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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Aug 21. 2024

일본 청주(淸酒) 이야기(1)

청주와 정종과 사케

요즘은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 일본 청주(淸酒)가 꽤 인기가 있는 것 같다.  나도 상당히 좋아하는 술이다. 냉장을 한 시원한 것도 좋고, 따뜻하게 덥혀 마시는 것도 괜찮다. 이전에는 따뜻한 것, 특히 뜨거울 정도로 덥혀, 목에서 '헉' 소리가 날 정도의 것이 좋았는데, 요즘은 찬 것이 오히려 좋다. 그래도 추운 겨울날에는 따끈한 술이 어울린다.


요즘은 젊은이들이 일본 청주를 주로 "사케"라 부르는 것 같다. 미국에서도 대개 "sake"라 부른다고 한다. 그러면 일본 청주를 어떻게 부르는 것이 좋을까? 우선 일본 청주의 명칭에 대해 알아보자. 지금은 사케라는 말로 통용되지만, 과거에는 우리나라에서는 일본 청주를 "정종"(正宗)이라 불렀다. 백화수복의 술병에는 "청주"라 표시되어 있다. 일본인들은 거의 "일본주"(日本酒)라 쓰고, "니혼슈" 혹은 "닙뽄슈"라고 읽는다. 그런데 술병에 보면 "청주"(淸酒, 세이슈)라 쓰여있는 경우도 있다. 이 많은 명칭들 가운데 무엇이 맞는 말이며, 또 그 차이는 무엇인가?


먼저 "사케"(酒)란 말은 한자에서 보듯이 술이란 뜻이다. 우리말의 "술"에 해당하는 단어이다. 청주도, 소주도, 맥주도, 위스키도, 고량주도 모두 사케에 포함된다. 청주(淸酒)는 말 그대로 맑은 색의 발효주를 의미하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막걸리를 걸러낸 맑은술을 의미하였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청주를 "쌀 혹은 쌀누룩(麹)과 물로 만든 맑은술"을 의미한다. 쌀누룩 대신에 밀가루 누룩을 쓰면 "약주"가 된다. 경주 법주나 설화 같은 술이 모두 청주에 속한다.


일본 청주 역시 "쌀 혹은 쌀누룩(麹, 코지)과 물을 혼합하여 발효시킨 22도 이하의 술"을 의미한다. 그런데 일본인들이 일본 청주를 "청주"(세이슈)라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열이면 열 대부분의 사람이 일본주(日本酒)라 쓰고, "니혼슈" 혹은 "닙뽄슈"라 부른다. 그러면 일본에서 청주와 니혼슈는 같은 술인가, 어떻게 다른가? 청주 가운데 재료, 즉 쌀이나 누룩을 일본산으로 쓴 것만을 일본주라 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법률적 정의에 불과하며, 일본인들은 이를 구태여 구분하지 않고 청주를 일본주라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면 "정종"(正宗)은 또 무엇인가? 정종은 일본주의 전통 있는 브랜드명 가운데 하나이다. 19세기 중반 전통 있는 청주 제조업자가 교토의 어느 절의 애주가로 이름난 고승을 찾아가 자신의 술의 브랜드명을 지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러자 그 고승은 고심하던 중 "임제정종"( 臨濟正宗, 린사이세이슈)이라는 제목의 불경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 그는 즉석에서 정종(正宗), 즉 세이슈라는 브랜드 명을 지어주었다. 이름을 지어놓고 보니 청주(淸酒)도 세이슈로 발음되고, 정종도 세이슈로 발음되니 정말 발음상으로도 어울리는 이름이 되었다.

무사무네(정종) 이름이 들어간 청주 브랜드들
명검 마사무네

이 정종 청주는 인기가 급상승하여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지금의 동경인 에도(江戸)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는데, 에도 사람들은 멋을 부린다고 정종을 한자음독인 "세이슈"라 읽지 않고, 훈독인 "마사무네"로 읽었다. 예나 지금이나 히트 브랜드가 나오면 짝퉁이 등장하는 것이 당연. 특히 상표권이 존재하지 않았던 그 시대에 마사무네가 대히트를 피자 짝퉁 마사무네가 속출하였다. 그러던 중 19세기 후기 일본에도 상표권 제도가 도입되었다. 원조 정종이 상표권을 신청하였으나, 이미 정종(마사무네)은 너무나 널리 퍼져 상표권을 인정할 수 있는 고유명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등록이 거부되었다. 그래서 이후에도 xx정종이라는 상표가 수도 없이 나오게 되었다.


정종(正宗), 즉 마사무네는 청주 이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옛날 가마쿠라 시대에 마사무네라는 유명한 도공(刀工)이 있었다. 그는 일본 역사상 최고의 도공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가 만든 도검 중 여러 개가 일본의 국보와 보물 등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정종(마사무네)이라면 술보다는 칼의 장인이 먼저 연상되는 것 같다.


일본 전통의 술로서 '니고리자케'(にごり酒)와 '도부로쿠'(濁酒)라는 것이 있다. 니고리자케도 한자로 쓰면 "탁주"(濁酒)로 표기하여야 할 것 같은데, 반드시 "にごり酒" 라 표기한다. 일본 청주는 발효시킨 후 술을 투명하게 하기 위하여 여과과정을 거치는데, 여과를 덜 시킨 술이 바로 니고리자케이다. 이에 비해 여과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은 것을 "도부로쿠"라 한다. 니고리자케는 청주에 포함되지만, 도부로쿠는 포함되지 않는다. 니고리자케를 마셔보면 청주 맛인데, 어딘지 모르게 막걸리 맛이 난다. 도부로쿠는 막걸리 맛이 아주 강하다.


옛날에는 우리나라에서 막걸리란 말 대신에 "탁주"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였다. 막걸리는 어딘가 점잖지 못한 표현으로 들려, 좀 격식 있는 표현으로 모두 탁주라 하였다. 그런데 어느 사이 탁주란 말은 사라지고 막걸리가 일반화되었다. 막걸리를 마시면 속이 더부룩하다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한자로 탁주(濁酒)라 쓰고 "도부로쿠"라 읽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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