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들려주는 과학이야기 Ep09
약 138억년 전 빅뱅이 시작되어 특이점이 갑자기 팽창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특이점이 팽창하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현재의 물리학은 빅뱅이 시작된 원인을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빅뱅 이론은 우주의 시작을 설명하는 가장 강력한 이론이지만, 빅뱅 '직전'의 상태나 '무엇이 빅뱅을 촉발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물리학의 두 가지 주요 이론인 일반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이 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한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일반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이 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빅뱅의 원인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일반 상대성 이론은 '시공간이라는 거대한 매트리스 위에서 질량(Mass)이 매트리스를 어떻게 휘게 만드는지'를 설명하는 거시 세계를 다루는 이론이다. 이에 비해 양자역학은 '아주 작은 입자(Particle)들이 어떻게 존재하고 행동하는지'를 설명하는 미시 세계에 대한 이론이다.
문제는 바로 빅뱅의 시작점이다. 빅뱅 직전의 우주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작았지만(미시 세계), 동시에 엄청난 질량과 밀도를 가졌다(거시 세계). 즉 빅뱅의 특이점은 무한히 작은 공간에 무한히 큰 질량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거시 세계의 전문가(일반 상대성 이론)와 미시 세계의 전문가(양자역학)가 모두 필요하는데, 아직은 두 이론은 서로 통합되지 못해 빅뱅의 원인을 설명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어쨌던 그 원인이야 무엇이든 빅뱅은 시작되었다. 그러면 빅뱅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빅뱅이 시작되면서 그 진화는 크게 복사지배시대, 물질 지배 시대, 암흑에너지 지배시대 의 3단계로 나눌 수 있다. 이를 더욱 세분하면 복사지배시대는 ① 프랑크 시대, ② 대통일시대, ③ 인플레이션 시대, ④ 전자기-약력 시대, ⑤ 쿼크 시대, ⑥ 강입자 시대, ⑦ 경입자 시대, ⑧ 핵합성 시대, 물질지배시대는 ⑨ 재결합 시대, ⑩ 암흑 시대, ⑪ 구조형성 시대, 그리고 암흑에너지시대로 구분된다.
▪ 플랑크 시대 (빅뱅 시작 ~ 10⁻⁴³초)
플랑크 시대에는 네 가지 기본 힘(강력, 전자기력, 약력, 중력)이 “하나의 초힘”(Superforce)으로 통합되어 있었다고 예측된다. 현재의 물리학 이론으로는 플랑크 시대를 설명할 수 없다. 미지의 상태로서 플랑크 시대가 끝날 무렵 우주의 크기는 지름이 10의 −35승 미터 정도였다고 한다. 이를 “플랑크 길이”라고 한다. 밀도와 온도는 무한대에 가까웠다. 이 시기에는 시공간(Spacetime) 자체도 우리가 아는 매끄러운 형태가 아니라, 거품처럼 끓어오르는 불안정한 상태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참고: “시공간이 거품처럼 끓어오르는 상태”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우리가 멀리서 보면 바다 표면은 매끄럽고 평평해 보이는데, 이것이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거대한 스케일의 시공간이다. 하지만 이 바다 표면을 아주 가까이에서 보면, 수많은 물 분자들이 끊임없이 위아래로 움직이고 충돌하며 작은 거품들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플랑크 시대의 시공간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플랑크 시대의 시공간의 요동”이란 우주의 에너지 밀도가 너무 높아서 시공간 자체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끊임없이 요동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 대통일 시대 (10⁻⁴³초 ~ 10⁻³⁶초)
우주가 팽창하고 식으면서, 강력, 약력, 전자기력, 중력 등 네 가지 기본 힘 중 중력이 다른 세 힘으로부터 분리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나머지 강력, 약력, 전자기력이 하나의 '대통일력'으로 존재했다고 추정된다. 우주는 플랑크 시대보다는 많이 커졌지만, 여전히 원자보다도 더 작았다.
