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젊은 사람들은 잘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박정희 정권 시절 정부가 정부 홍보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영화라는 대중매체를 이용하는 것은 일상다반사였다. 경제개발의 성과를 널리 알리기 위하여 정부가 직접 제작에 나선 영화가 바로 팔도강산(八道江山) 시리즈이다. 일반적으로 정부 홍보 영화는 그다지 인기가 없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영화 <팔도강산>은 흥행면에서도 대히트를 쳤다. <팔도강산> 시리즈 가운데 가장 처음 개봉된 영화가 <팔도강산>인데, 이 영화가 기대 이상의 대히트를 치자, 계속 속편이 만들어져, 이 시리즈로 전부 7개의 영화가 제작되었고, 또 KBS에서는 TV 드라마로 만들어 방영하기도 하였다.
지금은 정부 행사에 연예인들을 초청하려면 일반적인 수준의 대가를 지불하여야 한다. 그리고 정부가 어떤 영화나 드라마, 행사에 참여를 요청하더라도 연예인들의 의사에 따라 참여 여부가 결정된다. 조건이 맞지 않으면 연예인들도 아무런 부담을 갖지 않고 거절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시절은 달랐다. 만약에 정부의 요청에 연예인들이 참여를 거절하였다가는 바로 정권에 찍여 연예인의 인생을 종칠 각오를 해야 하는 시절이었다. 그래서 정부에서 출연 요청이 오면 연예인들은 두말없이 참여를 하는 것이 당연하였다.
연예인들이 정부행사에 참여한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본인에게 불리한 것도 아니었다. 비록 개런티는 적었을지도 모르지만, 정부 시책에 적극 협력한 연예인으로 인정되어, 정부로부터 직간접의 여러 가지 편의를 받을 수 있었다. 영화 <팔도강산> 시리즈는 이러한 시대에 제작되었다. 영화 제작도 지금의 문화관광부에 해당하는 문화공보부가 직접 담당하였다. 정부 부처가 영화를 직접 제작한다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일로서, 과거 공산주의 국가들에서 독재정권의 정당성을 위해 정부가 직접 영화 등 대중매체에 간여하는 일을 연상시킨다.
이 덕택에 영화 <팔도강산>에는 그 당시의 톱스타들이 총출동한다. 그뿐만 아니라 당대에 이름을 날리던 가수들이 출연하여 각 지역별로 그 지방을 대표하는 노래를 부른다. 당시로서는 가히 초호화 출연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톱가수인 최희준이 부른 영화 주제가도 큰 히트를 쳤다.
여하튼 <팔도강산>이 어떠한 경위와 목적에서 제작되었건 1967년에 처음 제작된 <팔도강산>은 흥행에서 대성공을 하였다. 이러한 흥행 성공에 고무되어 속편이 계속 제작되었던 것이다. 필자는 7편의 <팔도강산> 가운데 <팔도강산>과 <속 팔도강산>, 그리고 <내일의 팔도강산>의 3편을 감상하였다.
<팔도강산> 시리즈의 첫 작품인 1967년에 제작된 <팔도강산> 시리즈 첫 작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울에서 한의원을 하고 있는 김희갑ㆍ황정순 부부는 1남 6녀를 두고 있다. 이 가운데 다섯 딸은 모두 지방 각지로 시집을 가서 살고 있다. 김희갑 부부는 자식들의 초대를 받아 전국 유람길에 오른다. 충청도, 전라도, 부산, 경상도, 강원도에 살고 있는 딸네 부부들은 어떤 딸은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어떤 딸은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사위들은 대부분 산업역군으로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시멘트 공장에서 일하는 사위, 전라도에서 간척사업을 위해 댐 건설의 현장감독을 하는 사위, 부산에서 무역업을 하는 사위, 비료공장에서 일을 하는 사위, 그리고 어부로서 배를 타고 고기를 잡는 사위 등등 모두가 하는 일은 다르지만, 모두 다 자기의 맡은 일을 열심히 하여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산업역군들이다.
김희갑 부부는 이러한 사위들의 직장을 찾아 우리 경제가 얼마나 발전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산업현장을 보여주며, 정부 홍보성 멘트가 김희갑의 입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지금 영화 관객들이 본다면 사지가 오글거리는 장면들이지만 그 당시는 그러한 내용들이 큰 거부감 없이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달되었다.
김희갑 부부는 딸네 집을 찾아 전국을 유람한 후 집으로 돌아온다. 집을 떠나기 전 막내딸이 데려온 사위 후보감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이던 김희갑 영감은 돌아온 후 그 사윗감을 마음에 들어 하며, 딸과의 결혼을 승낙한다. 그리고 김희갑의 환갑날 전국에서 모인 딸과 사위들은 성대한 회갑연을 마련한다. 그 자리에 딸들 가운데 가장 어렵게 살던 강원도의 신영균 부부는 그동안 어려운 가운데 한 푼 두 푼 저금한 돈으로 어선을 구입하였다는 반가운 소식을 가져온다.
김희갑 노인이 환갑이라면 지금의 나보다는 나이가 6살이나 아래이다. 그런데 겉모습이나 하는 행동은 나보다는 10살은 더 많아 보인다. 당시는 환갑이라면 완전히 노인 축에 끼였다. 여기서도 참 그동안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팔도강산>은 정부가 직접 제작한 만큼 당대의 톱스타들이 많이 출연하였다. 김희갑, 황정순 부부 외에 신용균, 박노식, 김진규, 김승호, 장동휘의 남자 스타들과 최은희, 고은아 등 인기 여배우들이 출연하였다. 그리고 가수 현인이 나와 <신라의 달밤>을 불렀고, 은방울 자매, 이은관 등 인기가수들이 나와 각 지역을 대표하는 노래들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