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여행, 아홉째 날 하노이

(2018. 1. 4) 하노이에서 느긋한 하루

by 이재형

며칠 동안 강행군을 해 추위에 떨고 피로도 쌓여 일정을 바꿔 오늘 하루는 쉬기로 했다. 느지막하게 일어나 아침 식사를 했다. 작은 호텔인데 식사가 깔끔하고 직원도 무척 친절하다. 시내 중심지에 위치해있어 아침부터 주위가 소란스럽다.

오전엔 침대에서 뒹굴 거리며 보내다가 점심때쯤 밖으로 나왔다. 비좁은 길에 차와 오토바이와 사람이 뒤엉켜 길을 가기가 힘들다. 베트남 어느 도시에 가더라도 인도는 모두 주차된 오토바이가 점령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차도로 다닐 수밖에 없다. 차량과 오토바이의 영향으로 매캐한 배기가스 냄새가 코를 찌른다.

오토바이는 인도건 횡단보도건 상관을 않는다. 무조건 저돌적으로 달리면서 알아서 피해 가란 식이다. 그렇지만 사람들도 그 많은 오토바이를 다 피할 순 없다. 사람들도 상관 않고 내키는 대로 걷는다. 차와 오토바이가 알아서 피해 가라는 거다. 이게 서로 조화가 맞는지 그렇게 빵빵거리고 엉키면서도 신기하게 사고는 나지 않는다.

숙소에서 조금 걸어 나오니 바로 <호안끼엠 호수>가 나온다. 이 호수는 하노이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으며, 하노이를 대표하는 명소이다. 아마 하노이 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장소일 것이다. 호수는 남북으로 길쭉한 데, 호수 북쪽의 작은 섬에는 사당이 있다. 몽고군의 침략을 물리친 장군의 사당이라 한다.

호수의 동쪽은 관청가이다. 많은 정부기관과 공공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호수 남쪽은 좁은데, 그저 그렇고 그런 특색 없는 거리다. 새로운 시가지와 연결된다. 서쪽은 큰 카페나 레스토랑 등이 들어서 있다. 서쪽 중간쯤 신한은행 지점이 위치해 있는데, 여기서 환전하려다 이차선 도로 양쪽을 물밀듯이 달리는 차와 오토바이들로 인해 결국 길을 건너지 못해 포기하였다. 호수 북쪽은 전형적인 상업, 서민의 거리로 하루 종일 북새통이다. 없는 것이 없다는 하노이 제일의 전통시장인 <동쑤언 시장>도 여기에 있다. 외국인 관광객도 넘치며, 의자도 없는 노점판에서 많은 사람들이 계단이나 인도 턱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다. 하노이의 솔솔한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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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시내와 호안끼엠 호수

특별히 바쁜 일도 없으므로 천천히 걸으며 호수를 한 바퀴 돌았다. 베트남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이 호수 주위는 15년 전 옛날 그대로이다. 15년 전에 왔을 때 한 가지 신기한 게 있었다. 시내 한복판에 있는 호수란 물 관리를 제대로 못해주면 금방 오염된다. 저개발 국가들은 수질오염 관리에 매우 취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노이 시내에 있는 호수들, 이 <호안끼엠 호수>를 비롯하여 내가 본 몇몇 호수들은 거의 오염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지금도 호안끼엠 호수는 깨끗해 보인다. 정부에서 물 관리에 특별한 신경을 쓰나 보다.


내가 묵고 있는 호텔은 호수 북쪽이다. 북새통, 악다구니 속을 뚫으면서 하노이의 재미를 느낀다. 하노이에는 그래도 교통신호등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그건 아무 의미도 없다. 신호가 있건 없건 모두 소신대로 달린다. 100미터를 전진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렇지만 나도 이 분위기에 점점 익숙해진다. 간단히 늦은 점심을 하고 호텔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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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하노이 시내

술가게가 보인다. 내일부터 하롱베이 관광인데, 술 한잔 없는 해물요리가 무슨 맛이랴. 지금까지 들린 식당에서는 술이라고는 맥주만 팔았다. 독한 술이라 얘기해 봐도 모두들 모르는 표정이다. 가게에 들어가니 위스키, 와인, 보드카를 비롯하여 각종 술이 다 있다. 그런데 이런 술들이 모두 진짜일까? 약간 의심도 든다. 제일 안전한 방법은 싼 술을 사는 것이다. 죠니워커 래드 큰 병 하나를 40만 동 주고 샀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싸구려라고 살 수도 없는 위스키이다. 내가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 다닐 때까지만 하더라도 제일 고급 선물이 죠니워커 래드였고, 죠니워커 블랙은 거의 환상의 술이었다. 아버지가 경찰서장 하는 친구네 집에는 장식장에 죠니워커가 즐비하게 전시되어 있었다는 이야기가 친구들 간에 전설적으로 내려왔다. 이후 박 대통령이 사망 전 술자리에서 마신 술이 시버스 리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급기야 시버스 리걸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위스키로 떠오르기도 했지만... 아무튼 옛날에는 위스키하면 죠니워커였다.

숙소에 돌아와서 한잔 하려고 병을 따니 명 마개 속에 뭔가가 또 병을 막고 있어 따를 수가 없다. 결국 포기하고 내일 배를 타면 술 따르는 방법을 웨이터에게나 물어봐야겠다.

밤에 하노이 명물이라는 야시장 구경을 갔다. 숙소에서 500미터 정도 거리다. 사람과 노점으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상당히 긴 구간을 자동차 통행을 금지시키고 노점을 하도록 하고 있다. 외국인들이 상당히 많다. 먹을 걸 기대하고 갔는데, 옷 가게와 액세서리 가게가 대부분이다. 트레이닝 복 바지를 하나 샀다. 내일부터 내복 대신에 껴 입으려고 한다. 내복 입어본지가 근 오십 년이 되어 가는데, 설마 베트남에 와서 입게 될 줄은 몰랐다. 이젠 하롱베이든 사파든 어딜 가더라도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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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의 밤풍경

(계속)

2018.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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