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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Jun 29. 2021

대구로의 시간 여행 E1

(2020-10-13) 중앙통을 지나며

사흘 예정으로 대구에 내려왔다. 추석에 못 찾았는데, 어머니를 뵙기 위해서이다. 세종에서 차로 오면 2시간 반 정도 걸리지만, 장시간 운전이 싫고 돈도 아끼자고 기차를 이용하기로 하였다. 고속버스 터미널이 집 근처에 있지만, 세종-대구 노선이 없기 때문에 기차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KTX보다 값싸고 느긋한 무궁화호를 이용하기로 했다. 조치원에서 동대구까지 2시간 반에 경로우대 적용 9.000원 정도.


오송에서 KTX를 타면 대구까지 한 시간이면 간다. 그렇지만 급한 일도 없는데 창밖 구경도 하면서, 영화나 보면서 천천히 가면 된다. 태블릿 PC로 1960년대 말 나왔던 홍콩 무협영화 첸 페이페이와 왕우 주연의 <심야의 결투>를 다 보니 벌써 대구 근처이다. 티켓은 동대구역까지 이지만 기차가 대구역에도 정차한다길래 대구 역에서 내렸다. 대구역도 이전에 비해 완전히 바뀌었다. 하긴 대구역에 와본지가 20년은 된 것 같으니 그럴 수밖에....


중학교 때 3년 동안 동성로 근처인 공평동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 당시는 대구시청에서 대구역, 동성로 일대는 마치 우리 동네 같은 곳이었다. 마치 고향 옛 동네에 온 느낌이다.


어머니 집은 명덕로터리 근처인데, 오랜만에 대구 시내 구경도 할 겸 걸어가기로 했다. 혼자서 오니 이렇게 느긋하게 어슬렁거릴 수 있어 좋다. 대구역 횡단보도를 건너면 바로 <교동시장>으로 연결된다. 교동시장은 옛날엔 <양키 시장>으로 불렀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교동시장엔 미군부대로부터 흘러나온 미제 소비재가 넘쳐나, 당시 대구서 돈꽤나 있었던 사람이 많이 들렀던 곳으로 알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야전삽, 군복, 군화 등 군용 물품을 팔던 가게들도 줄지어 있었다.

교동시장(양키시장)

날 또 교동시장 안쪽엔 먹을 것을 파는 가게들이 몰려있었다. 대구 명물인 납작 만두를 비롯하여, 골뱅이와 소리 삶은 것, 오댕. 김밥, 우동 등을 파는  코딱지만 한 가게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었다. 시장 골목으로 들어가니 50년도 더 된 옛날 모습이 거의 그대로 남아있었다. 폭이 1미터 될까 말까 한 미로 같은 좁은 길을 따라 옷가게와 수입품 가게가 빽빽이 들어서 있다. 식당들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손님이 없어 썰렁한 느낌인데, 코로나 탓인지, 시장의 사양화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한평 남짓한 조그만 가게에서 할머니가 납작만두를 부치고 있다. 반가운 마음에 들어가 1인분을 주문하였다. 맛있었다. 역시 납작 만두는 이런 곳에서 먹어야 한다. 나보다 먼저 납작 만두를 먹고 있던 나 또래의 남자는 두 접시를 비웠다.


옆으로는 옛 자유극장 골목이 있다. 옛날 좁은 시장 골목에  자유극장과 송죽극장이 마주 보고 서있었는데, 둘 다 외국영화 전문 재개봉관이었다. 내가 중고등학교 때 본 외국영화는 거의 이 두 영화관에서 보았다. 아마 두 극장을 합한다면 몇백 번은 갔을 것이다. 두 극장은 이미 리모델링되어 상가로 변해있다. 다만, 송죽극장 건물 2층엔 작은 <송죽 씨어터>란 간판이 보인다. 엿 송죽극장의 명맥을 잇고 있는 모양이다.


동성로를 따라 대구백화점 쪽으로 걸었다. 옛 한일극장이 나온다. 한일극장은 원래 <키네마 극장>이었는데, 외화전용 개봉관이었다. <키네마 극장> 시절 <사상 최대의 작전>, <방랑의 결투> 등을, 한일극장 시절 <솔저 블루>, <포세이돈 어드벤처> 등 꽤 많은 영화를 보았다. 한일극장  자리는 높은 빌딩으로 변해있었고, 극장은 물론 없어졌다.

