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여행: 열한 번째

(2019.1.6) , 하롱베이 투어

by 이재형

아침에 눈을 뜨니 아직 사방이 캄캄하다. 어제저녁 일부러 선실 커튼을 반쯤 열어두었는데, 아직은 창문 사이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제저녁 가벼운 위스키 한잔 덕택에 잘 잤다. 조니워커 레드도 마셔보면 좋기만 한데, 우리나라에선 왜 싸구려 취급을 하는지 모르겠다. 몇 년 전 친구가 해외여행을 하고 귀국하면서 <밸런타인 21년 산>을 한 병 사 오겠다 길래, 그러지 말고 1년 산 21병을 사 오라고 농을 했던 생각이 난다.

날이 뿌옇게 밝아 오길래 세수를 하고 갑판 위 선상 바로 올라갔다. 가이드가 미리 와 있다. 비가 뿌리고 있어 천막 밑으로 비를 피했다. 어제 하루를 겪어보았지만 참 성실한 친구다.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데, 손님들에게 성심을 다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외국인들에게 베트남을 알리려고 아주 애를 쓴다. 베트남의 문화나 베트남의 현실, 그리고 앞으로의 베트남의 변화에 대해 외국 손님에게 하나라도 더 말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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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롱베이의 새벽

내친김에 베트남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면, 우선 참 친절하다. 내가 만난 사람이라야 호텔 직원, 식당 종업원, 택시 등 교통종사자, 점원, 기타 관광 관련 종사자들이 대부분이니까 대상은 한정되어 있다. 그렇지만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와 성의껏 대해주었다. 고압적이거나 싫다는 내색을 하는 사람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친절이라면 일본 사람을 꼽는다. 일본 사람들의 친절은 사무적인 친절이다. 어떤 사람은 그래서 일본 사람의 친절은 가식적인 것이며, 우리나라 사람은 사람을 진정성 있게 대하므로 오히려 우리나라가 낫다고 한다. 나는 그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처음 만난 식당 종업원과 무슨 진정성을 나눌 일이 있을까. 어떤 동기든 간에 식당 종업원이 내게 사무적이든 어떻든 친절하게 대해주기만 하면 나는 그걸로 만족한다. 아무리 진정성이 있더라도 내게 불친절하면 나는 싫다. 그런데 내가 만난 베트남 사람들은 친절하면서도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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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롱베이의 섬과 동굴

10여 년 전의 일이다. 우연히 직장동료들과 상호는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욕쟁이 할머니 집이라는 서울 인사동에 있는 한 식당에 간 적이 있다. 주인 할머니는 손님들에게 걸쭉한 욕을 쏟아내면서 주문을 받고, 또 욕과 함께 음식을 던지듯이 내놓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손님들이 아무렇지 않게 재미있다는 표정이었지만 나는 듣기가 매우 거북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화도 났다. 그래서 나도 그 할머니에게 온갖 욕을 섞어가며 음식 주문을 했고, 또 욕과 함께 음식 타박을 했다. 나의 반응에 일을 거들고 있던 할머니 아들이 내게 화를 냈다. 나도 그런 욕이 거슬리면 당신네들부터 욕을 하지 말라고 쏘아붙여 준 적이 있다.

이야기가 잠시 옆으로 빠졌지만, 여하튼 날이 밝아오면서 바다는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주위에 있던 크루즈 선들도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다. 멈춰있던 배들이 소리도 없이 조금씩 미끄러진다. 뿌연 바다 안갯속에서 섬들이 점점이 떠 있다. 어디선가 긴 뱃고동 소리가 들린다. <무테키>(霧笛)란 말이 있다. 일본어로 "안갯속에서 들려오는 뱃고동 소리"란 뜻이다. 이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말이다.


아침 식사시간이다. 두 끼를 건너뛰었던 쌀국수를 먼저 한 그릇 비우고, 토스트에다 오믈렛 등 잔뜩 먹었다. 이름도 모르는 열대과일, 그리고 망고 주스까지, 든든한 아침이다. 식사 후 배는 다시 움직여 우리를 어느 섬으로 데려갔다. 섬 이름은 모르겠고, 섬의 산 중턱에 뚫린 <승속 동굴>이 명소다. 베트남은 정말 가는 곳마다 동굴이다. 동굴의 나라라고나 해야 할까. 내가 기껏 며칠 머물면서 지금까지 가본 동굴이 몇 개인가?


산길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 산 중턱에 이르니 거대한 동굴이 입을 벌리고 있다. 동굴을 들어서자마자 넓은 광장이 나타난다. 천정도 무척 높다. 동굴은 오밀조밀하게 연결되면서 갖가지 형상을 보여준다. 순로(順路)를 따라 약 30분간 동굴 투어가 계속되었다. 조금 높낮이가 있는 곳은 계단으로 연결되는데, 돌을 가져와서 계단을 만든 것이 아니라 바닥을 그냥 깎아서 만든 것 같다. 이 동굴도 무척 아름답다. 그렇지만 베트남에 와서 이미 많은 좋은 동굴을 보았기 때문에 감동은 덜하다.

동굴 투어를 마치고 다시 승선하였다. 크루즈 투어도 거의 끝나간다. 간단한 베트남 요리 만들기 체험행사가 있었다. 요리장이 시범을 보이고 우리는 따라 했다. 쌀 보쌈이라 할까, 얇은 쌀 페이퍼에 각종 재료가 들어간 속을 올려 이것을 쌈 싸듯 싸서 쪄먹는 음식이다. 마지막 점심 요리도 훌륭했다.

하노이로 돌아오는 길, 중간에 휴게소에 들렀다. 가는 길에 들렸던 휴게소와는 다른 휴게소이다. 많은 석 조각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모두 대리석 제품이다. 휴게소 안에는 장애인들이 일하는 큰 공방이 있다. 여기서 석판에 여러 그림을 그려 넣는 석 공예품을 만들어 판매한다. 갈 때 들렸던 휴게소에서는 수를 놓는 장애인 공방이 있었다. 하나쯤 사고 싶었지만 짐이 될 것 같아 포기했다.

하노이 시내로 들어왔다. 여전히 복잡하고 왁자지껄하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식사를 하러 나왔다. 여전히 차들이 뒤엉켜들 있다. 베트남에 오니 우리나라 차들이 많이 보인다. 눈 대충으로는 거의 50% 이상이 우리나라 차인 것 같다. 특히 기아차가 많이 보인다. 앞으로도 시장을 잘 유지하고, 신장시켜 나갔으면 좋겠다.

저녁은 베트남식 중국 음식(아니 중국식 베트남 음식이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을 먹었다. 각종 꼬치이다.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그리고 내장, 닭발까지. 먹을 것을 골라서 종업원에게 주면 숯불로 구워준다. 종류별로 하나씩 대여섯 개를 골랐다. 옛날에 대학시절 제기동 개천 가 포장마차에서 먹든 닭발이 생각나 닭발도 한 꼬치 골랐다. 그때는 양념된 닭발 한 개로 소주 반 병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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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의 오후 풍경과 중국식 꼬치구이 식당

며칠 전 사둔 조니워커를 물병에 조금 덜어나갔다. 타이거 맥주 한 병 시켜 진하게 폭탄주를 만들어 꼬치안주와 함께 먹었다. 닭발 맛은 영 아니다. 역시 닭발은 고추장 양념을 해야 한다. 내일은 사파 여행, 새벽에 출발해야 한다. 아쉽지만 일어나야 한다. 오랫 만에 마신 독한 술로 알딸딸하다.


2019년 1월 6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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