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농장을 지키려는 여인의 안타까운 운명
영화 <카리브해의 정사>(원제: Wide Sargasso Sea)는 제목만 보면 에로틱 무비로 보이지만, 자메이카에서 태어난 프랑스계 젊은 여자의 짧지만 안타까운 사랑과 삶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진 라이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서, 샬럿 브론테의 소설 “제인 에어”의 프리퀄 성격을 띠고 있다. 소설 “제인 에어”의 남자 주인공인 미스터 로체스터의 첫 번째 부인인 앙투아네트 코스웨이의 삶을 다루고 있는데, 1993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제작되었다.
이 영화의 원제목은 <넓은 사르가소 해>(Wide Sargasso Sea)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관객을 유인할 목적에서인지 에로틱 무비의 느낌이 드는 <카리브해의 정사>라고 바꾸었다. 원제목에 있는 사르가소 해에 대해서는 생소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어디에 있는 바다일까? 사르가소 해는 카리브해와 마찬가지로 대서양의 일부로서, 카리브해의 동쪽에 있는 인접한 바다이다. 사르가소 해의 서쪽 끝에는 유명한 “버뮤다 삼각해”가 위치하고 있다. 사르가소 해에는 수많은 해초가 자라고 있다고 한다.
1844년 자메이카의 어느 산속 농장. 프랑스인을 부모로 둔 소녀 앙투아네트는 엄마 앙클레트와 남동생과 함께 농장에 있는 큰 저택에서 살고 있다. 얼마 전 자메이카에서도 노예 해방이 되는 바람에 농장 경영에 큰 어려움이 닥쳤고, 앙투아네트의 아버지는 날로 어려워지는 농장 경영으로 인해 술로 나날을 보내다 사망하고 말았다.
노예 제도가 폐지된 이후에도 과거 농장의 노예였던 흑인들이 여전히 보수를 받고 농장 일을 하고 있었지만, 더 이상 그들은 주인에게 무조건 복종했던 노예가 아니었다. 그들은 앙투아네트의 가족 앞에서 들으란 듯이 “백인 돼지”, “쓰레기들”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이들 식구를 진심으로 도와주는 사람은 앙투아네트의 유모였던 크리스토핀뿐이었다. 다른 흑인들은 크리스토핀이 마법을 부린다고 두려워하고 있다. 그나마 흑인들이 앙투아네트 가족들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 것은 옆에서 크리스토핀이 지키고 있기 때문이었다.
앙클레트는 영국인 메이슨과 재혼하여 함께 농장에서 살게 된다. 앙클레트는 재혼 후에도 흑인들에게 위협을 느낀다. 이에 비해 양아버지인 메이슨은 흑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들이라면서 대놓고 흑인들을 무시하는 말을 하고 다닌다. 그러던 어느 날 메이슨은 흑인들 앞에서 그들이 일을 하지 않고 게으르다며 서인도에서 새 일꾼들을 데려와 모두 교체하겠다고 떠벌린다.
며칠이 지난 뒤 한밤중, 앙심을 품은 흑인들이 저택을 습격하여 불을 지른다. 잠이 깬 가족들은 황급히 빠져나왔지만, 앙투아네트의 남동생 피에르가 보이지 않는다. 놀란 앙클레트가 다시 집안으로 뛰어들어가 불에 타 죽은 피에르를 안고 나온다. 흑인들이 그들을 둘러싸고 위협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크리스토핀의 도움으로 가족들은 모두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더 이상 농장에서 살 수 없게 된 가족들은 바닷가로 거처를 옮겼다. 아들을 잃은 충격으로 앙클레트는 정신이 나갔다. 메이슨은 정신이 이상해진 아내에게 돌봐줄 사람만을 붙여주고는 영국으로 돌아가버렸다.
몇 년이 지났다. 앙투아네트는 수녀원에서 견습 수녀로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녀의 삼촌이 찾아왔다. 삼촌은 영국으로 간 양아버지 메이슨이 사망하였으며, 이에 따라 이곳의 재산은 모두 앙투아네트에게 돌아왔다고 하면서, 재산을 관리할 남자를 남편으로 맞아들이면 좋겠다고 한다. 삼촌은 며칠 뒤 영국에서 왔다는 에드워드 로체스터라는 젊은이와 함께 앙투아네트를 찾아와 결혼을 하라고 권고한다. 앙투아네트는 처음에는 에드워드가 도시 사람이라며 결혼을 거절했으나, 에드워드가 앙투아네트가 좋아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겠다는 말에 청혼을 받아들인다. 결혼을 한 뒤 앙투아네트는 숲속의 옛집에서 살고 싶다고 하여 두 사람은 다시 농장의 옛집으로 돌아온다.
옛집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꿈같은 신혼 생활을 보낸다. 함께 숲속을 산책하며, 폭포에서 수영도 하고, 밤마다 들리는 원주민들의 춤과 음악 소리를 들으며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렇지만 앙투아네트에게는 트라우마가 있다. 정신이 이상해진 엄마 앙클레트는 숲속의 외딴집에서 거의 갇혀 지내다시피 하다가 결국 사망하였다. 그녀가 제정신이 아닌 탓에 수많은 남자들이 그곳을 드나들었으며, 그녀에 대한 소문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 있었다. 앙투아네트가 가끔 엄마를 찾아가면, 그녀는 좋아하다가 갑자기 난폭한 행동을 보이기도 하였다.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중, 에드워드 앞으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그것은 앙투아네트를 모함하는 편지였다. 앙투아네트와 내 아버지는 같은 사람이며, 앙클레트는 이 남자 저 남자와 관계를 하다가 미쳐버려 남편이 그녀를 버리고 영국으로 돌아가버렸다는 것이다. 에드워드는 편지의 내용을 믿기 시작한다. 에드워드는 앙투아네트를 의심의 눈으로 쳐다보며, 그녀의 엄마가 어떻게 죽었느냐고 묻는다. 앙투아네트는 집에 불이 나서 타 죽었다고 대답한다.