중앙통과 동성로

한일극장을 지나 대구백화점 쪽으로 가다 오른쪽으로 난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아카데미 극장이 있던 중앙통 길이 나온다. 이 골목엔 옛날 <XX구락부>란 이름의 고급 술집이 몇 개 있었다. 그 가운데 <혹톨 구락부>란 독특한 이름의 술집이 지금도 기억난다. 구락부란 클럽이란 뜻이다. 구락부의 한자 具樂部를 일본어로는  <쿠라부>, 즉 클럽이라고 읽는다.


아카데미 극장 바로 옆에는 한일 빌딩이 있다. 한일빌딩은 내가 중학교 1학년 때인 1967년에 건설되었다고 기억하는데, 12층으로서 대구에서 최초로 건설된 10층을 넘는 빌딩이었다. 대구 시민은 물론 대구 부근 시골에서도 한일 빌딩을 구경하러 오곤 했던 회제의 빌딩이었다. 60층 아파트가 흔해진 지금으로선 웃음이 나오는 옛날이야기이다. 아카데미 극장 바로 옆에는 제일극장이 나란히 서 있었는데, 두 극장 모두 외화전용 개봉관이었다. 국산영화 개봉만으로는 처음에는 만경관만 있었으나, 후에 교동시장 안쪽 송죽극장 뒷골목에 있던 대구극장이 추가되었다.


중앙통을 따라 반월당 쪽으로 걸어간다. 길 건너편으로 약전골목이 보인다, 유명한 대구 약령시장이다. 약령시장 뒤로는 대구 골목투어 코스가 있다. 10년쯤 전인가  친구인 경북대 장지상 교수와 두어 시간 정도 골목길 투어를 한 적이 있었다. 엿날 미로와 같던 좁은 골목길이 훌륭한 문화의 거리로 변모해 있었다. 어릴 때 어머니 치맛자락을 잡고 따라다니던 그 칠벅거리던 <방천시장> 길이 <김광석 거리>로 화려하게 재탄생한 것을 보면 참 세상일은 모를 일이다.


반월당 네거리를 지나면 이제 번화가는 끝이다. 길 건너편은 옛날 <염매시장>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온통 빌딩이다. 염매시장에서는 고급 생선을 많이 팔았다. 당시 활어란 건 찾아볼 수 없던 시기에 염매시장에 가면 활어 등 값비싼 생선을 볼 수 있었다. 지금도 <염매시장>이 영업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반월당을 종 지나니 <대구민주화운동기념회>가 만든 우리나라 민주화운동 사진 벽화가 나온다. <대구 2.28 의거에서 시작하여 1987년 시민혁명까지의 민주화 과정의 사진이 벽화로 만들어져 있다.

반월당 민주화운동 벽화

중앙로를 따라 언덕길을 넘어가면 대한극장 사거리가 나온다. 중앙로를 사이에 두고 대한극장과 대도극장이 마주 보고 있었다. 두 극장은 모두 국산영화 재개봉관이었다. 중고등 학교 때는 두 극장 합해 최소한 백번 이상은 갔을 것이다. 대도극장 뒷골목엔 팥죽과 오징어 튀김, 우동과 오댕 등을 파는 포장마차가 있었다. 당시 얼마나 맛있었는지 또래 진구들에 비해 비교적 용돈이 넉넉했던 나는 여길 수시로 찾았다. 


대한극장 사거리를 지나 명덕로터리 쪽으로 가면 얕은 언덕길 위에 경북여고가 나온다. 한때 영남 최고 명문 여자고등학교로 이름을 날렸던 곳이다. 전통 있는 대구의 고등학교는 대부분 신도시 쪽으로 이사를 했는데, 경북여고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의 모교도 졸업생들의 반대로 이전을 못해 그 결과 학교의 수준이 크게 낮아졌다고 하는데, 경북여고는 어떤지 모르겠다.


경북여고를 지나면 바로 명덕로터리이고, 여기서 직진하면 모교, 왼쪽 길로 가면 어머니 아파트이다. 이 동네는 50년 전과 별 변화가 없다. 명덕로터리에 경전철 역이 있는 것을 제외한다면 거의 60-70년 정도 되어 보이는 낡은 건물  투성이다. 지방도시들은 서울에 비해 재개발이 매우 부진하다. 아마 개발이익이 크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그동안 대구에 올 땐 거의 자동차로 왔고, 또 대부분 제사 등 가족모임만 가진 후 바로 귀가하였기 때문에 대구시내를 돌아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오늘 오랜만에 옛 주억에 젖어 대구 거리를 걸을 수 있었다. 오늘은 중고등학교의 추억이 어린 곳이었다. 사정이 되면 유소년기의 추억이 있던 곳을 찾아보아야겠다.


요즘은 자꾸 옛날 어릴 때 생각들이 많이 난다. 자꾸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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