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초기에는 18-19세기를 배경으로 아프리카에 진출한 유럽 군인들과 토인(土人, 그 당시에는 아프리카 원주민을 토인이라 불렀다)들과의 싸움을 주제로 한 영화가 꽤 나왔던 것 같다. 유럽과 아프리카 원주민들과의 전쟁뿐만 아니라 미국을 무대로 한 인디언들과 기병대 간의 전쟁 혹은 인디언들과 개척자들 간의 전쟁 등도 자주 상영되었던 것 같다.
이런 영화들의 포맷을 대개 비슷하다. 아프리카에 진출하여 소수의 유럽 군인들과 민간인들이 거주하는 장소에 원주민들이 공격해온다. 전투병들의 숫자는 압도적인 차이가 난다. 유럽인들은 소수의 병사와 민간인들이 방어하고 있는데 비하여 공격해온 원주민들은 수천 명에 달한다. 총으로 저항하는 유럽인들에 대하여 토인들은 넓게 횡대로 진을 치고, 창과 방패로 무장을 한 채 기성을 지르며 끊임없이 공격해온다. 유럽인들의 사격으로 원주민들은 죽고 또 죽어도 끊임없이 공격해온다.
유럽인들의 영웅적인 방어에도 불구하고 숫자의 병력의 열세로 방어 진지가 함락되려는 순간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응원군이 도착한다. 이 순간 영화를 관람하던 관객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진다. 응원군들은 간단히 원주민 군대를 제압하고, 원주민 군대는 무수한 시체를 남기고 퇴각하고 만다. 그리고 유럽인들은 승리의 기쁨과 되찾은 평화에 환호한다. 이러한 스토리가 미국을 무대로 하면 아프리카 원주민은 인디언이 되고, 유럽의 병사들과 민간인들은 기병대와 개척자들로 대체된다.
영화 <줄루 전쟁>(Zulu)은 이러한 포맷을 가진 영화의 하나로 1964년 영국에서 제작되었다. 이 영화는 아프리카에 진출한 영국군들과 아프리카 줄루족 간의 전투라는 실제의 사건을 주제로 한 영화이다. 영화 이야기에 앞서 먼저 이 영화의 주제가 된 줄루 전쟁에 대해 잠시 알아보자.
1867년 영국은 식민지 확장을 위해 남아프리카 지역에 진출한다. 당초 영국은 군사력보다는 이 지역에 위치한 여러 왕국들과 부족들 간의 알력과 불화를 이용하여 정치 및 외교를 통해 이 지역을 장악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줄루 왕국을 비롯한 몇몇 국가들이 이에 강력히 반발하였다. 영국의 대표자로 파견된 바틀 프레어 경((Sir Henry Bartle Frere)은 영국 정부의 승인 없이 독자적으로 줄루 왕국과 전쟁을 벌일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그는 줄루의 왕에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의 최후통첩을 보냈고, 당연히 줄루 왕국은 이를 거부하였다.
이를 빌미로 영국은 줄루 왕국을 침공한다. 영국군은 초반 전투에서 줄루 왕국의 군대에 패배한다. 이 패배는 서구 제국주의의 군대가 아프리카에서 기록한 첫 패배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결국에는 총과 대포로 무장한 영국군에게 창과 방패로 대항한 줄루 군의 패배는 예정된 것이었으며, 이 전쟁의 승리를 발판으로 영국은 남아프리카 일대를 식민지로 삼는다. 이 전쟁은 그 성격으로 본다면 근대적 무기로 무장한 유럽군이 식민지 확장을 위해 낙후된 지역의 원주민 군대를 일방적으로 살육한 추악하기 이를 데 없는 전쟁이었다.
영화 줄루 전쟁은 초반 전투에서 패배한 영국군이 소수의 병사들과 민간인들이 필사적으로 싸우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소수의 병사와 여자를 포함한 민간인들은 작은 요새에서 수십 배, 수백 배의 병력의 줄루 군에게 포위되어 필사적으로 저항한다. 영국군들은 공격해오는 줄루 군을 필사적으로 저지하지만, 줄루 군은 그야말로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공격해온다. 드디어 총알도 떨어지고, 요새가 함락되려는 순간 구원병이 도착하여 줄루 군을 물리친다. 영국군은 수십 배가 넘는 줄루 군을 향해 처음에는 사격으로, 다음은 백병전을 통해 요새를 지켜낸다. 이들은 전쟁에 승리한 영웅으로 묘사된다.
아마 지금 시대에 이러한 관점의 영화가 만들어졌다면 영화 비평가들은 물론 일반인들로부터도 큰 비판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1960년대만 하더라도 이러한 제국주의적 시각이 통용되던 시기였다. 나는 이 영화를 3번 관람하였다. 첫 번째는 초등학교 5학년 무렵, 두 번째는 고등학교에 다닐 때, 그리고 세 번째는 50대가 넘어서였다.
초등학교 때 이 영화를 보았을 때는 공격해오는 줄루족에 맞서 위기를 맞고 있는 영국군의 상황에 가슴을 졸였고, 이들의 총탄에 쓰러지는 줄루족 병사들을 보고는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두 번째 고등학교 무렵 이 영화를 보았을 무렵에는 줄루 전쟁이라는 것이 어떤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영화란 사실까지는 몰랐지만, 그것이 아프리카를 침략한 제국주의 군대를 미화한 영화란 사실에 대해서는 이미 자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나는 줄루족의 편이 되어 줄루족을 응원하였고, 줄루족 병사들이 죽어갈 때는 같이 아픔을 느꼈다. 그러나 어쩌랴. 영화는 이미 줄루족의 패배가 결정되어 있었던 것, 안타까운 마음으로 영화를 관람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50대가 넘어서 이 영화를 관람하였을 때는 한편으로는 안타까웠지만, 비교적 덤덤하게 영화를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