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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Aug 25. 2024

일본 청주(淸酒) 이야기(4)

카라구치(辛口)와 아마구치(甘口)

일본 청주를 즐기시는 분들은 가끔 “내 입엔 쥰마이다이긴죠 카라구치가 맞아” 등과 같이 자신의 취향을 자랑스레 말하곤 한다. 앞에서 쥰마이다이긴죠(純米大吟釀) 등 특정명칭주의 이름은 설명하였는데, 그러면 “카라구치”(辛口)는 무슨 뜻일까?


“카라”(辛)는 “맵다”는 뜻을 가졌으니까, 카라구치는 매운맛이 나는 일본청주인가? 술에도 매운맛이 있나?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것이다. 보통은 카라구치라면 매운맛을 뜻하지만, 청주에 대해서는 단맛이 적은 담백한 술을 뜻한다.


청주는 쌀과 쌀누룩(米麹), 거기다가 식용 알코올(주정)까지 섞어 발효시켜 만들기 때문에 탄수화물에 포함된 아미노산에 의해 불가피하게 단맛이 날 수밖에 없다. 이 단맛을 최대한 억제시켜 담백한 맛이 나도록 한 것이 바로 “카라구치”이다. 카라구치 는 단맛을 가급적 낮춤으로써 청주가 가지는 본래의 복잡한 여러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카라구치와 반대되는 말은 아마구치(甘口), 즉 단맛이다.


그러면 청주는 무엇을 기준으로 카라구치와 아마구치를 구분하는가? 여기에도 계량적 기준이 있다.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일본주도”(日本酒度)를 알아야 한다. 일본주도란 일본청주의 단맛과 담백한 맛을 표시하는 지표이다. 0을 기준으로 이 숫자가 커질수록 카라구치(辛口)가 되고, 마이너스 숫자로 내려갈수록 아마구치(甘口)가 된다. 이때 기준점이 되는 0은 물의 비중이다. 당분 등이 포함된 엑키스 성분이 많을수록 청주의 비중이 높아져 마이너스가 된다.


또 이와 함께 청주의 단맛과 담백한 맛에 영향을 주는 것이 산도(酸度)이다. 산도는 청주에 포함된 유산(乳酸) 등 여러 산의 양을 상대적으로 표시해 주는 수치이다. 일본주도가 같은 술이라면, 산도가 높을수록 단맛이 사라지고 담백한 맛이 진해진다. 이 외에도 아미노산도도 카라구치/아마구치의 판단에 영향을 준다. 산도가 높으면


일반적으로 산도가 높을수록 농순미(濃醇味), 진하고 강한 맛이 나고, 산도가 낮을수록 담려미(淡麗味), 즉 깔끔하고 부드러운 맛이 난다. 그래서 청주의 맛은 일본주도와 산도를 기준으로 다음과 같은 4가지로 분류된다.

① 일본주도와 산도가 모두 낮음: 담려 카라구치

② 일본주도는 낮고 산도가 높음: 농순 카라구치

③ 일본주도는 높고 산도가 낮음: 담려 아마구치

④ 일본주도가 높고 산도도 높음: 농순 아마구치

그런데 일본주도와 산도는 서로 맛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위의 4가지 기준이 숫자에 의해 명백히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수치는 어디까지나 전문적인 분석치에 의한 것이며, 애주가들이 청주를 마실 때 일일이 이런 것들을 따지지는 않는다.


최근에는 청주를 즐기는 일본인들 가운데 카라구치를 좋아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은 데다 그 비중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과거 어려운 시기에 시판되었던 싸구려 술들이 대부분 아마구치였던데 비해 생활의 향상과 저장기술의 발달로 각 지역 양조장에서 생산되는 고급 청주들을 쉽게 구입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전한 후 “삼증주”(三増酒, 산조슈)가 일반화되었다. 청주는 원래 쌀과 물만으로 제조하는 술인데, 패전 후 일본이 어려웠던 시절 여기에다 당과 알코올(주정)을 첨가하여 3배의 양으로 만든 것이 삼증주였다. 삼증주는 당과 알코올(주정)로 인해 자연히 단맛이 많이 났다. 요즘에도 특정명칭주 가운데도 쥰마이슈를 제외한 혼죠조슈나 긴죠슈 등은 아무래도 단맛이 나는 경향이 있다. 삼증주는 당시 유통확대에 따른 대량생산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소비자들은 점차 자신의 입맛에 맞는 고급 청주를 찾게 되고, 이 부분을 각 지역에 소재한 그 지역 양조장들이 충족시켜 주었다. 지방의 양조장들은 대량생산애 적합한 삼증주 대신에 순수한 쌀로만 만든 카라구치의 청주를 자신의 지역에 공급하였고, 이것이 소비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여기에다가 사람들이 점차 설탕을 기피하게 됨에 따라 (아마구치=단맛=설탕)을 연상하게 되어 카라구치를 선호하는 사람이 늘어났다고 한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지금에 와서는 압도적 다수가 카라구치 청주를 선호하게 되었다고 한다.


앞에서 식용알코올(주정)을 주입하는 청주일수록 단맛이 강하다고 하였다. 그런데 시판하는 다이긴죠슈나 긴죠슈, 혼죠조슈 등 특정명칭주도 주정을 넣는데 어떻게 대부분 카라구치인가 하는 의문을 갖는 분도 있을 것이다. 이들 특정명칭주는 양조와 숙성과정에서 산도를 낮춤으로써 단맛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주정을 투입하면서도 카라구치 청주를 제조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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