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떼로부터 농부들을 지켜주는 7명의 무사
영화 <7인의 사무라이>(七人の侍)는 일본 영화 가운데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영화 가운데 하나로서, 이 영화는 미국에서 서부를 무대로 한 <황야의 7인>(The Magnificent Seven) 시리즈로 리메이크되기도 하였다. 일본 전국시대를 무대로 도적떼의 약탈로 고통을 겪고 있는 농민들을 도와 도적떼를 섬멸한다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일본 영화계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黒澤明) 감독이 감독하였으며, 당시 평균적인 일본영화 제작비의 7배나 되는 막대한 돈을 투자한 대작이었다. 이 영화에서는 서부영화의 촬영기법을 많이 도입하여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영상미를 보여주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2018년 영국의 BBC 방송은 “역대 최고의 외국어 영화 100편” 가운데 1위로 선정하였으며, “할리우드를 포함한 역사상 최고의 영화 100편”에서는 7위에 올랐다. 이 영화는 1954년 일본에서 제작되었다.
이 영화는 상영시간이 3시간 50분 가까이 되어 중간에 약 5분간의 쉬는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스토리상으로는 이 영화는 크게 3 부분으로 나뉘는데, ① 농민들을 도울 사무라이 팀의 규합, ② 도둑패들과 싸울 준비, ③ 도둑패들과의 전투로 구성된다.
배경은 일본 전국시대(戰國時代)의 말기(16세기말)의 어느 산간지방에 위치한 농촌이다. 농민들은 거듭되는 전란 끝에 도적떼로 변한 무사(백성들은 이를 “노부세리”(野伏せり)라 불렀다.)들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도적떼는 수시로 마을을 습격해 식량을 약탈해 가 마을사람들은 거의가 굶어 죽게 될 형편에 놓였다.
어느 봄날 마을 뒤편 산 위에 나타난 도적떼는 자기네들끼리 올해도 보리가 익는 시기가 되면 다시 약탈을 위해 이곳으로 와야겠다는 말을 주고받는다. 이 말을 한 농민이 엿들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마을사람들은 절망에 빠졌다. 젊은 리키치(利吉)는 도적떼들에 맞서 싸우자고 주장하지만 많은 마을사람들은 겁에 질려 그 말에 반대한다. 그렇지만 촌장인 기사쿠(儀作)는 싸우겠다는 결정을 내리고, 이를 위해 “배를 곪고 있는 사무라이”들을 고용하자고 제안한다.
리키치, 모스케(茂助), 만조(万造), 요헤이(与平) 4명의 촌민은 도와줄 사무라이를 찾으러 저잣거리로 나선다. 그들은 값싼 숙소에 묵으면서 쌀밥을 마음껏 먹여주겠다는 것을 조건으로 사무라이들에게 자신들을 도와달라고 부탁하지만, 말을 거는 족족 거절당한다. 그러던 중 근처 마을에서 아이를 인질로 잡고 농성하는 도둑을 계략을 써서 베어버리는 사무라이를 알게 된다. 그 사무라이는 간베에(勘兵衛)라는 이름의 낭인으로서 이전에는 작은 성의 성주였던 인물이다.
인질강도를 멋있게 처치하는 간베에를 보고 젊은 무사인 카츠시로(勝四郎)가 자신을 제자도 받아달라고 애원한다. 그러는 중 리키가 간베에에게 자신들의 사정을 말하고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간베에는 처음에는 밥을 먹여준다는 조건만으로는 그런 일을 맡을 수 없다고 거절하지만, 리키치로부터 마을사람들이 처한 상황을 듣고는 도와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렇지만 이 일을 위해서는 최소한 7명의 사무라이가 필요하다고 한다.
간베에는 함께 싸울 사무라이를 찾아 나선다. 그러자 간베에의 인품에 반했다고 하는 고로베에(五郎兵衛), 간베에의 옛 부하인 시치로지(七郎次), 명랑하고 유쾌한 성격의 헤이하치(平八), 검술의 달인 큐조(久蔵)가 뜻을 같이 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어린아이 취급을 받던 카츠시로도 사무라이의 일원으로 가담한다. 그렇지만 모두 합해서 6명밖에 되지 않는다.
간베에는 7명째 무사는 포기하고 6명이 일을 하자고 나서는데, 얼마 전에 우연히 만난 적이 있던 정체를 알 수 없는 낭인풍의 사내가 술에 잔뜩 취한 채 찾아와 함께 가겠다고 한다. 그 사내는 들고 있는 족보를 보여주면서 자신은 기쿠치요(菊千代)라는 이름의 사무라이라 스스로를 밝히지만, 간베에 등은 그 족보가 다른 사람의 것이라는 것을 알고 그를 놀린다. 간베에 일행은 기쿠치요를 상대하지 않고 마을을 향해 떠나지만, 기쿠치요는 제멋대로 이들을 따라온다.
