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엄마를 만나러 길을 떠난 소련군 소년 병사의 짧은 휴가
이전에 이 블로그에서 1966년 소련에서 제작한 <전쟁과 평화>를 소개하면서 “철의 장막” 속의 공산 독재국가 소련이 만든 영화가 통념과 달랐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의 링크를 참고하기 바란다. 오늘 소개하는 <병사의 발라드>(Ballad of a Soldier) 역시 1959년 소련에서 제작한 영화인데, 2차 대전을 무대로 휴가차 고향으로 돌아가는 어린 병사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우연히 만난 소녀와의 사랑을 그린 로드무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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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전쟁영화는 아니다. 전쟁의 혼란 속에서 어린 병사가 겪는 낭만적인 사랑, 결혼한 부부의 헌신적인 사랑, 어머니에 대한 사랑, 자식에 대한 사랑 등 다양한 종류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영화는 BAFTA 어워드(BAFTA: Award for Best Film From Any Source) 등 여러 상을 수상했으며, 아카데미 각본상 최우수 오리지널 각본상 후보에 오르기도 하였다.
끝없이 펼쳐져 있는 어느 소련 시골의 벌판, 한 중년의 여성이 굽이치는 시골길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아니 그녀는 돌아올 리가 없는 아들, 결코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아들을 기다리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독소 전쟁에서의 동부전선. 통신병인 열아홉 살의 알료샤 스크보르초프 일병은 다른 모든 전우들이 전사한 속에서 선배 병사와 단 둘이 참호 속에 숨어있다. 저 멀리 5대의 독일 탱크가 접근하고 있다. 참호 속의 알료샤를 발견한 독일 탱크는 기관총을 맹렬히 발사하고, 결국 선배 병사마저 총을 맞고 죽는다. 탱크는 참호 가까이 다가왔다. 알료샤는 참호를 뛰쳐나가 필사적으로 도망친다. 2대의 독일 탱크가 마치 사냥을 하듯이 알료샤를 추격한다. 계속되는 탱크의 추격에 기진맥진한 그는 앞에 보이는 참호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곳에 로켓포가 눈에 띄었다. 알료샤는 로켓포를 들어 탱크를 향해 발사한다. 2대의 독일군 탱크는 화염에 싸인다.
알료샤는 겨우 사단 본부로 귀한하였다. 알료샤의 보고를 들은 장군은 그를 전쟁 영웅이라 치하하고 상부에 보고하여 표창장을 상신하겠다고 한다. 그러자 알료샤는 표창장 대신에 자신에게 잠시 휴가를 달라고 한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찾아가 물이 새는 지붕을 고쳐주고 돌아오겠다는 것이다. 한창 전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병사가 빠지는 것은 어렵다면서 주위의 참모들이 의견을 내지만, 장군은 통 크게 알료샤에게 휴가를 허가한다. 알로샤에게는 6일의 휴가가 주어졌다.
알료샤는 지프를 얻어 타고 후방으로 향한다. 지프와 반대 방향으로는 전선을 향해 이동하는 군대의 행렬이 길게 이어진다. 지프가 진흙탕에 빠지자 옆을 행진하던 파블로프 일병 일행이 차를 밀어 꺼내준다. 파블로프는 알료샤가 자신의 집이 있는 도시를 거쳐 고향으로 간다는 것을 알고 아내에게 자신의 소식을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면서 아내에게 줄 선물을 찾고 있는데, 다른 분대원들이 분대장에게 부탁하여 2개의 비누를 선물로 건네준다. 그 두 개의 비누는 분대원들이 2주 동안 사용할 비누이다.
기차역에서 알료샤는 한쪽 다리를 잃은 제대 군인 바샤를 만나, 그의 여행가방을 들어준다. 바샤는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라고 하는데, 기차를 타고 가는 도중에 바샤는 갑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한다. 도저히 이런 모습을 아내에게 보여줄 수 없으며, 젊은 아름다운 아내의 짐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알료샤의 설득으로 마지못해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도시의 기차역에서 내린다. 역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 있지만, 바샤의 아내는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한둘씩 흩어져 텅 빈 플랫폼에서 실망한 바샤는 혼자서 떠나려 한다. 그때 저곳에서 바샤의 아내가 손을 흔들며 바샤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온다. 그녀는 그대로 바샤의 품에 안긴다.
