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찌푸려져 있던 날씨가 점점 흐려져 비가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아직은 우산을 쓸 정도는 아니며, 오히려 더운 날씨를 시원하게 식혀준다. 다음 행선지는 충주 <중앙탑 사적공원>이다. 충주에는 의외로 역사 유물과 사적이 많으며, 특히 삼국시대 사적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아마 고구려가 남진 정책을 펼 무렵, 이 지역이 고구려와 신라가 맞닿은 곳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4. 중앙탑 사적공원
탄금대를 출발하여 10분 정도 차를 달리니 남한강 옆에 중앙탑 사적공원이 나온다. 여기에는 통일신라시대에 건립한 높이 약 15미터의 7층 석탑이 있다. 이 탑을 중심으로 남한강 변에 넓게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이 탑의 정식 이름은 <탑평리 7층 석탑>인데, 이 탑이 위치한 충주지역이 통일신라의 거의 중앙에 해당하는 곳이라 속칭 중앙탑이라고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탑평리 7층 석탑>과 <중앙탑> 둘 가운데 어느 것이 정식 이름에 가까울까? <탑평리 7층 석탑>이라는 이름도 아마 최근에 붙여진 이름 같아 보인다. 우리가 사적의 이름을 명명할 때 지역 이름에 사적의 형태를 연결하는 방법은 20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원칙인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이 탑을 건립하였을 당시인 통일신라 시대나 고려, 조선시대에 이 탑을 “탑평리 7층 석탑”이라고 부르진 않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중앙탑이라는 이름도 옛날에 사용한 이름 같아 보이진 않는다. “중앙”이라는 단어 자체가 잘은 모르겠지만 근현대에 등장한 단어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비전문가인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자 답을 찾을 수는 없으니, 탑의 이름에 대해서는 그만 두자.
탑의 높이가 15미터라고 하니 상당히 높은 탑이다. 평탄한 강변에 우뚝 세워져 있으므로 더더욱 눈에 뜨인다. 탑은 높이가 높을 뿐만 아니라 균형도 아주 잘 잡혀있다. 천몇 백 년을 이 자리에 서서 강을 지켜봐 온 탑이란 생각을 하니 문득 여러 생각이 떠 오른다. 그 옛날 신라인들은 이곳에 왜 이 큰 석탑을 건립하였을까? 그리고 고려, 조선으로 내려오면서 사람들은 이 탑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천 년 전에도 남한강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흘렀을까?
탑 주위로는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남한강 위로는 폭이 5미터는 훨씬 넘어 보이는 보행로가 강물을 따라 놓여있다. 보통 보행로는 강변에 만들어져 있는데, 이곳의 보행로는 강 가에서 5미터쯤 들어간 물 가운데 놓여있다.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온다. 오늘 지금까지 꽤 걸었다. 강 가에 편한 모습을 한 사각형 의자가 놓여 있다. 잠시 피곤한 다리를 쉬려 의자에 앉으니 불어오는 강바람이 더없이 시원하다.
5. 횡성 전통시장
당초 계획으로는 중앙탑사적공원 다음으로는 제천 의림지에 가려고 했으나 그러면 또 휴양림에 너무 늦게 도착할 것 같다. 의림지는 생략하고 바로 횡성으로 가기로 하였다. 횡성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횡성 한우>이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횡성이므로 출발 전부터 그동안 비싸서 먹기가 망설여지던 한우를 실컷 먹기로 하였다. 횡성 전통시장에 가면 횡성 한우를 파는 정육점이 즐비할 것 같다. 더구나 오늘은 횡성 5일장 장날이다. 횡성 한우 고기를 아주 싼 값에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집에서 미리 인터넷을 찾아보니 횡성장은 옛날부터 강원도에서는 아주 큰 시장이었다는 정보도 있었다.
횡성시장에 도착하니 오후 5시 정도 되었다. 이 시간이면 5일장이 파장할 무렵인데도 여전히 시장은 시끌시끌하고 활기차다. 이곳은 산골 지역이다 보니 해산물은 그다지 없다. 대신 버섯, 산나물 등 임산물이 많다. 시장을 들어서니 한 노점에서 <송화 버섯>을 사라고 한다. 송화 버섯? 나는 처음 들어보는 버섯이다. 집사람 말로는 얼마 전부터 많이 시판되는 버섯인데, 맛이 좋으며, 집에서도 몇 번 먹은 적이 있다고 한다. 나는 기억에 없는데... 고기와 함께 구워 먹으면 맛있다길래 5천 원어치 샀다. 집사람 말로는 아주 싸다고 한다.
