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7) 힐링 여행의 성지 사파로
15년 전 베트남에 처음으로 여행 왔을 때, 다른 것은 다 좋은데 음식 때문에 못살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는 음식이 베트남 여행의 즐거움의 반이다.
15년 전 첫 번째 여행은 베트남 통계청을 방문하는 일종의 공식 출장이었다. 몇 년 전 돌아가신 통계청의 고 김해수 차장이 당시 통계정책국장으로서 단장이었고 나는 옵서버로 그 출장에 동행하였다. 이전부터 우리 통계청이 베트남 통계청에 많은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베트남 통계청에서도 우리를 성대하게 맞이해 주었다. 오전 베트남 통계청을 방문하자마자 인사를 한 후 바로 점심시간이 되어 우리를 식당으로 안내하였다.
데려간 곳은 하노이의 개고기 식당 골목. 지금은 시 당국이 개고기 식용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 당시는 그 골목에 몇십 개의 개고기 식당이 줄지어 있었다. 높이가 30센티도 안 되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목욕탕 의자 같은 곳에 앉아 개고기를 먹는 거다. 개고기는 코스 요리로 일곱, 여덟 종류인가가 나왔던 것 같다. 베트남 사람들이 술은 얼마나 잘 마시는지, 한국에서 배운 폭탄주를 만들어 원 샷, 원 샷 하며 권한다. 향신료를 많이 넣어 입맛에 맞지 않는 개고기와 폭탄주로 점심에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마셨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저녁에는 베트남 통계청장 초청 디너, 다음날은 또 누구 초대 점심, 또 우리의 답례 디너, 이런 식으로 매일 점심, 저녁으로 술자리가 이어지는데, 매번 폭음이다. 나도 술은 왠 만큼은 한다마는 정말 질릴 지경이었다. 일정기간 동안 그렇게 술을 많이 마셔본 적이 지금껏 한 번도 없다. 또 식사를 하는 데가 모두 좋은 식당들이니, 메뉴가 주로 향신료가 많이 들어간 육류다. 쌀국수는 맛도 못 봤다. 술 탓으로 매일 속은 부글부글 끓지, 음식은 입에 안 맞지, 결국 베트남 음식에 항복해 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혼자 다니며 싼 음식 사 먹으니 너무 맛있다.
외국 손님에 대한 대접은 국가가 발전할수록 간단해지는 것 같다. 미국이나 유럽에 출장을 가면 그곳 관청으로부터 음식 대접을 받는 것은 극히 예외적이다. 대부분 식사시간과 겹치지 않게 스케줄을 마련하고, 또 점심이나 저녁 초대는 거의 없다. 컨퍼런스의 경우라면 개회식 혹은 폐회식 날 간단한 칵테일파티 정도가 마련될 뿐이다. 이에 비해 저개발국가에 가면 매일 성대한 점심, 저녁 자리가 마련된다.
20-30년 전에 일본으로 출장 가면 점심이나 저녁 초대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렇지만 최근에 와서는 그런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출장 목적과 관련한 회의를 가질 뿐 식사자리나 시내 관광 같은 별도의 만남은 없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그랬다. 외국에서 손님이 오면 정식 일정 외에 점심 대접, 저녁 대접에 시내 관광까지 정말 성대하게 접대하였다. 그랬던 것이 지금은 그러한 접대가 거의 사라졌다. 중국의 경우도 1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출장을 가면 성대한 접대를 받았는데, 지금은 그러한 관행이 많이 사라진 것 같다.
바람직한 변화라고는 생각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적인 연결이 조금 약해지지 않는가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나라는 정부 주도 해외협력 사업(ODA)을 다방면에 걸쳐 실시하고 있는데, 이들 사업에서는 대개 대상국 정부 관리들을 초청하여 교육시키는 프로그램이 포함되어 있다. 이때 초청된 관리들에게 몇 차례 공식적인 저녁자리를 제공하게 되는데, 이때의 인연으로 양국 공무원 간 인간적 유대가 끈끈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서구 선진국이나 일본 등에서는 이미 이러한 기회가 거의 없다. 이러한 기회는 우리나라와 협력대상국 간의 관계를 조금 더 부드럽게 하는 순기능도 적지 않다고 생각된다.
각설하고, 오늘부터 1박 2일로 사파 투어다. 사파는 베트남 북부 중국과의 국경지대에 있는 마을이다. 높은 산악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소수민족이 계단식 논을 만들어 식량을 조달하고 있다. 이 소수민족의 독특한 삶과 계단식 논이 최근 사람들의 관심을 끌면서 힐링 관광지로 새로이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방송 등에서 많이 소개된 바 있다. 힐링을 원하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조용하고 외진 지역이다.
