 것 같다.
강 양쪽 고수부지는 산책로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많은 시민들이 산책을 즐기고 있다. 물 가 쪽은 공사를 하는지 막혀있다. 산책로를 따라 느린 걸음으로 산책을 즐긴다. 산책로 양쪽은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늘어서 있는데 위쪽으로 양쪽 가로수의 가지가 서로 만나 마치 터널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런데 플라타너스 나무 둥치가 특이하다. 젊은 나무들은 그렇지 않은데, 나이가 들어 큰 나무는 둥치가 마치 혹처럼 울퉁불퉁하다. 매화나무가 나이가 들면 괴목으로 변하는 것처럼, 플라타너스는 나이가 들면 둥치에서 큰 혹들이 생겨나는 것 같다.
이번 여행에서 독일, 이태리, 프랑스 모두에서 플라타너스 가로수를 많이 보았다. 대개가 나이가 든 큰 나무들이라 우리나라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갖지 못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이전에는 플라타너스를 싸구려 가로수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라는지 몰랐다. 우리나라에선 요즘 플라타너스 가로수를 점점 없애고 있는 것 겉은데, 다시 한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산책로 옆으로는 어린이 놀이터가 많이 마련되어 있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함께 즐겁게 놀고 있다. 이번 여행에서 방문한 도시들마다 아이들이 많이 보였다. 참 부러운 일이다. 강 저쪽에 아이젤너 다리(Eiserner Steg)가, 그리고 강 건너 먼 곳에는 교회의 첨탑이 보인다. 아이젤너 다리는 19세기 중반에 건설된 보행자 전용의 강철 다리이다.
아이젤너 다리에 올랐다. 이 다리는 프랑크푸르트의 명소로 알려져 많은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아 마인강의 경치를 감상하고 있다. 아이젤너 다리에 올라서 바라보면 마인강의 풍경뿐만 아니라 프랑크푸르트의 도시 전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강 상류의 왼쪽과 오른쪽, 그리고 하류의 왼쪽과 오른쪽 모두 4개 지역이 특색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이젤너 다리는 보행자 전용다리라 걷기에 어주 편하다. 그러나 강폭이 넓지 않기 때문에 다리가 그다지 길지는 않다.
아이젤나 다리 역시 쾰른의 호헨졸렌 다리처럼 "사랑의 자물쇠"로 유명하다. 다리 난간에 자물쇠를 채워 걸고, 열쇠를 강물에 던지면 사랑이 변함없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다리 난간에는 많은 열쇠들이 채워져 있다. 그렇지만 원조는 역시 쾰른의 호헨졸렌 다리인 곳 같다. 거기에 비한다면 열쇠의 숫자는 1/10도 안될 것 같다.
다리를 건너가 강 건너 쪽 산책로를 걸었다. 강 저쪽의 프랑크푸르트 도시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고층건물 밀집지역이 눈에 들어오는데, 금융기관이 모여있는 곳이다. 유럽 중앙은행을 중심으로 유럽의 금융 허브로서의 기능을 가진 곳이다. 강 건너 쪽을 산책한 후 다른 다리를 이용하여 다시 강을 건너왔다.
특별한 행선지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걷기 편한 길을 떠라 시가지 안으로 들어왔다. 걷다 보니 어제 찾았던 구텐베르크 동상이 서있는 광장으로 왔다. 어제 가지 않았던 다른 길로 가니, 다시 광장이 나오고 큰 동상이 하나 서있다. 다가가 확인을 해보니 괴테의 동상이다. "파우스트"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 수많은 명작을 쓴 괴테는 이곳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는 괴테의 생가가 보존되어 있으며, 괴테 박물관도 있다.
괴테 동상이 있는 광장과 이어지는 광장으로 오니 프랑크푸르트 오페라하우스의 고풍스러운 석조건물이 보인다. 이 광장에서 바로 도심공원으로 연결된다. 큰 나무들이 무성한 아주 잘 가꾼 공원이다. 나무 그늘로 인해 컴컴한 느낌이다. 공원의 숲속 길을 기분 좋게 걸어오는데, 공원 끝부분에 노숙인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서성거리고 있다.
내일이 귀국 비행기를 타는 날이라 손자에게 줄 선물이라도 살까 했으나 공교롭게도 오늘이 일요일이라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았다. 오늘 저녁거리와 내일 아침 먹을 빵도 사야 하는데 문을 연 상점이 보이지 않는다. 호텔 건너편에 있는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 가니 식당들이 몰려있는 곳이 있다. 빵을 사고 보니 한쪽에 구운 닭다리를 파는 곳이 보인다. 바로 치맥 생각이 떠올랐다.
테이크 아웃으로 닭다리를 호텔방으로 가져와 맥주와 함께 뜯었다. 그리고 마무리로 라면 1개를 끓여 나누어 먹었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저녁을 먹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