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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Aug 20. 2024

괴수(怪獸) 이야기

괴수는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가공의 거대 생물을 말한다. 괴수는 가공할 힘으로 인간 세상을 위협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절대적인 힘을 가진 괴수를 물리치는 인간들을 보며 환호한다. 또 많은 괴수들은 인류를 위협하지만, 어떤 괴수들은 인간의 편에 서서 나쁜 괴수와 싸우기도 한다. 나는 괴수(怪獸)란 말이 일본에서 만든 화제(和製) 한자 단어라 생각했는데, 이미 2000천 년 전 고대 중국에서 만들어 낸 말이라고 한다.


최초의 괴수는 1933년 미국에서 탄생한 거대 고릴라 괴수 킹콩이다. 킹콩은 괴력을 자랑한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티라노 사우르스 등 육식공룡들과 싸워서도 이긴다. 그렇지만 킹콩은 괴수로서는 매우 약하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기어오르다가 기관총 몇 발을 맞고는 죽는다. 이래서야 괴수란 이름을 붙이기도 민망하다. 웬만한 괴수는 기관총 따위는 물론 포탄과 미사일, 심지어는 핵폭탄을 맞고도 죽지 않는다.


킹콩 영화가 세계적인 히트를 치면서 많은 나라에서 저마다 괴수를 만들어 내었다. 우리나라라고 예외는 아니다. 우리나라의 첫 괴수는 아마 불가사리일 것이다. 1960년대 초반에 제작된  영화 <송도 말년의 불가사리>에서 사람의 형상을 한 거대 괴수 불가사리는 고려의 서울인 송도를 불바다로 만들어 버린다. 이 불가사리는 1980년대 중반 북한에서 새롭게 탄생한다. 이 외에도 한국의 괴수로는 용가리(원조 용가리와 심형래의 용가리), 괴물, 부라키(D-워) 등이 있다.


그렇지만 괴수라면 뭐니 뭐니 해도 일본이다. 일본은 "괴수의 나라"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수많은 괴수들이 출현하여 전국토를 휘젓고 다니고 있다. 일본에서는 1954년 첫 괴수 고질라(일본 발음으로는 고지라)가 바다에서 걸어 나와 도시들을 쑥밭으로 만든 이래, 수많은 괴수들이 탄생하였다. 고질라를 시작으로 모스라, 가메라, 킹기도라, 라돈, 앙기라스, 에비라, 미니라, 지고라, 메가누론, 메가기라스, 모게라, 헤도라, 마그마, 만다, 바라곤, 가마카라스, 구몽가, 게조라, 가니메 등등 손가락 발가락을 다 합쳐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괴수들이 탄생하였다.


킹콩은 자연 속에서 태어난 괴수이지만, 일본의 괴수들은 대개 핵폭탄의 방사능 피폭을 받아 돌연변이로 생겨났다. 고질라나 앙기라스는 공룡으로부터, 가메라는 거북, 모스라는 나방, 에비라는 새우, 구몽가는 거미, 게조라는 오징어, 가마카라서는 버마재비, 가니메는 게가 돌연변이한 괴수이다. 이 밖에도 킹기도라나 스페이스고질라처럼 우주에서 온 괴수도 있으며, 공해가 만들어낸 괴수 헤도라도 있다. 그뿐 아니다. 요즘 인기 있다는 괴수 8호는 사람이 변신한 것이다.


이렇게 일본에는 아마 100종류도 훨씬 넘는 괴수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인기 있는 괴수는 역시 고질라이다. 고질라 영화는 그동안 40편이 넘게 제작되었다. 고질라가 워낙 인기가 있으니 고질라 그룹에 속하는 새로운 괴수들도 등장한다.


고질라보다 더 거대한 슈퍼고질라, 인간이 만든 로봇 고질라인 메카고질라가 있으며, 우주에서 날아온 스페이스고질라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미니라, 리틀고질라, 고질라주니어, 베이비고질라 등 자손까지 있다. 고질라의 새끼인 미니라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의 의문이 폭발하였다. 고질라는 수컷인가, 암컷인가? 고질라는 한 번도 암수가 쌍으로 등장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새끼를 가졌나? 예수도 무성생식으로 탄생했다는데, 고질라도 무성생식을 하나?