당초 개별여행을 하면서 홈스테이를 할 예정이었으나, 추위에 질렸고 또 높고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 곳이라 오토바이 이용은 위험할 것 같아, 투어 프로그램을 선택했다. 하노이에서 약 400킬로 떨어져 있어 버스로 편도 6-7시간 정도 걸린다. 오전 7시에 사파로 가는 슬리핑 버스를 탔다. 내가 제일 마지막 승객인데 좌석이 최악이다.
슬리핑 버스는 2층으로 3줄로 되어 있는데, 창 측 좌석과 가운데 좌석 간에는 통로가 있다. 한 사람이 차지하는 좌석의 폭은 50센티가 되려나. 우리나라 일반 고속버스의 좌석 폭보다는 넓지가 않다. 그런데 버스 제일 끝에는 화장실이 있고, 화장실 옆에 3개의 좌석을 배치해 놓았다. 좌석 간에 통로가 없이 3개의 좌석을 붙여 놓은 거다. 가운데 좌석이 비어 있는데, 창쪽은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반대쪽에는 50대의 덩치 큰 한국 남자가 이미 누워있다. 나는 그 가운데 자리에 누워 7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몸을 뒤척일 수도 없다. 왼쪽으로 뒤척이면 젊은 여자 얼굴이 코 앞에 보이고, 오른쪽으로 뒤척이면 중년 남자의 수염 난 뺨이 바로 눈에 들어온다. 좌우 양쪽 꼼작도 못하면서 이렇게 남녀 3명이 가지런히 누워 어색한 상태로 7시간 버스를 탔다. 내 양쪽 사람은 그래도 한쪽이나마 몸을 뒤척일 수 있는데 나는 그것도 불가능하였다.
사파까지 가는 길은 비교적 잘 닦여 있었다. 사파를 50킬로 정도 앞두고 좋은 길이 끝나는데, 새 길 공사를 하고 있었다. 버스는 점점 높이 올라가고, 그에 비례하여 길도 험해졌다. 까마득한 절벽 위를 지나가는 아찔한 길도 나왔다. 이런 길을 한 시간 이상 달려 사파에 도착했다. 승객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사파는 마을 모양 자체가 높은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평지가 거의 없고, 마을이 고저 차이가 매우 심하다. 공기가 매우 좋지 않다. 매캐한 배기가스 냄새가 코를 찌르며, 안개인지 미세먼지인지 마을이 뿌옇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투어에 나섰다. 호텔 문을 나서려는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진다. 호텔에서 우산을 빌려 출발했다. 현지 소수민족 여자 가이드가 안내를 하며, 우리 일행은 7명이다.
마을 아래쪽을 향해 출발했다. 약 2시간의 트래킹 코스다. 시멘트로 포장된 길을 따라 계속 걸어내려 가는데, 차와 오토바이가 쉴 새 없이 다녀 결코 걷기 좋은 길은 아니다. 거의 한 시간 정도를 그런 길을 걷다가 옆 작은 샛길로 빠진다. 여기서부터가 본격적 투어링 코스다. 소수민족 사람들이 운영하는 기념품 가게 등이 주위 풍경과 잘 어울린다. 거의 계단으로 된 좁은 길이다.
가다 보니 조그만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로 올라가니, 사진에 자주 나오는 사파의 대표적 풍경, 계단 식 다랭이 논과 소수민족 전통가옥이 사진과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좁은 길을 따라 계속 내려가니 아름다운 계곡과 폭포가 나온다. 좀 전에 내린 폭우로 물은 누런 황톳물이다. 보통 계곡에는 맑고 깨끗한 물이 흘러야 하는데, 이곳은 황톳물 계곡도 잘 어울린다. 계곡이 급하다 보니 이곳저곳 아름다운 광경이 형성된다. 지금 이곳은 자연의 풍경이 아니다. 고산지대의 독특한 지형에 수 백 년 간 사람의 손이 들어가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내고, 다시 현대의 개발이 보태진 곳이다.
계곡 아래쪽에 있는 폭포와 물레방아, 줄다리 등을 구경했다. 폭포는 그리 대단할 것이 없다. 이 정도 폭포는 어딜 가나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폭포가 이 풍경에는 잘 어울린다. 폭포를 제외하고는 대개가 인공물이다. 그렇지만 이들 인공물이 자연과 하나가 되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제부터는 오솔길을 걸어 올라가는 코스다. 좁은 산길로 오토바이가 가끔씩 지나고 있어 조금 불편했지만, 걷기 좋은 길이다. 계곡을 중심으로 고산지대 특유의 풍경이 펼쳐진다.
투어를 마치고 호텔로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또 폭우가 쏟아진다. 고산지대라 기상이 예측 불가다. 호텔 방은 넓고 따뜻하다. 저녁 메뉴는 향신료를 넣은 쇠고기 볶음. 타이거 맥주와 조니워커로 만든 폭탄주를 반주로 오늘 일정을 마친다.
(계속)
2019년 1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