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5) 하롱베이 크루즈 여행
어제저녁 샤워를 하던 중 뜨거운 물에 손등이 따가웠다. 살펴보니 양손 손등이 화상을 입은 듯이 빨갛다. 해수욕장서 살갗이 타듯이 새빨갛다. 이곳 자외선이 아주 강한 모양이다. 지금까지 계속 흐리거나 비가 와 햇빛이 든 날이 거의 없었는데 이렇게 화상을 입은 거다. 가끔 거울에 얼굴이 얼핏 비칠 때 얼굴이 빨갛길래 추워서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햇빛에 타서 그런 것이었다. 오늘부턴 잊지 말고 꼭 선크림을 발라야겠다.
오늘부터 1박 2일로 하롱베이 투어를 한다. 호텔 주위가 온통 여행사이며, 이들의 가장 주된 투어 프로그램이 하롱베이 투어이다. 사전에 인터넷을 통해 투어 비용을 알아보니 40불부터 150불 정도까지 다양했다. 내가 묵은 호텔에서도 투어 알선을 하길래 협의하니 1박 2일에 160불부터 250불까지 3개 프로그램을 제시한다. 비싸길래 망설이다 내가 언제 또 하롱베이에 올 기회가 있으랴 생각해 제일 비싼 프로그램을 선택하고 할인을 받았다.
2박 3일의 사파 투어와 합해서 240불을 주었는데, 하롱베이 투어가 180불, 사파 투어가 60불로 계산되었다. 크루즈 여행으로 배에서 하룻밤 자게 된다. 어제저녁을 먹으러 나갔더니 주위 여행사에서 제시하는 하롱베이 투어 비용은 대개 20-40불 정도로 가격이 엄청 싸다.
아침 8시 호텔을 출발했다. 역시 버스가 주위 호텔을 돌면서 일일이 승객을 태워간다. 참 친절하다. 하노이에서 하롱베이까지 200킬로가 넘는 거리다. 거의 4시간에 걸쳐 달려왔다. 옆에 앉은 한국인 관광객이 내게 투어 비용을 묻고는 왜 그렇게 비싸냐고, 나보고 바가지를 크게 썼다 한다. 자기네들은 3인 가족 1박 2일에 140불을 주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나도 찜찜하다. 그렇지만 바가지를 써봐야 얼마나 썼으랴, 술 한 잔 덜 먹은 셈 치자하고 애써 스스로 위안하며, 그 생각을 떨쳐버린다. 이 버스에 탄 사람들은 여러 프로그램을 선택한 사람들이 섞여 있는 것 같다.
크루즈 선을 타는 순간 이 프로그램을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투어링에 참가한 승객은 나까지 포함하여 모두 17명, 이들이 이 크루즈 선 전체를 이용한다. 내게 배정된 선실은 큰 더블침대가 놓인 비교적 넓은 방으로 화장실에 샤워시설까지 잘 구비되어 있다. 그리고 난방도 잘되어 에어컨을 켜니 금방 따뜻한 바람이 나온다. 호텔방보다 오히려 낫다.
2층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승객들이 각자 소개를 한다. 16명이 커플이고 나 혼자 싱글이다. 모두 9개 국적이다. 이렇게 국적별로 따로따로 모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앉은 테이블에는 5명이 앉았는데, 캐나다인 노부부와 몽골의 젊은 부부다.
몽골 부부는 남편은 울란바토르 대학 경영학과 교수이고, 아내는 커머셜 아트 관련 일을 한다고 한다. 몽고에서는 상당한 엘리트 부부로서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는 것 같다. 말을 타보았느냐고 물으니, 지금은 도시에서 살기 때문에 자가용 승용차를 이용하지만, 과거에는 늘 말을 탔으며, 지금도 말을 가끔 탄다고 한다. 내가 다니는 직장인 KDI의 국제교류 프로그램에도 몇 번 참여한 적이 있어 한국에도 종종 왔으며, KDI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식사가 나오는데 아주 훌륭하다. 랍스터, 새우, 게, 생선, 조개 등의 해물요리 코스인데, 그야말로 진수성찬으로 베트남에 온 이래 가장 좋은 음식이다. 다만, 아쉽다면 내게는 이런 고급 요리보단 쌀국수가 훨씬 좋다는 점이라 할까. 식사를 하는 사이 배는 하롱베이의 섬들을 헤치고 나간다.
이 며칠 동안 베트남의 많은 명승지를 거쳤지만, 하롱베이는 그래도 또 감동이다. 바다에 떠있는 섬들의 지형 자체는 그저께 다녀온 닌빈의 짱안과 비슷하다. 그렇지만 그 넓이가 너무나 광대하다. 밥그릇을 엎어 놓은 듯 한 섬들이 끝도 없이 펼쳐져있다. 섬 하나하나의 모양이 기묘하고, 이 섬들이 겹쳐 새로운 풍광을 만들어 내고, 그리고 바다와 조화되어 선경을 이룬다. 바다에 떠 있는 많은 배들도 가까이서 보면 흉물스럽기도 하지만, 조금만 떨어져서 보면 풍경과 하나가 된다.
배는 넓고 승객 수는 적으니까 배 이쪽저쪽을 옮겨가며 마음에 드는 경치를 즐길 수 있다. 바다는 더없이 고요하다. 그도 그럴 것이 수많은 섬들이 방파제 역할을 하기 때문에 파도가 세려야 셀 수가 없을 것이다. 체험 투어로 노 젓는 배를 타든 지, 카약을 타든 지 하란다. 2인승 카약을 탔다. 산 밑으로 난 큰 동굴을 지나니 4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분위기의 바다가 나왔다. 파도가 없다 보니 노를 조금만 저어도 카약은 미끄러지듯이 나아간다.
사방이 산인데, 원숭이들이 많이 살고 있다. 하도 잘 먹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먹을 것을 던져줘도 별 반응이 없다. 원숭이들이 서식하는 이 섬들도 해변은 깎아지른 절벽이다. 원숭이들은 거침없이 아래 위로 달린다. 원숭이들이 나무를 잘 타는 것은 진작부터 알았지만, 록 클라이밍도 이렇게 잘하는 줄은 처음 알았다. 오버행(overhang)도 거침없이 올라간다.
크루즈 선은 하롱베이 이쪽저쪽을 소리 없이 지나간다. 아주 천천히 가다 보니 엔진 소리도 나지 않고, 마치 빙판에서 미끄러지는 느낌이다. 저녁 시간 전 3층 갑판에 있는 오픈 바에서 승객들이 모두 모여 술을 한잔하면서 잡담을 나누었다. 실없는 소리를 하면서 웃고 떠드는 사이, 어느덧 저녁시간. 새우, 생선 등 다양한 해물요리와 양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이 잘 요리되어 나온다, 베트남 특유의 향신료와 잘 어울린다. 진수성찬이다.
하롱베이의 야경은 또 다른 흥취를 가져다준다. 점점이 떠 있는 크루즈 선들의 불빛이 바다와 섬과 잘 어울린다. 느릿느릿 나아가는 배는 같은 풍경을 다른 여러 각도에서 보여주어 새로운 감흥을 준다. 날씨가 흐려 별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이 아름다운 풍경에, 다시 하늘에서 별이 쏟아져 내린다면 얼마나 장관일까. 갑판 바에서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깊어가는 하롱베이의 밤을 보낸다.
2019년 1월 5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