다시 알료샤가 고향으로 향하는 기차를 타려 하는데, 기차는 벌써 출발하고 말았다. 그때 건초를 싣고 가는 열차가 눈에 뜨인다. 알료샤가 몰래 건초가 실린 화물칸에 오르려 하지만 보초병 가브리킨이 알료샤를 발견하고 절대 태워줄 수 없다고 한다. 자신의 상관인 중위는 “짐승”이란 별명을 가진 악질로서, 만약 그가 자신이 알료샤를 태워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알료샤가 쇠고기 통조림을 한 통 주니까 태워주겠다고 하면서, 절대로 중위에게 들켜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한다.
열차는 달리다가 어느 기차역에서 멈췄다. 화물칸의 문이 열리며 한 소녀가 몰래 차에 오른다. 열차는 다시 출발하였다. 건초 더미에서 졸고 있던 알료샤가 소녀를 발견하고 가까이 다가가자 소녀는 겁에 질려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내리려고 한다. 알료샤는 겨우 그녀를 진정시키고 함께 여행을 한다. 그녀는 병원에 입원해 있는 공군조종사인 약혼자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고 한다. 둘은 함께 대화를 나누며 여행을 계속한다. 소녀의 이름은 “슈라”였다.
화물칸 문이 열리면서 경비병 바브릴킨이 슈라를 발견하고는 내리라고 윽박지른다. 상관인 중위가 알면 모두 죽는다는 것이다. 알료샤는 못 본 체 해달라며 다시 쇠고기 통조림 두 통을 그에게 준다. 바브릴킨이 통조림 두 통을 받고 화물칸 문을 닫으려는데, 그 악질이라는 중위가 이 광경을 목격하였다. 중위는 알료샤의 말을 듣고는 걱정 말고 이 열차를 타고 가라고 하면서, 바브릴킨에게는 통조림을 돌려주고 영창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 하면서 떠난다.
어느 기차역에서 알료샤는 물을 길으러 나왔는데, 그 사이에 기차가 출발하고 말았다. 미친 듯이 기차를 따라 달려가던 알료샤는 지나가는 트럭 운전사에게 부탁하여 겨우 다음 역까지 갔다. 그러나 기차는 이미 떠나버렸다. 알료샤가 낙담하고 있을 때 육교 위에서 슈라가 자신을 부른다. 슈라는 이곳에 내려서 알료샤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둘은 파블로프의 아내를 찾아간다. 그런데 파블로프의 아내는 이미 다른 남자와 살고 있었다. 알료샤는 파블로프 아내에게 준 두 장의 비누를 도로 찾아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파블로프의 아버지에게 전해주고, 아들의 소식을 알려준다.
이제 알료샤와 슈라가 헤어질 때가 되었다. 슈라는 알료샤에게 자신이 약혼자를 찾아간다는 말은 거짓말이라고 고백한다. 약혼자는 없으며, 이모를 찾아간다는 것이었다. 슈라를 두고 기차에 오른 알료샤는 자신이 슈라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다는 것을 잊었다고 후회한다. 한편 남은 슈라 역시 알료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을 후회한다.
알료샤가 타고 가던 기차가 독일 폭격기의 공격을 받아 파괴된다. 교통수단이 없어 막막해하던 알료샤는 근처를 흐르던 강가에서 뗏목을 발견하고는 뗏목을 타고 강을 거슬러 내려간다. 다시 육지로 오른 알료샤는 근처를 지나가던 군용 트럭에게 사정하여 고향 소스노프카까지 태워달라고 부탁한다. 규칙에 어긋난다며 거절하던 노병은 알료샤의 간절한 부탁에 고향까지 태워주겠다고 한다.
길가에서 알료샤가 트럭을 타고 오는 모습을 본 마을 사람들은 이 소식을 밭일을 하고 있는 알료샤의 어머니에게 알리러 간다. 알료샤가 집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어머니가 보이지 않는다. 옆집에 사는 소녀가 알료샤에게 어머니는 지금 밭에서 일하고 있다고 알려준다. 그러나 알료샤에게는 지금 밭으로 가서 어머니를 만날 시간이 없다. 트럭은 지금 바로 출발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알료샤는 다시 트럭에 올라 마을을 떠난다.
