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토b) 서유럽 렌터카 여행(9)
고속도로를 한참 달리다보니 기름을 넣을 때가 되었다. 마침 휴게소가 보여 들어갔다. 주유소는 모두 셀프이다. 직원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기름을 넣으려는데 연료탱크의 캡을 아무리 열려도 열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휴게소 계산대로 가 일하는 아가씨에게 연료탱크 콕을 열 수 없으니 좀 도와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아가씨는 나이 든 직원을 불러 함께 나온다. 나이든 직원이 이리저리 살피더니, 자동차 키를 뽑아 캡에 꽂아 이리저리 돌리니 그제서야 캡이 열린다. 캡 뚜껑을 여는데 키를 사용하는 경우는 처음 본다.
그런데 또 한가지 문제가 생겼다. 주유기 한 대에 4개의 주유 펌프가 달려있는 것이다. 한개는 디젤이라 쓰여있고, 다른 3개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데, 짐작으로는 아마 휘발류들인 것 같다. 어느 것을 넣어야 하나? 렌터카를 픽업 할 때, 렌터카 회사 직원은 연료에 대해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그래도 휘발류라고 생각되었는데, 확인을 위해 주유소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나이 든 직원은 여기저기 살펴보더니 디젤이라며 디젤유를 주입하려 한다.
아무래도 미심쩍어 황급히 주유를 못하게 막고는 좀더 확인해보자고 했다. 그랬더니 남녀 직원 둘 다 펄쩍 뛰면서 이건 틀림없는 디젤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주유구 뚜껑을 보라고 한다. 뚜껑 안에는 "unleaded only"라고 쓰여있다. 이건 무연휘발류를 말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는데, 그들 둘다 이렇게 쓰여 있으면 틀림없는 디젤이라는 것이다. 하도 우기길래 독일은 그런가 하고 생각하며 그들이 기름을 넣는 것을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찜찜한 마음은 지울 수가 없었다.
기름을 가득 채우고 출발해서 500미터쯤 왔을까, 갑자기 차가 덜컹거리며 힘이 뚝 떨어진다. 바로 기름을 잘못 넣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는 아우토반이다. 다른 차들은 상상도 못할 속도로 달리고 있다. 다행히 차는 힘이 떨어지기는 하였지만 움직이기는 한다. 비상등을 켜고 갓길로 느리게 달렸다. 정말 하늘이 도왔는지 1킬로 정도 가자 졸음 쉼터가 나타난다. 일단 졸음 쉼터에 들어가 차를 세우고 시동을 끈 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을 했다. 여기서 당황하면 안된다고 혼자서 수없이 되뇌었다.
먼저 렌터카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 몇번을 했지만 없는 번호라는 자동응답만 나온다. 아무리 해도 안돼 할 수 없이 프랑크푸르트 한국영사관에 도움을 청하러 전화를 했다. 이번에도 없는 번호라는 응답이 온다. 대사관에 전화해도 마찬가지다. 할 수 없이 외통부 긴급콜센터로 전화를 했다. 알고보니 내가 국제전화를 거는 방식이 잘못되었던 것이다. 이전엔 국제전화를 걸 때 001을 돌리고, 국가번호, 지역번호 순으로 입력했는데, 요즘에는 그러면 안된다는 것이다. 0을 길게 누르면 +기호가 뜨는데, 그때부터 국가번호, 지역번호 순으로 눌러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로밍센터에서 국제전화 사용방식을 왜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는지 모르겠다. 작년 동남아에 갔을 때도 몇 번 현지에서 통화를 하려다가 결국 못하였고, 이번에도 만약에 외통부 긴급콜센터에서 가르쳐 주지 않았다면 결국 영사관과 전화를 못할뻔 하였다. 이번에도 출국하면서 공항 로밍센터 직원에게 현지 통화를 하려면 “001+국가번호+전화번호”로 하는 것이 맞느냐고 물어보았더니 맞다고 하였다. 정말 그 사람들은 가장 중요한 것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는다. 아니, 잘못 가르쳐 준다.
그러면서 프랑크푸르트 총영사관의 당직 직원 전화번호를 알려준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다른 직원은 모두 휴무라 한다. 일단 국제전화 방식을 알았으니 다시 렌터카 회사로 전화했다. 여전히 독일어의 자동응답 메시지만 나온다. 토요일이라 유무라 한다. 할 수 없이 대사관 담당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하였다. 담당직원은 젊은 여직원인 것 같았다. 그 여직원과 몇 번이나 전화가 오간 끝에 그 여직원이 렌터카 회사인 Hertz의 긴급 콜센터 번호를 알려주었다.
