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은 오징어가 동해안에서 많이 잡힌다고 생각하지만, 몇 해 전부터는 이미 서해 오징어가 동해를 압도하고 있다고 한다. 동해안 오징어의 집산지가 주문진이라면, 서해안 오징어의 메카는 단연 신진항이다. 신진항은 태안반도 끝자락 신진도리에 위치해 있는데, 원래는 섬이었으나 연육교인 신진대교가 개통되면서 지금은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
작년 9월 신진항을 찾아 큰 오징어 한 상자를 사 두고두고 먹었다. 며칠 전 유튜브에서 신진항에 오징어가 몰려왔다는 영상을 보았다. 마침 지난번 홍원항에서 사 온 갑오징어를 거의 다 먹어가던 참이라 잘됐다고 생각하고, 다시 신진항에 가기로 했다. 갑오징어가 아주 맛있다고 해서 한 상자를 샀었는데, 일반 오징어에 비해 그다지 맛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일반 오징어가 내 입엔 더 맞는다.
세종시도 충청남도 안에 있고, 신진항도 충남에 있으니 거리가 가까울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약 150킬로미터 거리로, 2시간이나 걸리기 때문에 세종에서 서울까지 가는 것보다 훨씬 멀다. 그럼에도 서울에 가는 것보다 마음은 훨씬 가볍다.
며칠간 찌는 듯한 더위가 계속되었으나, 어제부터는 조금 선선한 느낌이 든다. 월요일이라도 오징어 철이니 신진항이 상당히 붐빌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한산하다. 입구에 있는 몇몇 가게에만 손님이 조금 있을 뿐, 나머지 가게들은 거의 텅 비어 있다. 그런데도 직원들은 바쁘다. 알고 보니 택배 주문이 워낙 많아, 택배로 보낼 오징어를 손질하느라 분주하다는 것이었다.
가게마다 진열된 오징어는 거의 없고, 대신 스티로폼 박스가 높이 쌓여 있다. 날씨가 더워 오징어가 노출되면 금방 상할 수 있기 때문에, 스티로폼 박스에 넣어두었다가 손님이 오면 꺼내 보여준다고 한다. 가격은 한 상자(보통 20마리 또는 25마리 기준)에 4만 5천 원에서 7만 원 정도이다.
가게들을 둘러보니 오징어 외에는 눈에 띄는 해산물이 많지 않다. 소라나 조개류, 그 외에 고등어나 갈치 정도가 조금 보인다. 그렇게 가게를 둘러보고 있는데, 손님이 없는 한 가게의 사장이 말을 걸어온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싱싱한 물건을 보내주겠다며 명함을 건넨다.
내친김에 잘됐다 싶어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아귀는 이미 시즌이 끝나 없고, 갑오징어나 병어 등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오징어가 작년에 비해 많이 작아 보여 이유를 묻자, 이제 막 철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라 한다. 오징어는 지금부터 폭풍 성장해서 8월 15일쯤이면 아주 크고 좋은 것들이 잡히며, 그때는 가격도 훨씬 저렴해진다고 한다.
이왕 온 김에 오징어 한 상자(6만 5천 원)를 샀다. 지금 기준으로는 제일 큰 사이즈에 속하지만, 작년에 산 것보다는 확실히 작다. 참소라 1킬로그램에 1만 8천 원. 막상 저울에 달아보니 거의 1.5킬로그램 정도 된다. 그리고 밥반찬용으로 아주 큰 고등어 4마리 2만 원. 유튜브에서는 이곳에 지금 붕장어(穴子, 아나고)가 대풍이라던데, 실제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것으로 쇼핑은 끝.
신진항 근처에도 명소가 제법 있다. 하루에 두 번씩 바닷길이 열리는 간월도(看月島), 천리포수목원, 국립태안해양유물전시관 등 모두 볼 만하지만, 이미 해산물을 사버린 터라 신선도를 고려해 다른 곳에 들를 수는 없다.
수산물 시장을 나오는데 “좋은 물건 많아요, 사가세요”라는 약간 서툰 우리말이 들린다. 돌아보니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동남아 여성이었다. 서해안 바닷가에 오면 국제결혼을 해 수산시장 가게의 안주인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동남아 여성들을 종종 본다. 그들은 나이 든 남편을 도와 정말 억척스럽게 일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마음이 훈훈해진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출발하자마자 갑자기 폭우가 쏟아진다. 와이퍼를 최고 속도로 해도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다. 그러다가 조금 지나면 도로에 비가 내린 흔적조차 없다가, 다시 호우가 퍼붓는다. 오늘부터 며칠간 간간이 폭우가 내릴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있었는데, 정말 예측할 수 없는 날씨다.
집에 도착해 냉동 보관할 것들을 정리했다. 오징어나 고등어는 가게에서 미리 손질해주기 때문에 낱개로 포장해 냉동고에 넣기만 하면 된다. 처음에는 오징어가 매우 작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꺼내 놓고 보니 마트에서 파는 것보다는 훨씬 크다.
캔맥주 한 통에 오징어 숙회 한 마리, 소라 두 마리를 안주로 곁들이니, 오늘도 즐거운 한 주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