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침에 일어나니 또 비가 내린다. 그렇지만 월요일 귀국까지 특별한 스케줄이 없으니 느긋하다. 비를 핑계로 방 안에서 뒹굴거리며 느긋한 시간을 보낸다. 오랜만에 즐기는 여유 있는 하루이다.
오후 2시 무렵이 되니 비가 그친다. 방안에 있기보다 프랑크푸르트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프랑크푸르트는 인구 75만으로 독일에서 다섯 번째 큰 도시이다. 그리고 독일 금융의 중심지이며, 유럽 교통의 허브로 알려져 있다. 이런 이유로 외국인들도 많이 거주하고 있는데, 독일에서 외국인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라 한다.
호텔을 나섰다. 한낮이라 어제저녁 같은 약간 으스스한 분위기는 느낄 수 없다. 나는 술이라면 가리는 것이 없는데, 맥주도 꽤 즐기는 편이다. 내게 있어 제일 맛있는 맥주는 더운 여름날 밤 편의점이나 동네슈퍼 앞에 쳐둔 파라솔 밑에서 마시는 맥주이다. 그런데 이곳 프랑크푸르트에도 그런 스타일의 가게가 많이 보인다. 각종 술과 안주거리를 팔고 있는 가게가 가게 밖에 드럼통 탁자나 작은 테이블을 놓아두고 있다. 그러면 손님들이 술과 안주를 사들고 나와 그곳에서 서서 술을 마신다. 나도 끼어 맥주 한잔하고 싶지만 집사람이 있어 그럴 수 없다.
프랑크푸르트의 명소를 검색하면 항상 1, 2등을 차지하는 곳이 뢰머 광장과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이다. 두 곳은 서로 가까운 곳에 있어 먼저 뢰머 광장(Romerberg)으로 갔다. 호텔에서 슬슬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이다. 프랑크푸르트는 오래된 도시라 중세풍의 건물과 거리가 유명하다. 뢰머 광장으로 가는 도로 옆에도 중세풍의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렇게 오래된 건물은 아니며, 현대에 새로 지은 중세 스타일의 건물 같다.
가는 도중에 작은 조각 분수가 보인다. 아름다운 분수이지만, 주인공이라 할 가장 위의 여성 조각상이 별로인 것 같다. 상당히 오래되어 보이는 큰 석조건물이 보인다. 나름대로 꽤 알려진 건물인 것 같은데, 검색을 해보니 모두 독일어로만 나와있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조금 더 가니 꽤 넓은 광장이 나오고 광장 끝에는 높은 빌딩이 서있다. 이번 여행에서 유럽 여러 도시를 둘러보았지만 고층건물은 거의 볼 수 없었는데,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상당히 많은 고층건물이 있다. 빌딩 앞에는 EU 로고 상이 설치되어 있다. 바로 유럽중앙은행 건물이다.
롸머 광장
걷다 보면 도로 옆에는 대부분 현대에 건설한 건물이지만, 중간중간에 아주 오래된 듯한 건물이 나타난다. 이들 건물은 나름대로 각자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는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건물도 많이 섞여있다.
뢰머 광장에 도착하였다. 돌로 포장된 상당히 넓은 광장이다.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각자 주말을 줄기고 있다. 광장 옆은 중세풍, 그리고 르네상스풍의 건물들이 늘어서있다. 광장 한쪽에 오래된 건물이 있는데, 시청이라 한다. “뢰머”란 시청을 뜻하는 말로, 뢰머광장이란 결국 시청광장이란 뜻이다. 중세 혹은 르네상스 풍의 건물이라 하더라도 독일과 이태리, 그리고 프랑스의 건물은 서로 스타일이 다르다. 독일은 밝은 색의 긴 오각형 건물이라는 특징을 가진 것 같다.
건물 한쪽에는 오래된 교회건물이 보인다. 성 니콜러스 교회로서, 중세 루터교 교회라 한다. 그다지 크지는 않은 교회인데, 초록색의 뾰족한 탑이 특징적이다. 광장 가운데는 저울과 법전을 들고 서있는 여성상인 "정의의 분수"가 세워져 있다. 뢰머 광장은 프랑크푸르트의 중심이자 첫 번째 명소란 말에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광장이다.
프랑크푸르트 대성당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은 뢰머광장 근처에 있어 뢰머광장에서 보면 첨탑이 보인다. 대성당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지난 한 달 동안 크고 아름다운 성당을 두루 보아온 내게는 "소성당"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성당은 주변의 공간이 거의 없어 좀 답답한 느낌을 준다. 정면에는 광장이라기보다는 마당이란 말이 적당할 정도의 작은 공간이 있지만 옆면과 뒷면은 좁은 골목길에 불과하다.
이 성당은 우리의 삼국시대에 해당하는 7세기 초에 처음 건립되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13~15 세기에 걸쳐 건설되었다고 한다. 16세기 중반 이후 200년 이상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대관식이 여기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이 건물은 외관 이상으로 깊은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 할 것이다. 성당 앞면에는 부조 조각이 새겨져 있는데, 프랑스나 이태리에 비해서는 수준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다음은 자일(Zeil) 거리이다. 이곳은 쇼핑의 거리로 많은 상점과 백화점, 그리고 레스토랑들이 몰려있다. 특별히 살 것도 없고 끌리는 식당도 없어 걸으면서 주위 구경을 했다. 걷다 보니 먹거리 장터도 보인다. 아직 한낮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술을 즐기고 있다. 독일은 맥주의 국가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거리를 걷다 보면 아직 대낮인데도 맥주 술판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을 적잖이 만난다.
프랑크푸르트 거리 풍경
걷다 보니 아주 고풍스러운 석조건물이 보이는데, 프랑크푸르트 지방법원이라고 한다. 조금 더 가니 구텐베르크 동상이 나온다. 잘 아시다시피 구텐베르크는 유럽 역사상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한 사람이다. 그로 인해 유럽의 인쇄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하였고, 이것은 결국 과학과 문명, 문화 발전으로 연결되었다. 구텐베르크는 프랑크푸르트와 가까운 메인츠 출신인데, 예로부터 이 지역의 중심지였던 프랑크푸르트는 인쇄술이 유럽으로 확장하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프랑크푸르트는 구텐베르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곳에 그의 동상을 세웠다고 한다.
꽤 걸었다. 이제 슬슬 숙소로 돌아가야 한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여유롭게 보낸 하루였다. 내일은 뭘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