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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Jun 22. 2024

카를스루에 시내 산책

(2024-04-28 일) 서유럽 렌터카 여행(10)

어제저녁 와인을 서너 잔 들이켜고 잠이 들었다. 어제 고생한 일이 꿈만 같다. 그러나 아직 일이 완전히 정리된 것이 아니다. 교체 렌터카를 픽업하여야 한다.  


새벽 4시가 되어 잠이 깼다. 어제 못 찾았던 렌터카 사무실을 다시 구글맵으로 검색하였다. 그런데 이럴 수가! 오늘은 일요일이라 휴무란다. 이러다가 여기서 하루를 더보내야 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어제 컨택을 하였던 렌터카 비상대책팀에 조치를 취해 달라는 메일을 보냈다. 7시가 넘어 수신확인을 위해 전화를 했더니, 여자 직원이 전화를 받아 조치를 취해 주겠다며, 결과를 메일로 보낼 테니 기다려 달라고 한다. 몇 시간이 지나도 연락이 없다. 곧 호텔 체크아웃 시간인데 마냥 기다려야 하나. 


참다못해 다시 이메일을 보내고 전화를 했다. 이번에는 다른 여자가 받는다. 그런데 이런 황당할 데가! 이 여자는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 새벽에 통화한 여자를 바꾸어 달랬더니 퇴근했다고 한다. 다시 서툰 영어로 처음부터 떠든 떠듬 설명을 했다. 그랬더니 잠시 기다리면 이메일로 처리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한다. 

카를스루에 시내풍경
카를스루에 시내풍경
녹음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공원이지만 입장료를 내야 한다.

30분쯤 지나 이메일이 왔는데, 슈튜트스타트 공항에 가서 차를 인수하란다. 슈튜트스타트는 이곳에서 80킬로 정도 떨어져 있는 도시로, 내일 그곳으로 갈 계획으로 예정되어 있다. 그런데 이 많은 짐을 들고 그곳까지? 정말 택도 없는 소리다. 오늘 하루 이곳에서 더 묵고 월요일 이곳 렌터카 매장에서 차를 픽업하기로 했다. 정말 이 사람들 일 처리하는 것 보면 분통이 터진다. 


화를 내보았자 나만 손해다. 이왕 일이 이렇게 된 것 느긋하게 마음먹기로 하였다. 지금 내가 있는 도시를 확인해 보니 카를스루에(Karlsruhe) 시이다. 카를스루에는 인구 30만으로 제법 큰 도시이다. 인구로만 본다면 15만의 하이델베르크의 2배이다. 이 도시는 18세기 초 마르크그라프 카를 빌헬름 폰 바덴에 의해 조성되었는데, 현재 독일 연방헙법재판소와 연방대법원이 위치해 있는 독일 사법의 중심지라 한다. 렌터카 회사와 승강이를 하다 보니 시간은 벌써 12시가 지났다. 


챗GPT에게 물어보니 카를스루에는 유서 깊은 도시라 한다. 7년 전쟁 때는 이곳에서 프로이센 군과 프랑스 사이에 큰 전투가 있었다고 한다. 나는 지금까지 7년 전쟁은 독일의 동부에서 주로 벌어졌고, 프랑스는 프로이센을 지원한 것으로만 알았는데 잘못된 것이었나. 그렇지만 챗GPT는 워낙 거짓말을 능청스럽게 잘하기 때문에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카를스루에 궁전

이곳에서는 왕궁(Schlossplatz)이 유명하다고 한다. 호텔에서 3킬로 정도 떨어져 있다. 산책 겸 걸어가기로 했다. 참 조용하고 고즈넉한 도시이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길에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다. 호텔을 나서면 바로 역이 있고 역을 지나면 아주 큰 공원이 나온다. 밖에서 보니 우거진 숲과 연못이 있는 아주 좋은 공원이다. 유료 공원인데, 입장료를 물으니 1인당 15유로란다. 그냥 공원 담장 따라 걷기로 했다. 


독일의 집들은 대개가 세로가 긴 직육면체 건물에 뾰족한 삼각형의 지붕을 얹어놓은 것처럼 생겼다. 그래서 전체적으로는 긴 오각형 모습을 하고 있다. 거리를 걸으니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다. 아이들과 함께 나와 자전거를 타는 가족도 많다. 도로에는 노면 전차가 많이 다닌다. 현대식 트램도 있지만 100년 전 스타일의 땡땡이 전차도 있다. 참 한가로운 풍경이다. 도시 숲도 잘 가꾸어져 있다. 마치 거리와 건물들이 숲에 파묻힌 느낌이다. 우리나라 스타일의 아파트는 한 채도 보이지 않는다. 


기차역에서 큰 도로를 따라 직진하면 왕궁이 나오지만, 도시를 즐기기 위해 지그재그 길로 걸었다. 걷다가 피곤하면 벤치나 건물계단에 앉아 쉰다. 강행군의 여행도 좋지만 이렇게 느긋한 여유도 좋다. 느적느적 걷는 사이 어느새 왕궁에 도착했다. 카를스루에 시는 프랑스 귀족가문 출신인 카를 빌헬름(Karl Wilhelm)이 만든 도시로서, 그의 이름을 따서 도시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카를스루에 왕궁은 그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궁전으로서, 왕실의 거주지로 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축제의 거리

왕궁 앞에는 넓은 잔디밭이 있고 왕궁 건물은 넓게 퍼진 "V" 형태를 하고 있다. 생각보다는 상당히 큰 건물이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왕궁 앞의 넓은 잔디밭에서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앉거나 누워서 여유를 즐기고 있다. 왕궁 구경을 마치고 잠시 잔디밭에 앉았다. 담배 냄새가 코를 찌른다. 독일은 지금도 담배에 상당히 관대한 듯하다. 이곳저곳에서 담배를 피우다 보니 서로 멀찍이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한 담배 냄새가 코를 찌른다. 거리에서는 물론 식당에서도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많다. 


왕궁으로 올 때는 왕궁 앞 도로에 사람들이 조금 붐비는가 했는데, 지금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무슨 축제가 있는 것 같다. 그 분위기에 우리 부부도 덩달아 흥이 난다. 식당 앞 공터에는 의자와 탁자들로 가득 차있다. 우리도 그곳에 앉아 닭고기 튀김국수로 점심을 먹었다. 독일에 온 이후 첫 외식이었다. 함께 마신 맥주도 일품이었다. 사람들은 노천 식탁에 앉아 거침없이 담배를 피운다.


점심을 먹고 사람 구경을 하다가 숙소로 걸어왔다. 도시 중간중간에 고색창연한 석조 건물들이 섞여 있다. 그중에는 한국은행과 아주 닮은 건물도 보였다. 


역 안에 있는 빵집에서 빵을 4개 사들고 호텔로 들어왔다. 오후 5시, 한국에는 새벽 12시다. 평소 내가 잠드는 시간이 되려면 3시간이 더 지나야 한다. 내일은 렌터카 문제가 무사히 해결되길 바라며 오늘은 일찍 자자.

카를스루에 거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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