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8) 빗속의 사파 트레킹, 그리고 예기치 못한 부상
처음에 베트남 배낭여행 계획을 세우고, 집 사람과 함께 가자고 했을 때, 집 사람이 응하지 않은 두 가지 큰 이유가 도로와 화장실이었다. 도로는 포장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엉망인 곳이 많을 거고, 화장실은 틀림없이 매우 더럽고 비위생적일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생각과 달랐다.
도로는 무질서하긴 했지만 포장은 생각보다 잘 되어있다. 도시의 경우는 이면도로도 모두 포장되어 있다. 화장실은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더 깨끗하다. 일반 국민들의 생활은 모르겠지만, 최소한 관광객이 접촉하는 부분에서는 매우 청결하다. 관광객인 우리가 이용하게 되는 화장실은 숙소, 식당, 공중화장실 등에 한정된다. 푸세식은 당연히 없고, 전부 수세식이다. 어떤 곳은 시설은 낡았지만 항상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화장실은 잘 지어놓았지만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지저분하거나 냄새가 나는 경우가 많다. 베트남에서는 그런 경우를 한 번도 못 봤다. 그런 점에서는 오히려 우리보다 낫다.
사파의 호텔은 난방이 잘 되어 따뜻했다.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8시 반부터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호텔에서 정글화 무늬가 들어간 장화와 큰 우산을 빌려준다. 포장된 큰길을 가다가 이내 작은 오솔길로 들어선다. 이곳 사파에서는 모든 가축을 방목하는 것 같다. 소들이 주인도 없이 어슬렁 다니는가 하면, 돼지도 부지런히 먹이를 찾아 돌아다닌다.
우리 트레킹 그룹은 7명인데, 같은 수의 원주민 아줌마, 할머니들이 따라붙는다. 길이 험하다 보니 도와주는 사람들이다. 본격적인 트레킹 코스로 들어서니, 가파른 길을 계속 내려간다. 비가 내리다 보니 비안개가 자욱하다. 주위만 어렴풋이 보일 뿐 건너편 산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모처럼 좋은 곳을 찾아왔는데, 기상 때문에 그 경치를 즐기지 못해 아쉽다. 날씨가 워낙 변화무쌍하므로 곧 안개가 걷히겠지, 스스로 위안해본다.
이런 악조건의 트레킹인지 생각 못했다. 내려가는 길은 가파른데, 계속 비가 내려 황토 진창과 바위가 섞여 길이 매우 미끄럽다. 우리나라와 같이 등산로가 정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서 위험하기 그지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트레킹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후회가 된다. 나이가 들면서 제일 떨어지는 신체적 감각이 균형감이다. 미끄러질라 그야말로 조심조심 내려갔다. 나이가 들면 조금의 미끄러짐이라도 몸에 주는 대미지가 크다.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그렇게 한 시간 가까이 내려왔으려나. 바로 아래 평탄한 길이 보인다. 그 순간 황토 진창에 발이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아래에 튀어나온 바위가 있었다. 엉덩방아를 찧는 순간 엉덩이 꼬리뼈가 정통으로 바위에 부딪혔다. 소리도 못 지를 만큼 아프다. 충격이 온몸으로 전해온다. 특히 허리 부분이 아프다. 한 10여분 정신을 가다듬고 생각해보니 트레킹을 계속할 상황은 아니다. 엉치뼈와 허리가 아파 도저히 걸을 수가 없다.
이제부터 제법 넓고 평탄한 길이라 보이 길래 가이드에게 택시나 오토바이를 불러달라고 하자, 여긴 차가 못 들어온다고 한다. 걸어 나갈 수밖에 없다. 차가 오는 곳까지 얼마나 걸리냐고 물으니 2시간가량 걸어야 한단다. 어쩔 수 없이 천천히 걸었다. 자꾸 걱정이 된다. 뼈는 괜찮은 것 같은데, 근육이 놀라서 많이 아픈 것 같다. 다행이라면 험한 산길은 이제 끝났다는 것이다. 몸이 아프니 주위의 좋은 경치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앞으로 평생 장애인으로 살아야 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된다.
두 시간 정도 걸었지만 오토바이가 들어올 수 있는 길은 보이지 않는다. 가이드에게 얼마나 더 가야 하느냐고 묻자, 또 2시간 더 가야 한단다. 그렇게 부상후 거의 4시간을 걸어 오토바이가 다닐 수 있는 길이 나왔다. 나 혼자 먼저 오토바이 뒤에 타고 트레킹 종착점인 식당으로 왔다.
식당에 들어서니 손에 손에 물건을 든 행상들이 물건을 사라고 몰려든다. 대부분 이곳 소수민족이 많든 수제 공예품이다. 딱히 살 것도 없는 데다가 부상의 고통으로 물건을 살펴볼 마음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일곱 살이나 여덟 살쯤 되었을까, 아주 어린 여자아이가 초롱초롱한 까만 눈을 뜨고 집에서 만든 것이라며 손목 끈을 사라고 하는데, 도저히 안 살 수가 없었다. 그러자 주위의 다른 행상이 몰려들어 나도 나도 하고 물건을 내미는데, 도저히 감당이 안된다. 우리와 함께 트레킹에 나섰던 아줌마, 할머니들도 물건을 가져와 사달라고 한다. 이 역시 안 살 수가 없다.
저개발 지역에서 관광객과 원주민 간의 현격한 소득 차이, 이것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으며 풀기 어려운 난제이기도 하다. 관광객의 선의가 지역 공동체를 붕괴시키기도 한다. 동남아 어느 오지에 관광객이 늘어났다. 아이들은 관광객을 상대로 구걸을 하거나, 아니면 물속에 뛰어들어 관광객들이 던진 동전을 찾아낸다. 관광객들은 선의로 1달러 정도를 아이들에게 준다. 아이들의 수입은 하루 몇 달러가 된다. 이 지역의 원주민들은 그동안 온 가족이 죽어라 일해 하루 1달러 정도의 소득을 올렸다. 이런 상황에서 원주민 사회의 공동체가 유지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누구의 잘못이라고 탓할 수도 없다.
악전고투 끝에 겨우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에 돌아와 생각하니 우리나라가 얼마나 안전한 나라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아무리 가파르고 험한 산길도 모두 잘 정비되어 위험 없이 등산할 수 있도록 하지, 산에서 사고를 만나면 어디서든 쉽게 구조될 수 있는 체제가 마련되어 있다. 이곳에 변변한 병원이 있을 리가 없고, 어쨌든 하노이로 돌아가야 한다. 허리가 아프니 슬리핑 버스에 타는 것도 고역이다.
하노이 호텔에 도착하니 밤 10시 가까이 되었다. 일단 오늘은 일찍 자고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해야겠다.
(계속)
2019년 1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