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9, 월) 서유럽 렌터카 여행(11)
렌터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다. 6시가 좀 넘어 다시 Hertz 사무실이 있다는 카를스루에 역으로 향했다. 역으로 가는 도중에 계속 렌터카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보았다. 계속 자동응답음만 나오고 사람이 받지는 않는다. 또 뭔가 불안하다. 지난 이틀 동안 몇 시간을 렌터카 사무실을 찾는다고 돌아다니다 실패했는데, 이번은 어떨지 모르겠다. 이번 건으로 국제전화를 수십 통은 했다. 귀국하면 국제전화 요금 폭탄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역 안에 SIXT 렌터카 사무실이 보인다. 직원이 한 사람 앉아있다. 렌터카 직원이라면 동업자의 사무실을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들어가서 Hertz 렌터카 사무실이 어디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이런 황당할 데가! 여긴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여기서 가장 가까운 Hertz 사무실을 알려준다. 여기서 약 3킬로 떨어진 곳이다. 그 사무실은 8시부터 영업 시작이다. 없는 사무실을 그렇게 찾아다녔던 것이었다.
시간도 충분하고 대중교통을 타는 방법도 잘 몰라 걸어가기로 했다. 렌터카 사무실로 가는 길은 도시숲 길이다. 아침의 시원한 공기가 향기롭다. 기분 좋은 길을 40분 남짓 걸어가니 Hertz 렌터카 사무실이 나온다. 넓은 주차장 한 편에 사무실이 있다. 들어가서 내 이름을 말하니 교체 차량을 준비해 두었다고 한다. 저번에는 파란색의 차였으나 이번에는 빨간색의 피아트 500이다. 지난번에 탔던 아담 오펠과 거의 비슷한 스타일의 하이브리드 차이다. 배기량은 아마 800cc 정도라 생각된다.
직원에게 카를스루에 역 앞의 사무실은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곳엔 Hertz 사무실이 없다고 한다. 어처구니없다. 새로 픽업한 차의 연료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휘발유인 E5나 E10을 주입하라고 한다. 연료탱크 캡을 여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니, 시범을 보이는 사람이 자동차 키를 꽂아서 몇 번이나 시도한 끝에 겨우 연다. 다음에 주유할 때 과연 내가 제대로 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오전 10시가 넘어 카를스루에를 출발했다. 오늘 숙박지인 슈투트그라트는 여기서 70킬로 남짓 떨어져 있다. 카를스루에에서 이틀을 허비하는 바람에 여행 초반계획이 완전 엉망이 되었다. 검은 숲을 체험할 수 있는 프라이부르크와 빌링겐슈베닝겐을 건너뛰었을 뿐만 아니라, 유명한 호헨졸렌성까지 못 보게 되었다. 검은 숲은 꼭 보고 싶었는데 아쉽다.
호텔 앞에 주차장이 있어 그곳에 주차를 하고 체크인을 하기 위해 들어갔다. 그런데 호텔 직원이 내가 주차한 곳은 유료주차장으로서, 호텔주차장이 아니라고 하면서 지하에 있는 호텔 주차장에 주차를 하라고 한다. 차를 운전하여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는데, 주차장 입구에 육중한 셔터가 내려져 있다. 아무리 문을 열려해도 열리지 않아 씨름하던 중 나오는 차가 있어 그 틈에 들어갔다. 호텔 직원에게 물으니, 셔터 옆에 있는 기계에 룸 키를 넣여야 셔터가 열린다고 한다.
예약한 호텔에 짐을 풀고 슈투트가르트(Stuttgart) 시내 관광을 하기로 했다. 슈투트가르트는 산업 도시로서, 자동차의 도시이다. 벤츠, BMW, 포르셰의 본사나 제조공장이 이곳에 있다고 한다. 벤츠와 포르셰는 이곳에 박물관을 두고 있다. 벤츠 박물관은 입장료가 16유로, 포르셰는 9유로라 한다. 20여 년 전 일본 도요타 시에 있는 도요타 자동차 박물관에 간 적이 있는데, 거긴 무료였던 것 같은데, 이 녀석들은 너무하다.
나는 자동차에 그다지 흥미가 없다. 웬만한 차는 봐 봤자 무슨 차인지도 모른다. 아는 차라곤 제네시스, 그렌저, 소나타, K7, K5, SM 시리즈 정도이다. SUV는 거의 모른다. 그런데 이제 한돌 반된 외손자가 차를 너무 좋아한다. 손자 기념품 장난감이나 살까 하고 그래도 입장료가 싼 포르셰 박물관으로 갔다. 호텔에서 500미터 정도 떨어져 있어 걸어갔다. 박물관의 규모가 엄청나다. 예술적으로 건축된 큰 빌딩 전체가 박물관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오늘은 휴장일이란다.
이곳은 휴일에 관객들이 많이 오기 때문에 월요일이 휴무인 것 같다. 내일은 오픈하느냐고 물으니, 내일은 오픈하지만 모레는 노동절이라 또 휴무라 한다. 손자 선물을 사려면 내일 들리는 수밖에 없다.
독일의 고속도로인 아우토반은 제한속도가 없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직접 운전해 보니 제한속도가 있는 곳이 의외로 많다. 그렇게 굴곡진 도로가 아닌데도 수시로 120킬로, 100킬로, 심지어는 80킬로 등의 제한속도 구간이 나온다. 그런데 제한속도 해제구간 표시는 본 적이 없다.
독일인들은 고속도로에 익숙한 데다 선진국 시민들이라 운전 매너가 좋을 줄 알았는데,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만큼은 아니지만 속도가 느리다고 차 뒤에 바싹 붙어 위협운전을 하는 녀석들도 적지 않다.
시내 운전은 정말 골치 아프다. 우리나라야 시내는 대개 50킬로 제한이고, 가끔 학교 앞에서나 30킬로이지만, 여기서는 70킬로, 50킬로, 30킬로로 수시로 바뀐다. 우리 내비는 단속카메라가 있는 곳을 알려주지만 여기서는 그렇지 못하다. 항상 신경을 곤두세워 제한속도 표지판을 살핀다.
그런데 독일시민들은 이 제한 속도를 얼마나 잘 지키나? 30킬로 제한속도를 지키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나는 속도제한 표시가 나오면 곧이곧대로 그것을 지킨다. 그러다 보니 항상 내 앞에는 텅 비었고, 내 뒤로는 차들이 줄을 서있다. 성미 급한 녀석들은 그냥 추월해 달려버린다. 옆 차선의 차들은 모두 나보다 빠르다.
오랜만에 매뉴얼 차를 운전해서 정차한 상태에서 스타트가 늦다. 그리고 스타트를 한 후에도 빨리 속도를 높이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뒤에서 클랙슨으로 빵빵거리는 경우도 여러 번 당했다. 독일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이 매너 좋은 운전자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렇지만 물론 우리나라보단 그래도 나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