간베에 일행이 마을에 도착했지만 마을사람들은 한 명도 눈에 띄지 않는다. 마을사람들은 자신을 도우겠다며 찾아온 사무라이들이 무슨 행패를 부릴지 몰라 모두 숨어버린 것이었다. 이들 일행에 앞서 마을에 먼저 돌아온 만조는 사무라이들이 마을로 오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고 하면서 딸 시노의 머리카락을 일부러 잘라버린다. 리키치가 큰소리로 마을사람들에게 나오라고 소리치자 그때서야 마을사람들이 한 명 두 명씩 나타난다. 간베에 일행과 마을사람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갑자기 도둑이 습격하였다는 경계신호가 울린다.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둑들과 싸울 준비를 하는데, 기쿠치요가 나타나 자신이 장난 삼아 한번 경계신호를 울려보았다고 말한다. 이 일을 계기로 기쿠치요도 사무라이의 일원으로 인정을 받아, 이제 당초 간베에가 계획하였던 7명의 사무라이의 성원이 이루어졌다.
마을을 습격하는 도둑떼들은 40기의 기병으로 이루어졌다. 7명의 무사들로서는 도저히 이들과 맞서 싸울 수는 없다. 이들과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마을사람들도 무사들과 함께 싸워야 한다. 간베에는 먼저 마을사람들에게 군사훈련을 시킨다. 생전 무기라고는 손에 잡아본 적이 없는 마을사람들은 처음에는 훈련에 거부감을 보이지만, 간베에의 설득으로 무사들의 지휘에 따라 훈련을 받는다. 한편 카츠시로는 산속에서 우연히 머리를 깎인 채 남장을 한 시노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한편 기쿠치요는 마을사람들이 무기와 갑옷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모두 사무라이들 앞으로 가져온다.
마을사람들이 숨겨두었던 무기와 갑옷들은 전장에서 죽고 부상당한 병사들의 것을 수습한 것들이다. 전투가 끝난 후 농민들은 죽고 부상당한 병사들이 소지하고 있던 돈이나 물건들을 거두어 간다. 그러다가 죽지 않은 병사들을 보면 그들을 죽이고 갑옷을 벗겨간다. 많은 전투를 통해 그런 경험을 수없이 해온 무사들은 무기를 숨겨둔 마을사람들을 향해 분노한다. 무사들이 보기에는 마을사람들도 부상병을 죽이고 무기를 훔쳐간 도둑떼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무사들을 향해 기쿠치요가 소리를 친다. 무사들의 전쟁으로 인해 백성들이 얼마나 고통을 겪고 있는지, 그리고 백성들이 부상자를 죽이고 갑옷과 무기를 훔치는 것은 그들이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바로 무사들이라며 무사들의 위선을 공격한다. 기쿠치요는 실은 사무라이가 되고 싶어 마을에서 도망쳐 나온 농부였다. 마을사람들은 사무라이들의 지휘하에 마을을 지키기 위한 방어선과 함정을 만든다.
초여름 보리 베기가 시작되어 마을은 평화로운 시기를 맞이하고 있는데, 도적떼의 정찰병이 찾아왔다. 무사들은 정찰병을 잡아 그들의 산채가 있는 곳을 알아내었다. 무사들은 도둑떼들의 산채에 몰래 잠입하여 불을 지르고 여러 명을 죽이고 잡혀있던 여자들을 풀어준다. 그런데 그 가운데 아름다운 옷을 입은 여자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바로 리키치의 아내였다. 리키치의 모습을 본 그녀는 불타는 집 속으로 몸을 던진다. 리키치가 그녀를 구하러 달려가려 하자 이를 말리던 헤이하치가 도둑떼의 총탄에 쓰러진다. 마을로 돌아와 모두가 헤이하치의 죽음을 애도하는 가운데 도둑떼가 마을로 습격해 온다.
그동안 준비해 둔 목책과 웅덩이로 도둑떼가 마을로 들어오는 것은 막았지만, 마을 밖에 있는 촌장의 집과 물레방앗간은 도둑떼에 의해 불타버린다. 불속에 있는 부모를 구하러 뛰어들던 촌장 아들 부부는 모두 도둑떼들의 손에 의해 죽고, 갓난아기만을 기쿠치요가 겨우 구해온다. 기쿠치요는 아기를 안고 “이 녀석이 바로 나다”라며 울부짖는다.
