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탈리 그랑제>(Nathalie Granger)는 1972년 프랑스에서 제작된 드라마 영화로서 매우 실험적인 영화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두 명의 여자가 별 의미 없는(관객의 입장에서는)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채워지고 있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 세일즈맨이 등장하는데, 그 역시 영화를 감상한 후 전혀 기억에 남지 않은 무의미한 말만을 늘어놓을 뿐이었다. 필자로서는 전혀 의미를 알 수 없는 그런 영화였다.
도시 변두리의 정원이 딸린 작은 집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사벨과 다른 한 여자는 거실에서 각자 일을 하며 가끔씩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들의 대화는 감정이 거의 들어가 있지 않은 건조한 이야기들 뿐이다.
이사벨의 가족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TV에서는 교외에서 총을 난사하여 사람들을 해친 소년들이 벌인 사건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사벨의 남편은 요즘 아이들은 너무 폭력적이라며 이야기를 꺼낸다. 그렇지만 그것은 흘러가는 이야기일 뿐이며, 그 이야기에 특별히 무게를 두지는 않고 있는 것 같다.
이사벨은 다른 여자에게 자신의 어린 딸인 나탈리 그랑제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학교 교사가 나탈리가 폭력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이사벨이 교사에게 나탈리에게 피아노 교습을 시키겠다고 말하자 교사는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고 묻는다. 이사벨이 그것 말고는 특별히 시킬 것이 없다고 하자, 교사는 그것도 괜찮은 선택이라 말한다.
라디오에서 탈옥하여 총으로 사람을 죽이고 도망 중인 소년들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온다. 라디오에서는 요즘 아이들의 폭력적 성향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경고하지만, 이사벨과 다른 여자는 건성으로 그 뉴스를 들을 뿐이다.
초인종이 울려 문을 열어주니 세탁기 세일즈맨이다. 두 여자의 권고로 집 안으로 들어온 세일즈맨은 자신이 팔고 있는 세탁기가 얼마나 편리한 것인가를 설명하지만, 두 여자는 별다른 반응 없이 무심히 그 이야기를 들을 뿐이다. 자신의 이야기에 여자들이 계속 아무런 반응이 없자 세일즈맨은 자신이 여기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혼란스러워졌다. 그래서 여자들에게 관심도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아 미안하다며 그만 나가겠다고 한다. 여자들은 잘 생각해 보고 세탁기에 관심이 있으면 연락하겠다고 한다.
얼마뒤 세탁기 세일즈맨이 다시 찾아온다. 다시 여자들에게 세탁기를 구입하라고 권유하지만 이번에도 여자들은 아무 반응도 없다. 세일즈맨은 자신의 속을 털어놓는다. 자신은 세일즈맨을 시작한 이후 아직 한 대의 세탁기도 판 실적이 없다. 그래서 이 일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그만둘 것이라고 말한다. 여자들이 그럼 무슨 일을 새로이 할 것이냐고 묻자, 자신이 할 줄 아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다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그는 신세타령인지 넋두리 같은 말을 늘어놓는다. 얼마 후 세일즈맨은 물러난다.
다시 거실에서는 여자 둘 만 남았다. 그녀들이 별다른 의미도 없는 말을 가끔씩 주고받는 가운데 영화는 막을 내린다.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영화이다. 이 영화가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랬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자체가 고통이었다. 어떤 영화 평론가들은 이 영화가 실험적인 영화로서 현대인의 단절된 인간관계와 사회적 소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평가하는데, 나에게는 그런 느낌이 전혀 와닿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