콜센터에 전화를 했다. 영어로 전화상으로 이야기를 하니 대화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콜센터 직원과 몇번이나 실강이를 벌인 끝에 그 직원이 긴급출동 차를 보낼테니 지금 내가 있는 위치가 어디냐고 묻는다. 내가 위치를 알 리가 없다. 모른다고 했더니 구글맵으로 알려달라는 것이다. 큰일이다. 독일에 온 이후 지금까지 계속 구글맵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구글맵 말고 다른 방법은 없느냐고 물어보았더니 구글맵 말고는 잘 모르겠다고 한다. 알았다고 하고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더라도 구글맵으로 위치를 알려주겠다고 일단 대답을 했다.
구글맵을 켜니 왠일인지 지금까지 그렇게 안되던 앱이 이번에는 제대로 작동이 된다. 그런데 기능이 불완전하여 현재 위치를 보내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지도의 화면 캡쳐 등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어쨌던 겨우 현재 위치를 알려주었다.
두 시간 쯤 지나 렉카가 달려왔다. 렉카는 우리를 어떤 큰 도시에 데려와서는 내리라고 한다. 그리고 자동차에 실려있는 우리 짐을 모두 내리고는, 렌터카 회사 사무실이라며 어디어디로 찾아가라며 말하고는 렉카를 끌고 가려고 한다. 황급히 떠나려는 그를 잡고 정확한 위치를 알려달라고 하니, 구글맵으로 렌터카 회사를 가르쳐준다. 차에 실은 우리 짐을 모두 내려놓고 그는 차를 끌고 가버렸다. 그가 가르쳐준 곳은 이곳에서 도보로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다. 무거운 짐을 끌고 갈 수가 없어 집사람보고 길가에서 짐을 지키며 기다리라 하고 혼자 갔다오기로 했다.
이곳은 어떤 도시의 역 근처였다. 구글맵으로는 렌터카 회사가 역 뒤편에 있는 것 같다. 아주 큰 역이다. 역의 폭이 200미터도 넘는 것 같다. 구글맵이 가르쳐 준 곳으로 갔는데, 렌터카 회사는 안보인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었지만 모두들 모른다고 한다. 그러던 중 한 사람이 그곳은 역 안에 있다면서 다시 역 안으로 들어가라고 한다. 역 안으로 들어가니 렌터카 사무실 쪽 방향으로 가는 길은 막혀있다. 안내 데스크가 보이길래 가서 물어보니 모르겠다고 한다.
다시 역 밖으로 나갔다. 구글맵이 가르쳐주는데로 "도착했습니다"라는 멘트는 나오는데, 문이 굳게 잠긴 건물이 있을 뿐이다. 렌터카 간판은 보이지 않는다. 역 안과 역 밖을 몇번이나 왔다갔다 했는지 모른다. 한 시간 이상을 그렇게 헤맨 것 같다. 겨우 그곳의 전화번호를 알아내었다. 자동응답 음성만 나온다. 벌써 오후 8시가 넘어 직원은 모두 퇴근한 것 같다. 할 수 없다. 오늘은 이곳에서 묵고 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곳이 어딘지도 모르겠다. 집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왔다. 내가 근 두 시간을 헤매고 다녔으니, 집사람은 길가에서 짐을 지키며 기다리느라 무척 지친 모습이다.
사정을 설명하고 이곳에서 하루 자고 가자고 했다. 토요일인데 빈 방이 있을지 모르겠다. 구글맵으로 근처 숙소를 검색해보았다. 3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호텔이 있다. 예약을 하려니 회원가입, 신상정보 입력 등 지긋지긋한 절차가 기다린다. 앓느니 죽지. 집사람에게 기다리라 하곤 호텔로 달려갔다. 꼭 우리나라 모텔 분위기의 호텔이다. 빈방이 있냐고 물으니 있다고 한다. 숙박료를 지불하고 집사람을 데려왔다.
호텔에 들어와 샤워를 하고나니 이제 좀 마음이 가라앉는다. 정말 길고도 긴,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하루였다. 그래도 어쨌든 시내로 들어 올 수 있어 다행이다. 프랑크푸르트 총영사관의 당직 여직원이 아니었으면 정말 독일 고속도로변에서 하룻밤을 보낼 뻔 했다. 아니 다음날이 되었어도 어떻게 할 방법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우리 외교관에 대해 다소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었다. 대사 등 고위 외교관으로 활약한 친구들이 몇 명 있긴 하지만, 내가 평소에 생각하는 우리 외교관은 교민이나 국민의 어려움을 도와주기 위해 노력한다기 보다는 한국에서 오는 정치인이나 고위직 인사들 접대에나 신경쓰는 그런 부류가 다수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내게 도움을 준 여직원은 그렇지 않았다. 휴일인데도 불구하고 나의 어려움을 도와 주려고 몇시간 동안이나 애를 썼으며, 그 덕택에 불행중 다행으로 이렇게 편히 잠자리에 들 수 있게 되었다.
내게 도움을 준 프랑크푸르트 총영사관의 여직원은 홍지혜 실무관이라고 한다. 목소리로는 아주 젊은 여성인 것 같은데, 앞으로 그녀가 훌륭한 외교관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