괴수들은 거의가 인류를 위협하는 공포의 생물이지만 그 가운데는 인류를 지켜주는 고마운 괴수도 있다. 항상 자신의 목숨을 던져가며 인류를 지켜주는 괴수로서는 단연 모스라를 꼽을 수 있다. 나방 괴수인 모스라는 애벌레 시절부터 인간을 돕기 시작하여 성충이 된 뒤에도 여전히 인류의 수호신의 역할을 한다. 고질라나 가메라 앙기라스 등은 어떨 때는 사람을 죽이고 도시를 파괴하여 사람들과 치열하게 싸우지만, 또 어떨 때는 인간의 편이 되어 다른 괴수와 싸운다.


이들 괴수는 크기도 어마어마하다. 최초의 괴수인 킹콩은 아프리카에 있을 때는 12~15미터 정도였으나 뉴욕에 와서는 웬일인지 8미터 정도로 줄어든다. 무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사람 성인남자 180센티에 체중 80킬로를 적용한다면 킹콩의 아프리카 키를 기준으로 할 때 37~47톤 정도가 될 것이다. 이 정도면 괴수로서는 상당히 아담 사이즈이다.


고질라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몸이 커지고 있다. 처음 등장하였을 때는 50미터에 2만 톤이었지만, 1980년대 중반에는 80미터 5만 톤, 1990년대에 들어서는 100미터 6만 톤, 그러다가 2000년대 초반에 들어서는 다시 55미터 2.5만 톤으로 줄어든다. 그러다가 최근의 애니메이션에서는 300미터 10만 톤이 된다.


여기서 한번 고질라의 키와 몸무게에 대해 팩트 체크. 사람 성인 키 180미터에 몸무게 80킬로그램을 적용한다면, 50미터 1천7백 톤, 80미터 7천 톤, 100미터 1.4만 톤, 55미터 2천3백 톤, 300미터 38만 톤이 된다. 정리하자면 고질라는 처음에는 사람에 비해 12배 비만했지만, 이후 7.1배, 4.3배, 11.9배, 0.3배가 된다. 아마 마지막 고질라는 몸이 풍선으로 이루어진 것 같다.


괴수의 몸무게가 처음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정의의 거북 괴수 가메라의 등장 때였다. 가메라는 등장하면서 키 60미터에 무게 80톤으로 설정되었다. 사람이 키 60미터라면 체중은 2,900톤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의 비중이 1이라면 가메라의 비중은 0.027인 셈이다. 그래서 팬들로부터 가메라는 풍선으로 만들었나라는 비난이 빗발치듯 쏟아졌다.  가메라는 하늘을 날아다니는데, 이렇게 풍선 체질이라 쉽게 날 수 있는 모양이다.


할리우드에서도 이제 괴수영화에 관심을 갖는 것 같다. 할리우드에서는 이미 여러 편의 고질라 실사영화와 애미네이션을 제작한 바 있다. 또 영화 <퍼시픽 >에서는 주기적으로 등장하여 인류의 삶을 위협하는  괴수의 이름을  아예 괴수의 일본식 발음인 "카이쥬"로 명명하고 있다. 카이쥬는 <신세기 에반겔리온>에 등장하는 괴수 "시도"(使徒)를 연상시킨다. 영화의 본고장 미국에서 만든 괴수 영화는 과연 다르다. 헐리웃제 고질라는 비평가들로부터 형편없는 영화라는 혹평을 받았지만, 제일 잘 만든 일본제 고질라보다는 훨씬 낫다.


미국 고질라는 일본 고질라보다 훨씬 더 크고 무섭게 생겼지만 그 위력은 일본 고질라에 댈 것이 못된다. 일본 고질라는 불사의 몸이다. 대포나 미사일 정도에는 끄덕도 않고 핵무기조차 그것을 죽이지 못한다. 이에 비하여 미국 고질라는 기관총과 대포 몇 방에 죽고 만다. 그렇지만 번식력에서는 단연 미국 고질라가 압도적이다. 일본 고질라는 미니라, 베이비고질라 등 기껏해야 4마리 새끼를 두고 있다. 이에 비해 미국 고질라는 시샤모의 DNA가 섞였는지 그야말로 산더미 같은 알을 낳아 새끼들이 바글바글하다.


미국 고질라는 뉴욕 브루클린 다리 옆에서 미군에 의해 사살된다. 1만 톤도 넘는 고질라의 그 사체를 보고 난 저걸 누가 다 치우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런 나의 걱정은 기우였다.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괴수 8호>를 보면 괴수사체처리 전문회사가 이미 설립되어 활발히 사업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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