에드워드와 앙투아네트 사이가 점점 멀어진다. 이때 매력적인 원주민 여자 아멜리가 에드워드에게 접근하여 그를 유혹한다. 아멜리는 앙투아네트를 노골적으로 조롱하고, 다른 원주민 여자들도 그녀에게 동조한다. 크리스토핀은 에드워드가 자신을 귀찮게 여기는 것 같다고 하면서 떠나버린다. 다니엘이라는 남자가 에드워드에게 만나자는 편지를 보내왔다. 그는 바로 지금까지 에드워드에게 익명의 편지를 보낸 자였다. 그는 에드워드를 만나 자신과 앙투아네트가 이복 남매라고 주장한다. 에드워드는 점점 더 앙투아네트를 의심한다. 앙투아네트는 크리스토핀을 찾아가 에드워드의 마음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지만, 크리스토핀은 남자란 잡으려 하면 더 멀리 떠난다고 대답한다.
에드워드는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앙투아네트와 가깝게 지내려고 노력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앙투아네트는 몰래 구해온 미약을 에드워드의 술잔에 탄다. 미약 때문인지 두 사람은 격렬한 사랑을 나눈다. 밤중에 목이 말라 잠이 깬 에드워드는 앙투아네트가 자신에게 미약을 먹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에드워드가 현관 밖으로 나가 아멜리에게 물을 가져오라고 소리친다. 물을 가져온 아멜리는 그 자리에서 에드워드를 유혹하여 관계를 가지게 되고, 잠이 깬 앙투아네트는 그 소리를 듣는다. 앙투아네트는 에드워드에게 강한 불신감을 갖게 된다. 다음 날 에드워드는 아멜리에게 돈을 주고, 아멜리는 바로 리우로 떠나겠다고 한다.
얼마 뒤 에드워드 앞으로 영국에서 동생이 죽었다는 편지가 왔다. 에드워드의 집안은 부유한 귀족이었지만, 그 재산은 모두 동생이 상속받았다. 동생이 죽은 지금 이제 그 재산은 모두 에드워드의 차지가 된다. 얼마 후 크리스토핀이 에드워드를 찾아온다. 크리스토핀은 에드워드에게 앙투아네트를 사랑해달라고 간청한다. 그렇지만 에드워드는 네가 참견할 일이 아니라면서 두 번 다시 이곳에 오지 말라고 한다. 크리스토핀은 에드워드에게 앙투아네트가 먹고 살 만큼의 재산만 남겨두고 이곳을 떠나라고 하지만, 에드워드는 상관 말라고 대답한다.
크리스토핀이 돌아간 후 에드워드는 앙투아네트에게 다시 옛날로 돌아가자고 하면서 싫다는 앙투아네트와 강제로 사랑을 나누려고 한다. 그러자 앙투아네트는 강하게 반항하면서 에드워드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영국으로 돌아가라고 소리친다.
에드워드는 앙투아네트를 데리고 영국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둘 사이는 이미 벌어질 대로 벌어졌다. 에드워드의 저택은 마치 성과 같은 거대한 건물이었다. 에드워드는 앙투아네트를 저택 안의 골방에 두고는 사람을 구해 그녀를 돌보도록 하였다. 결국 앙투아네트는 엄마 앙클레트와 마찬가지로 골방에서 자신을 돌봐주는 하녀만을 보면서 매일매일을 보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앙투아네트의 귀에 에드워드가 “제인 에어”라는 처녀와 곧 결혼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날 밤 앙투아네트는 성에 불을 지른다. 그리고 그녀는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춤을 춘다.
이 영화의 무대는 자메이카이다. 그런데 자메이카는 사르가소 해와 직접 닿아있지 않다. 그리고 영화의 이야기도 바다와는 관계없이 대부분 산속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왜 제목에 “사르가소 해”라는 말이 들어갔을까? 사르가소 해는 해초가 많아 배들이 항해를 아주 꺼리는 지역이라고 한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앙투아네트가 느끼는 고독감을 “사르가소 해”로 비유했다고 한다.
에드워드와 앙투아네트의 결혼 생활을 보고 있자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둘은 서로를 사랑한다. 그러면서도 가슴속에 들어온 약간의 의심과 불신이 커지면서 둘 사이를 걷잡을 수 없는 관계로 빠뜨려버린다. 두 사람은 모두 옛날의 행복했던 때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지만 그게 늘 어긋나 버린다. 에드워드가 다가서면 앙투아네트가 물러서고, 앙투아네트가 다가서면 에드워드가 물러나버린다. 그러면서 두 사람의 서로에 대한 불신은 점점 커진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마지막에 앙투아네트가 스스로 저택에 불을 지르고 춤을 추며 불타 죽는 비극으로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