한편 밭에서 일하다가 이웃사람으로부터 알료샤가 왔다는 말을 들은 알료샤의 어머니는 죽을힘을 다해 달린다. 알료샤의 어머니가 도로에 올라오기 전에 트럭은 벌써 알료샤 어머니 앞을 지나간다. 그녀가 도로에 올라 멀어져 가는 트럭을 바라보고 있는데, 트럭이 정지하고 알료샤가 트럭에서 내린다. 달려와 엄마의 품에 안긴 알료샤는 꼭 다시 돌아오겠다며 약속한다. 찰나 간의 모자의 상봉을 마치고 알료샤는 다시 트럭에 오른다. 알료샤의 어머니는 멀어져 가는 트럭의 모습을 한없이 지켜보고 있다.
아주 감동적인 영화였다. 최근에 감상한 영화 가운데 최고였다. 이 영화가 제작된 1959년 무렵은 미소를 양 축으로 한 냉전이 한창 진행되던 중이었다. 그리고 당시 소련은 “철의 장막” 속에서 공산 철권통치가 이루어졌던 시기였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그 시대의 소련사회란 호전적인 분위기 속에 철저한 통제사회라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영화를 비롯한 문화예술도 공산혁명을 찬양하고, 독재자를 숭배하며, 국민적 자긍심을 강조하는 국뽕 영화가 대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짐작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소개한 <전쟁과 평화>는 물론 오늘 소개한 <병사의 발라드>도 이런 통념과는 완전히 어긋난 영화였다. 이 영화는 전쟁 속에서도 사그라지지 않는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사랑하는 아들을 애타게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 그리고 어머니를 찾아가는 주인공 알료샤의 마음, 건초 화물칸에서 우연히 만난 알료샤와 슈라의 애절한 사랑, 그 밖에도 전쟁의 혼란 속에서 주인공 알료샤가 만나게 되는 부부의 사랑, 아버지의 사랑, 병사들 간의 우정 등을 그리고 있다. 영화를 감상하고 있노라면 저절로 가슴이 따뜻해진다.
대개의 전쟁영화는 선과 악으로 선명히 구분된다. 우리 편은 “선”이고 적은 “악”이다. 우리 편의 사람들은 휴머니스트이지만, 적은 인간적으로 악인이다. 전쟁 명분에서 이쪽은 선이고 저쪽은 악일 뿐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저쪽은 모두 악인인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전쟁영화에서는 관객들로 하여금 “적”에 대한 적대감을 불태우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보는 현대 전쟁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을 무대로 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우리 편은 미국이고 적은 독일이다. 이런 영화에서는 대부분 미군은 아주 관대하고 사람들에게 연민을 가지고 있지만, 독일군은 사람들을 학살하거나 괴롭히는 천성적인 악인들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반드시 그렇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적군이건 아군이건 나쁜 사람과 좋은 사람은 비슷한 비율로 존재하기 마련이다. 전쟁영화에서 적군을 인간적으로 악마화하는 것은 적에 대한 적개심을 높이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것이다.
소련은 오랫동안 서방에서는 적대적인 국가였다. “악의 본산”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영화에서는 소련군에 대해 아주 부정적으로 그려진다. 그런데 오늘 소개한 영화 <병사의 발라드>는 소련에서 제작한 영화이다. 자국 군인들을 그렇게 악인으로 묘사할 수 없다. 이 영화에서는 소련 군인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세 명이 등장한다.
첫 번째는 참모들의 우려를 물리치고 주인공 알류샤에게 휴가를 주는 장군이다. 그는 아주 점잖으면서 인자한 아버지와 같은 포용력을 가진 인물로 그려진다. 두 번째는 “짐승”이란 별명을 가진 건초 운반열차 경비대장인 “중위”이다. 그는 악질이라 “짐승”이란 별명을 얻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어려운 처지에 놓인 알류샤와 슈라의 사정을 듣고 둘을 도와주는 한편, 이들에게 삥을 뜯은 부하를 엄하게 질책하는 따뜻한 가슴을 가진 장교이다. 세 번째는 알류샤에게 아내에게 소식을 전해 달라는 병사 파블로프와 그의 분대원이다. 파블로프의 동료 분대원들은 파블로프가 아내에게 줄 선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자신들이 1주일 동안 사용해야 할 비누 한 장을 선물로 주라고 분대장에게 부탁한다. 분대장이 비누가 두 장밖에 없다고 하자 자신들은 2주일 동안 비누 없이 지내겠다면서 두 장 모두 선물로 주라고 한다. 동료를 위한 따뜻한 동료애이자 배려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소련군들은 모두 가슴 따뜻한 휴머니스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는 소련군은 “악”이 아니다. 우리가 어떤 전쟁을 평가할 때는 전쟁의 명분 혹은 목적과 인간적인 요소를 분리하여 판단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