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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Sep 02. 2024

고시엔(甲子園) 대회로 본 일본 고교야구

이번 일본 고시엔 야구대회를 보고 어느 분이 쓴 우리나라에서는 왜 아무도 고교야구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지 한탄하는 글을 읽었다. 이 분은 아마 1970년대를 살아보지 않은 것 같다. 1970년대 우리나라 고교야구는 정말 인기 절정이었다. 국민들의 열기로만 따지면 오히려 지금의 프로야구보다 결코 뒤지지 않았을 것이다. 야구팬들 뿐만 아니라 야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고교야구에는 들끓었다.


이렇게 고교야구가 인기가 높았던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이 출전팀을 "지역 대표"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내 고장을 대표하는 팀이 다른 고장 팀과 싸운다는데 열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데 프로야구가 등장하면서 각 팀이 지역연고를 갖게 되자 자연히 지역대표는 고교에서 프로팀으로 옮겨가 버렸다. 거기다가 아무래도 프로팀이 기량면에서도 월등하여 자연히 고교야구에 대한 열기도 식어버린 것 같다. 그래서 한때는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던 전국고교야구대회도 지금은 많이 정리된 것 같다.


그런데 우리나라보다 프로야구 역사가 월등히 긴 일본은 왜 아직도 고교야구가 인기 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와 다른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역시 지역대표성이다. 일본 프로야구 역시 지역연고를 하고 있지만 우리에 비해 훨씬 옅다. (물론 한신타이거스와 같이 지역민들의 열화 같은 사랑을 받는 팀도 있기는 하다.) 또 프로야구 연고가 없는 지역도 많다. 이에 비해 여름 고시엔 대회에는 각 도도부현별로 빠짐없이 한 팀씩 출전한다. 완전 지역대표팀이다. 우리로 치면 16개 광역지자체가 한 팀씩 출전시키는 것이다.


둘째는 고교야구가 지역사회에 녹아있다. 일본 전국에 야구팀을 가진 고교가 3,500개 가까이 된다. 이런 고교들 중에는 야구부원이 300~400 백 명에 이르는 팀들도 적지 않다. 교토국제고도 전교생이 모두 야구부라 한다. 그쯤 되면 시합은 물론이고 글러브 한 번 못 끼고, 배트 한 번 못 휘둘러 본 부원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함께 같은 유니폼을 입고, 친구들이 시합하는 모습을 손뼉 치고 응원한다. 여자아이들도 야구부에 가입하여 잔일을 거들어준다. 또 자식이 야구부원이라는데, 관심을 갖지 않을 부모가 없다. 


이번 교토국제고가 여름 고시엔 대회에 우승하였다고 하는데, 그럼 봄 고시엔 대회, 가을 고시엔 대회도 있나라는 의문이 들 것이다. 가을 고시엔 대회는 없지만 봄 고시엔 대회는 있다. 우리나라에는 7개의 공식 전국대회가 있지만, 일본 고교야구에는 3개의 공식대회가 있는데, 1개는 권역별 대회이다.  그러므로 전국 대회는 봄 고시엔 대회, 여름 고시엔 대회 두 개밖에 없다. 


봄 고시엔 대회는 "선발고교야구대회"라고 한다. 이 대회는 당초 "전국선발고교야구대회"라 하였으나, 미 군정 때 점령군사령부로부터 '전국'이라는 글자를 떼도록 명령받아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각 고교들이 새 학년을 맞아 새로이 꾸린 팀으로 시합에 나선다. 각 학교의 전력을 선보이는 자리이다. 출전팀은 예선전이 아니라 선발위원회가 선정한다. 선정 기준에서는 역시 실력이 중요하지만 지역안배 등 다른 요소도 고려된다. 여름 고시엔 대회를 향한 전초전적인 성격이 강하다. 대표팀을 내지 못한 지자체도 있으며, 복수의 팀을 출전시키는 지자체도 있다.


여름 고시엔 대회는 정식 명칭이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로서, 각 도도부현별로 1팀씩 출전한다. 각 도도부현에서는 출전팀 선발을 위해 지역예선을 치른다. 일본 전국의 고교야구부 3,500개 가운데 47개 팀을 선발하다 보니 예선전 참가팀이 100개를 넘는 지역도 많다. 올해 최고의 격전지는 아이치현(愛知県)으로서 지역예선전에 무려 173개 팀이 참가하였다고 한다. 각 팀의 전력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치르는 시합으로서, 3학년 생들이 마지막으로 출전하는 시합이다. 그러므로 선수들은 이 시합에 자신의 일생이 걸렸다고 생각하여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시합에 임한다. 일본 고교야구 최고 권위의 대회이다.


추계 지구대회는 일본 전국을 10개 권역으로 나누어 권역별로 치르는 대회이다. 이 시합에는 고교 3년생 선수는 출전하지 못한다. 1, 2년 생으로만 치르는 대회이므로 다음 해의 전력을 예측하는 중요한 시금석이 된다. 이 시합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경우, 다음 해 봄 고시엔 대회에 참가팀으로 선발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런 점에서 일본 고교야구대회는 추계대회-봄 고시엔-여름 고시엔으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으며, 여름 고시엔 대회가 그 정점을 찍는다고 할 것이다.


일본에 고교야구팀이 그렇게 많은데, 공식시합이 그것밖에 없다고? 공식대회는 이상의 세 개이지만 비공식대회는 많이 있다. 비공식 대회는 모두 지역대회이며, 전국대회는 없다.


약간의 코멘트: 안타까운 자기 검열


이상에서 보듯이 일본 고교야구대회 가운데 가장 권위 있는 것이 여름 고시엔대회, 즉 “전국고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이다. 교토국제고의 고시엔 대회 우승은 그만큼 평가받아야 한다. 특히 "동해바다 건너서 야마토 땅은"으로 시작되는 한국어 교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고 있다. 


그런데 교가의 첫 부분 "동해바다 건너서"의 번역이 "東の海を渡りし"로 나온다. "동쪽 바다 건너서"라는 뜻이다. NHK라는 대방송국이 이렇게까지 졸렬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東海の海を渡りし", 즉 "동해 바다 건너서"로 해야 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가사 번역은 학교에서 하고, NHK는 학교에서 넘겨준 번역 가사를 그대로 방송했다고 한다.


학교 측은 "동해 바다 건너서"라고 했다가는 혐한 세력들을 비롯한 많은 일본인들의 공격으로 학교와 학생들이 상처를 입을까 염려되어 "동쪽 바다 건너서"로 했다고 한다. 학생들을 보호하려는 학교의 고충에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일본 내에서 핍박받는 마이너러티로서 자기 검열의 결과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가슴이 아프다. 내년에도 이들이 다시 우승하여, 그때는  "동쪽 바다"가 아닌, "동해 바다"로 자랑스럽게 교가를 소개할 수 있기를 바란다.


동해바다 건너서

東海の海を渡りし

도카이노 우미오 와타리시


동쪽바다 건너서

東の海を渡りし

히가시노 우미오 와타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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