▪ 인플레이션 시대 (10⁻³⁶초 ~ 10⁻³²초)
급팽창의 시작: 우주가 극히 짧은 순간 동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는 시기이다. 이 이론은 그동안 빅뱅 이론에서 해결하지 못한 몇가지 난제들을 해결하였다고 한다. 인플레이션 시대는 빅뱅 이론을 보완하고 현대 우주론을 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우주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다. 인플레이션 시대 말기에는 우주의 크기가 자몽 정도로 커졌다.
▪전자기-약력 시대(10⁻³²초 ~ 10⁻12초)
우주가 빅뱅 직후 극도로 뜨거웠을 때을 말하는데, 이 시기에는 우리가 오늘날 별개의 힘으로 알고 있는 전자기력과 약력이 하나의 전자-약력(electroweak)이라는 힘으로 통합되어 있었다. 이 시기에는 쿼크, 렙톤, 보손 같은 기본 입자들이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하였다. 우주가 팽창하고 온도가 계속 낮아지면서, 빅뱅 후 약 10-12초가 되었을 때 우주의 온도가 섭씨 약 1015 아래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전자-약력 힘이 전자기력과 약력으로 분리되었다. 우주의 크기는 수십 미터에서 수십 킬로미터 정도로 커졌다.
▪ 쿼크 시대 (10⁻¹²초 ~ 10⁻⁶초)
우주가 계속 식으면서 쿼크, 렙톤(전자, 중성미자), 광자 등 기본적인 입자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상태였습니다. 물질과 반물질이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하는 과정에서, 아주 미세한 양의 물질이 반물질보다 더 많이 남아 현재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의 기초가 되었다. 전기약력이 전자기력과 약력으로 분리되었다. 우주의 온도가 섭씨 10조~1조 정도로 까지 낮아졌다. 온도가 충분히 낮아지자 쿼크들은 더 이상 자유롭게 돌아다니지 못하고, 강력에 의해 서로 묶이기 시작했다. 우주의 크기에 대한 정확한 추정치는 없지만 이 시대 말기에는 수백미터에서 수십 킬로미터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 강입자 시대 (10⁻⁶초 ~ 1초)
우주의 온도가 섭씨 1조도 이하로 떨어지면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던 쿼크들이 강력에 의해 묶여 ‘강입자’(强粒子, Hadron)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양성자(proton)와 중성자(neutron)가 이 시기에 탄생했다. 우주의 크기에 대한 추정치는 대략 태양계 정도의 크기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경입자 시대 (1초 ~ 3분)
우주가 강입자 시대를 지나 계속 팽창하고 냉각되면서 시작된 시기이다. '경입자'는 '가벼운 입자'라는 뜻으로, 이 시기에는 전자, 뮤온, 중성미자와 같은 가벼운 입자들이 우주를 지배했다. 우주의 온도는 섭씨 약 100억도 이하로 떨어졌다. 이 시대 말기 우주의 크기는 수천 광년에 달하는 정도로 커졌다고 추정된다.
▪ 핵 합성 시대 (3분 ~ 20분)
우주가 섭씨 약 10억 K 정도로 식으면서, 양성자와 중성자가 결합하여 수소, 헬륨, 리튬과 같은 최초의 가벼운 원자핵이 형성되었다. 이 시대는 우주가 계속 팽창하고 냉각되면서 끝이 났다. 약 20분이 지나자 온도가 원자핵이 결합하기에는 너무 낮아져, 더 이상 핵융합 반응이 일어날 수 없었다. 핵합성 시대를 거치며 우주의 원소 비율이 결정되었다. 현재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 중 약 75%가 수소이고, 25%가 헬륨인 것은 바로 이 핵합성 시대에 정해진 것이다. 우주의 크기는 수천 광년을 넘어섰을 것으로 추정된다.
