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 홍콩을 무대로 한 젊은 남녀의 건조한 사랑
영화 <중경삼림>(重慶森林)은 도시 속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두 개의 사랑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작품으로서 1994년 홍콩에서 제작되었다. 이 영화는 뛰어난 작품성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 제14회 홍콩영화 금동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 최우수 감독상,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제31회 금마장 시상식에서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를 통해 왕가위, 금성무 등이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중경(重慶, 충칭)은 중국 중부에 있는 대도시로서, 일제강점기 우리 임시정부가 위치해 있던 곳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무대는 홍콩이다. 이 영화는 홍콩에 있는 충칭빌딩(重慶大廈)이라는 낡은 아파트를 무대로 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홍콩의 빌딩들을 “삼림”(森林)이라 표현하고 있다. 그러니까 홍콩의 낡은 아파트군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그린 것이 바로 이 영화다.
첫 번째 이야기
5월 1일은 형사번호 223번인 하지무의 생일이자 그가 애인인 메이와 헤어진 지 꼭 한 달이 되는 날이다. 그는 5월 1일까지만 메이를 기다리기로 하고, 5월 1일이 유통기한인 파인애플 통조림을 사모은다. 그날까지 만약 메이가 돌아오지 않으면 그녀를 잊기로 마음먹는다.
어느 공항에서 금발의 미녀(임청하 분)가 인도인들을 마약운반책으로 고용하여, 그들의 옷과 짐 속에 마약을 숨기고 있다. 홍콩 공항에 도착하자 인도인들은 마약을 가지고 뿔뿔이 도망쳐버린다. 금발의 여인은 달아난 한 인도인이 가게에 들르는 것을 목격하고, 가게주인의 아들을 인질로 하여 가게주인으로부터 인도인들이 도망간 곳을 알아낸다. 그녀는 인도인들을 한 명 한 명 찾아내어 마약을 회수한다.
5월 1일이 되었지만 메이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는다. 하지무가 단골 패스트푸드 점인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에 들렀더니, 새로운 여자 아르바이트생이 일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도 메이라 한다. 그는 메이에게 영화라도 보러 가자고 제안하지만 그녀는 시큰둥하다. 어쩔 수 없이 하지무는 다른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 술이라도 한 잔 하자고 하지만, 모두들 일이 있다면 거절한다. 하지무는 그동안 사모았던 파인애플 통조림을 뜯어먹고는 혼자서 바에 들린다. 그는 이 술집에서 처음 만나는 여자와 사랑하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무가 바에 앉아있자니 금발 여인이 들어온다. 하지무는 여자에게 함께 술을 하자고 제안하고, 그녀도 별 거부감 없이 응한다. 둘은 고주망태가 되도록 취하여 함께 호텔로 들어간다. 하지무는 침대에 쓰러진 여인의 신발을 벗겨 닦아준다. 그리고는 조용히 방을 나온다.
그날 저녁 바에는 어떤 남자와 금발 여인이 서로 껴안아 가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 남자는 바로 마약 밀매상의 보스였다. 술집 뒷문 쪽에서 고양이 소리가 시끄럽다. 보스가 뒷문을 열고 나가보니 고양이들이 깨어진 정어리 통조림 주위에 몰려있다. 그가 통조림을 버리려 허리를 숙인 순간 따라 나온 금발의 여인이 그의 머리를 향해 총을 쏜다. 보스는 사망하고, 여자는 금발 가발을 던지고 사라진다.
하지무는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를 찾아가지만, 메이가 보이지 않는다. 주인에게 물으니, 메이는 그만두고 페이라는 새로운 아가씨가 왔다면서 페이와 사귀면 어떻겠느냐고 묻는다.
두 번째 이야기
패스트푸드점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에서 일하는 페이는 언젠가는 캘리포니아로 가려는 꿈을 안고 있는 아가씨이다. 형사번호 633은 매일 여기에 들러 커피를 마시거나 음식을 사가는데, 페이는 그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다.
633은 스튜어디스와 사귀고 있었는데, 얼마 전 그녀와 헤어졌다. 하루는 633의 전 애인이었던 스튜어디스가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로 찾아와 페이에게 633이 있는가 물어보고는, 없다고 하니까 633에게 전해주라면서 봉투를 맡기고 떠난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식당 직원들은 그 봉투 안의 내용이 궁금하기 짝이 없다. 모두들 봉투를 열어보고 싶어 하지만, 페이가 프라이버시라고 하면서 거절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몰래 자신이 그 봉투를 열어본다. 봉투에는 편지와 열쇠가 들어있었다. 그 열쇠는 바로 633의 아파트 열쇠였다. 얼마뒤 633이 왔을 때 페이는 봉투를 내주지만, 그는 봉투 내용을 확인도 않고 나중에 찾아가겠다고 한다.
페이는 그 열쇠로 633의 집에 몰래 들어간다. 그리고는 그곳에서 청소를 하거나 침대에 누워 쉬거나 하다가 633이 돌아올 시간이 되면 집에서 나온다. 그런 생활이 며칠간 계속되었다. 633도 집에 돌아와서는 집안이 뭔가 조금 달라졌다는 느낌을 갖는다. 어느 날 페이는 청소를 하다가 물을 엎질러 아파트를 물바다로 만들어버렸다. 이때 633이 근무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집에 들렀다. 갑자기 633을 맞닥트린 페이는 놀라서 넘어진다. 633은 페이의 다친 다리를 돌보아주며 그날 오후를 함께 지낸다. 며칠 후 633은 또 집에서 페이를 마주치는데, 페이는 그대로 도망쳐 버린다.
633은 패스트푸드점으로 페이를 찾아가 저녁에 “캘리포니아”라는 바에서 만나자며 데이트 신청을 하고, 그녀도 승낙한다. 633이 먼저 바에 도착하여 기다리지만 페이는 오지 않는다. 시간이 지난 후 페이는 나타나지 않고, 대신 패스트푸드점 주인이 나타나 633에게 편지를 전해준다. 그는 그것이 이별 편지일 것이라 짐작하고 편지를 뜯지도 않고 버리지만 결국 다시 비에 젖은 편지를 주워 읽어본다. 그 안에는 손으로 그린 캘리포니아행 항공권이 들어있었다. 페이는 그녀가 항상 원했던 캘리포니아로 떠난 것이었다.
1년의 시간이 흘렀다. 스튜어디스가 된 페이는 다시 옛날에 일하던 패스트푸드점을 찾았다. 문은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셔터를 열고 들어가 보니 가게는 공사 중이었고, 그곳에는 뜻밖에 633이 있었다. 경찰을 그만두고 이 가게를 새로이 인수하여 지금 내부수리 중이라는 것이다. 두 사람이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영화는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