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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May 30. 2021

영화20:뉘른베르크의 재판

전범에 대한 단죄:나치에협력한 판사들

나이가 들어서는 웬만한 영화를 보더라도 감동을 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 재미있는 영화를 감상하면 볼 때는 재미있다고 느끼지만, 그때뿐이다. 보고 나서는 "재미있는 영화였네." 정도의 느낌뿐이고, 그로부터 특별한 감동을 느끼지는 않는다. 


정말 오랜만에 깊은 감동을 느낀 영화를 감상하였다. 2차 대전 전범재판(戰犯裁判)을 소재로 한 <뉘른베르크의 재판>이라는 영화로서 1962년 미국에서 제작된 흑백영화이다. 이 영화는 전범재판 가운데 나치에 협력한 판사들에 대한 재판을 소재로 하고 있다. 리처드 위드마크가 검찰로, 그리고 버트 랭커스터가 피고인 가운데 한 명인 언스터 어닝으로 출연하고 있다.

피고들은 나치 독일의 고위 판사들이었다. 특히 언스터 어닝은 법무부 장관을 역임하기도 하였고, 비스마르크 헌법의 기초에도 참여한 세계적 법학자이다. 검찰은 피고인들이 나치에 협력하여, "국가를 위하여"라는 명분 하에 편파적인 재판을 함으로써 나치 정권을 도왔다고 하면서 피고인들을 엄벌에 처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특히 피고들은 나치 정권이 수용소에서의 유태인 학살 등 반인륜적인 범죄를 자행하는 것을 알면서도 나치를 도왔다는 것은 도저히 용서 못할 일이라고 강조하였다.


이에 대해 피고인들과 변호사는 판사란 법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만들어진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나치의 만행에 대해서는 그것은 극소수의 나치의 핵심 권력자들에 의해 주도된 것으로 자기네들은 그런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그러므로 자신들은 법에 의해 정당하게 업무를 수행한 것이므로 무죄라 주장한다.


특히 변호사는 검찰 측 증인으로 참석한 사람들에 대해 물타기, 덮어 씌우기 등으로 증언의 신빙성을 흔들려한다. 언스트 어닝의 스승인 노 법학자는 나치의 만행이 점점 도를 더해가자 모든 공직에서 은퇴한 사람이다. 그는 검찰 측 증인으로 나와 어닝을 비롯한 피고인들이 법관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하고, 불의한 정권에 협력하였다고 질타한다. 그러자 변호사는 증인도 나치에 충성맹세를 하지 않았느냐고 다그친다. 이외에도 다른 증인들에 대해 정신박약이라던가, 유태인과의 성적 관계를 가진 것이 아니냐고 몰아가 증언의 신빙성을 무너뜨리려 한다.


독일의 일반 국민들의 생각도 흥미 있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전범재판을 전쟁에서 졌기 때문에 억울하게 당하는 것으로, 공정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나치가 자행한 만행들에 대해서는 자기네들은 몰랐다고 강변한다. 그리고 설령 알았다고 하더라도 자기네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재판 마지막 날까지 내내 침묵만을 지키고 있던 언스트 어닝이 마지막 진술에서 마침내 입을 연다. 그는 본인을 비롯한 법관들이 불의의 권력에 순종하여 권력이 원하는 판결을 내렸다는 것은 다른 누구들보다 법관 스스로가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같은 피고인들을 질타한다. 그리고 나치의 만행에 대해서도 하나하나의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모를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어떻게 모를 수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리고 본인은 판사로서, 그리고 법학자로서 변명할 수 없는 부끄러운 범죄를 저질렀다고 토로하면서 범죄사실을 인정한다고 진술의 끝을 맺는다.


피고인들은 전원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그러나 미소 냉전이 격화됨에 따라 독일을 붙잡아두려는 마국의 세계전략으로 이들은 얼마 가지 않아 모두 석방된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의 내용과 우리나라의 사법분야의 과거와 현재가 겹쳐 보였다. 독재정권에 협조하여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억압한 사법부, 그리고 그에 대한 반성도 찾아보기 어려운 사법부, 재판에 넘겨진 피고들이 죄가 없다는 곳을 누구보다고 뻔히 잘 알면서 유죄로 몰아가는 나치의 검찰과 법원 등 우리 사회가 지난 수십 년간 겪어온 사법부의 문제가 이 영화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영화는 나치 전범재판을 다룬 영화이면서 동시에 마치 우리나라 사법부 및 검찰을 심판하는 재판정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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