하루가 지나고 새벽이 왔다. 지형을 이용한 간베에의 작전이 주효하여 무사들과 마을사람들은 도둑떼를 분리시켜 그 수를 조금씩 줄여나간다. 그러던 중 혼자서 도둑들의 조총 한 자루를 빼앗아 온 카츠시로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는 것을 보고는 기쿠치요도 대항심이 끓어올라 혼자서 도둑떼에 잠입하여 또 한 자루의 조총을 빼앗아 온다. 그러나 기쿠치요가 자리를 비운 사이 도둑떼가 마을을 습격하였다. 도둑떼의 기마병이 마을로 들어와 요헤이를 비롯한 많은 마을사람들이 죽고, 사무라이 중에서도 고로베에가 조총을 맞아 죽는다.
해가 지자 전투가 일단 멈추었다. 계속된 싸움에 마을사람들은 지쳐있었지만, 도둑떼들도 산채가 불타버린 데다가 숫자도 크게 줄어들었고, 게다가 도망자들도 나오기 시작하여 막다른 골목에 몰려 초조해하고 있었다. 이런 형편으로 날이 밝으면 도둑떼들은 죽을 작정으로 공격해 올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날 밤 마을 사람들과 사무라이들은 숨겨두었던 술과 음식을 꺼내어 잔치를 하며 사기를 올리고 있었다. 이런 소란 속에서 카츠시로와 시노는 다른 사람들 몰래 처음으로 사랑을 나눈다. 그것을 목격한 시노의 아버지 만조가 화가 치밀어 소동을 벌이지만, 아내를 잃은 리키치가 딸을 도적떼에게 빼앗긴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며 소리치면서 그 자리는 수습된다.
밤새 쏟아지던 비가 그치가 날이 밝기 시작하였다. 남은 13명의 도둑떼는 말을 타고 마을을 공격해 들어온다. 간베에는 오히려 이들 전부를 일부러 마을 안으로 들여놓고는 포위하여 싸움을 시작한다. 도둑떼는 한 명 한 명 쓰러지거나 도망치지만, 두목은 마을 여자들이 숨어있는 집으로 몰래 숨어 들어간다. 싸움이 거의 끝나갈 무렵 도적떼의 두목이 쏜 총탄을 맞아 구조가 죽는다. 두목이 숨은 곳으로 뛰어간 기쿠치요도 총에 맞지만, 기쿠치요는 무서운 기세로 두목을 찔러 죽이고는 자신도 목숨을 잃는다. 도둑떼는 드디어 전멸하였다.
도둑떼를 물리친 마을은 다시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와, 맑은 하늘 아래서 마을사람들은 피리를 불고 큰 북을 치면서 모심기에 나섰다. 활력에 차 새로운 생활을 개척해 나가려는 마을사람들과는 대조적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남은 3명의 사무라이의 표정은 어둡다. 사무라이들의 옆을 마을 처녀들이 지나간다. 그 속에는 시노도 섞여 있다. 시노는 카츠시로를 보고는 잠시 주저하는 듯하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논으로 달려간다. 그리고는 카츠시로를 잊으려는 듯 노래를 부르며 모심기에 열중한다.
간베에는 “이번 싸움도 또 졌구나”라며 중얼거린다. 무슨 말인지 몰라 이상한 표정을 짓는 시치지로에게 간베에는 “이번 싸움에서 이긴 것은 우리가 아니고 저 농민들이었어.”라며 언덕 위에 새로이 만들어진 무덤을 올려다본다. 언덕 위에는 묘비 대신에 칼이 꽂혀있는 네 개의 무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이 영화는 이번이 세 번째 감상이다. 이 영화는 워낙 유명하였기에 꼭 감상하고 싶었는데, 이전에는 일본영화의 수입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볼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94년 일본에서 비디오를 통해 처음으로 이 영화를 감상하였다. 그런데 그때는 자막도 없고, 일본어 실력도 시원찮아 내용을 쉽게 이해하진 못하였다. 이후 한글 자막이 붙은 영화를 보면서 상세한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영화는 70년 전에 제작되었다. 그리고 상영시간도 거의 4시간에 가까운 아주 긴 영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전편에 걸쳐 긴장감이 가시자 않는 높은 몰입도를 가지고 감상할 수 있었다. 4시간의 상영시간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은 아주 재미있는 영화였다. 이 영화를 리메이크한 서부영화 <황야의 7인>도 감상하였지만, 그보다는 이 영화가 훨씬 더 재미있다.
가장 젊은 사무라이인 카츠시로와 촌민의 딸인 시노의 사랑은 끝내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것 같다. 이들의 사랑을 가로막는 것은 사무라이와 농민이라는 신분차이인가, 아니면 근거가 없이 떠돌며 낭인생활을 하는 카츠시로가 시노를 받아들일 형편이 못 되어서 그런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