시장이 꽤 크다. 시장을 일단 한번 둘러본 후 정육점에서 횡성한우 고기를 사려하는데, 이럴 수가! 시장에 정육점이 보이지 않는다. 보통 전통시장에 가면 눈에 잘 뜨이는 곳이 정육점인데, 이 큰 시장에 정육점이 보이지 않는다. 시장을 이리저리 헤매다가 겨우 시장 한 모퉁이에 작은 정육점을 찾았는데, 진열해둔 고기가 없다. 들어가서 물으니 구이용 고기는 없다고 한다. 시장 안에 다른 정육점이 없느냐고 물어보니 아마 없을 거라고 한다. 나는 이곳에 오기 전에 횡성시장에 가면 정육점이 즐비하게 있을 줄 알았는데 완전 예상을 벗어났다. 정육점은 없는 대신 시장 주위는 물론 시내 곳곳에 “정육식당”은 성업을 이루고 있다. 가만히 생각하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 시골 마을에서 비싼 횡성 한우를 사 먹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고,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주된 소비자일 텐데, 그들은 쇠고기를 사서 스스로 요리해먹기보다는 정육식당을 찾을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횡성시장에서는 결국 횡성 한우는 물론 수입 쇠고기도 사지 못하였다. 휴양림으로 가다가 정육점이 눈에 띄면 사기로 하고 출발하였다. 휴양림 방향으로 국도를 한참 달리니 둔내가 나온다. 둔내역 근처에 제법 큰 하나로마트가 있다. 이곳에 들러 정육 코너에서 등심과 삼겹살을 샀다. 집사람 말로는 세종시 로컬푸드에 비해 값도 비싸고 고기 질도 좋지 않은 것 같다고 한다.
여기서 상식 하나. “한우”(韓牛)란 어떤 소를 말하는 것일까? 우리나라 축산농가에서 사육한 우리나라 전통적인 소라면 당연히 한우이다. 그러면 우리나라 전통적인 품종의 소를 뉴질랜드에서 사육해서 들여온 소는 한우인가? 외국에서 개발된 품종의 소가 우리나라에서 송아지를 낳아 이를 우리 축산농가에서 사육한 것은 한우인가? 외국에서 태어난 송아지를 수입하여 우리나라에서 상당 기간 사육한 경우는 한우에 해당하는가? 반대로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송아지를 외국에서 사육한 경우는 한우라 할 수 있는가?
사실 한우(韓牛) 고기란 공식적, 그러니까 법률 혹은 제도적으로 분명한 정의가 내려진 것은 아니다. 그냥 통상적으로 우리나라 고유 품종의 소로서 우리나라에서 태어나 우리나라에서 사육된 소에서 나온 고기를 “한우 고기”라 부르는 것 같다. 법률적으로는 “한우 쇠고기”란 말 대신 “국내산 쇠고기”란 말이 사용된다. 여기서 국내산 쇠고기란 도축 6개월 이전까지 국내에서 사육된 소에서 나온 고기를 말한다. 즉, 살아있는 소를 수입하여 6개월 이상 국내에서 사육한 소에서 나온 고기도 국내산 쇠고기에 포함된다.
6. 청태산 자연휴양림
둔내를 출발하여 10분 남짓 청태산 자연휴양림에 도착하였다. 자연휴양림에 정통한 친구로부터 횡성 청태산 자연휴양림이 아주 좋다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들었다. 약간의 절차를 거친 후 숙소인 <숲 속의 집>에 도착하였다. 주위는 온통 하늘 높이 곧게 뻗은 굵은 소나무이다. 그동안 여러 자연휴양림을 경험하였지만, 휴양림 안에 이렇게 좋은 나무들이 도열해 있는 곳은 흔치 않았다. 진한 숲 냄새가 코를 찌른다. 이곳 숲 속의 집은 통나무로 만들어졌다. 현관 앞에는 목련을 닮은 하얀 꽃이 피어있다. 휴양림에 올 때마다 나무 이름과 꽃 이름을 좀 많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잘 안된다. 하여튼 이름은 모르지만 하얀 꽃이 탐스럽다.
통나무집 앞에는 나무 탁자와 의자가 있다. 이곳에서 식사를 하면 좋겠는데, 빗방울이 떨어져 그럴 수 없다. 아쉽다. 4인용 통나무집의 넓이는 대개가 24평방미터 정도이다. 이곳도 그 정도 넓이인데, 특이한 것은 거실 겸 식당이 좁은 대신 작은 방이 딸려있다. 높은 산의 숲 속이라 날씨가 차다. 난방을 켜니 얼마 지나지 않아 방바닥이 뜨끈뜨끈해진다. 어딜 가더라도 휴양림 숙소는 난방 하나는 끝내준다. 특히 조금 추운 날씨에 뜨끈뜨끈한 방바닥에 몸을 눕히면 기분이 최고이다. 먼저 코스트코에서 사 온 의자를 폈다. 아주 편하다. 이제 자연휴양림에서의 생활 가운데 유일한 불편인 “앉는 문제”로부터도 해방되었다. 베란다 창문을 여니 시원하고 향기로운 숲 속 공기가 그대로 방으로 불어 온다.
저녁으로 먼저 한우 고기를 구웠다. 살 때부터 보기에도 그렇더니 맛도 영 아니다. 차라리 삼겹살이 훨씬 낫다. 술과 고기로 저녁을 먹고 나니 몸이 나른해진다. 밖에 나가 산책을 하고 싶으나 빗줄기가 점점 굵어진다. 베란다 창문 옆에서 의자에 앉아 빗소리를 들으며 영화를 보는 기분도 괜찮다. 태블릿 PC에 여러 가지 영화와 드라마를 담아왔는데, 일본 드라마인 <아침이 왔다>(朝が来た)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일본 NHK의 TV소설에서 방송한 드라마인데 자극성이 없는데도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 일찍 자려했으나 또 다음 편을 보게 되고, 결국 이 드라마를 1회에서 30회까지 보고 늦게 잘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