▪ 재결합 시대 (20분 ~ 38만 년)
이 시대는 우주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다. 우주의 온도가 섭씨 약 3000도까지 식었다.우주를 떠돌던 양성자, 헬륨 핵, 전자 등이 결합하여 최초의 ‘중성 원자’(수소 원자, 헬륨 원자)를 형성했다. 전자가 원자핵에 포획되면서, 빛을 산란시킬 자유 전자가 사라지면서 빛이 비로소 우주 공간을 자유롭게 퍼져나갈 수 있게 되었고, 우주는 투명해졌다. 우주배경복사(CMB)는 바로 이 때 생겨난 최초의 빛이다. 재결합 시대의 말기 우주의 크기는 약 4,200만 광년으로 추정된다.
▪ 암흑 시대 (38만년 ~ 1.5 혹은 8억년)
우주 온도가 충분히 식으면서, 자유롭게 떠돌던 전자가 원자핵과 결합하여 중성 원자를 형성했다. 이로 인해 빛은 자유롭게 우주 공간을 여행할 수 있게 되었지만, 우주는 더 이상 빛을 낼 수 있는 뜨거운 플라즈마 상태가 아니게 되었다. 이 결과 우주는 차가운 중성 기체로 가득 차, 빛이 사라진 어두운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암흑 시대는 최초의 별과 은하가 탄생하면서 끝이 났다. 암흑시대 말기에는 우주가 약 수 억 광년 정도로 커졌다.
▪ 구조형성시대 (빅뱅 후 약 1.5억 년 혹은 2억 년 ~ 50억년 전)
구조형성시대의 초기단계는 이온화 시대라고도 한다. 이 시기에 암흑 시대 동안 어둠 속에 있던 우주는 최초의 별과 은하가 탄생하면서 다시 밝아졌다. 이들이 내뿜는 강력한 자외선은 암흑 시대를 채웠던 중성 가스를 다시 이온화시켰고, 이로 인해 우주는 다시 투명해졌다. 빅뱅후 10억년 정도가 지나서 우주의 크기는 약 75광년 정도로 추정된다. 이 시기를 지나면 우주의 거대한 구조들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진다. 이 시대를 통해 우주는 우리가 현재 관측하는 은하, 은하단, 그리고 거대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말기에는 우주가 수백억 광년으로 커졌다.
▪ 암흑 에너지 지배 시대 (50억년 전 ~현재)
우주의 팽창 속도가 중력의 영향을 이기고 가속화되기 시작한 시기다. 암흑 에너지가 우주를 밀어내면서, 중력만으로는 거대한 규모의 새로운 구조를 형성하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빅뱅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우주는 물질과 암흑 물질의 중력 때문에 팽창 속도가 점차 느려지고 있었다. 마치 위로 던진 공이 중력 때문에 속도가 느려지는 것과 같다. 하지만 우주가 팽창하면서 물질과 복사의 밀도는 점점 낮아졌다. 반면, 암흑 에너지의 밀도는 일정하게 유지된다. 약 98억 년 전, 암흑 에너지의 밀도가 물질의 밀도보다 높아지면서, 암흑 에너지가 우주 팽창을 주도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우주는 가속 팽창을 시작했다. 암흑 에너지 지배시대인 현재의 관측가능한 우주의 크기는 930억 광년이다.
이상과 같이 빅뱅 이후 우주의 진화는 12개 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런데 강입자 시대까지의 앞의 6개 시대는 모두 합해서 1초 안에 끝났다. 이후의 시대는 시대가 지날수록 시간 구간이 확대되고 있다.
그러면 앞 부분의 시대 구분은 얼마나 시간적으로 얼마나 짧은 기간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계에서 가장 속도가 빠른 것은 빛으로서, 1초에 30만 킬로미터를 진행한다. 만약 빅뱅과 동시에 빛을 발사하였다고 가정하자. 각 시대의 말기에 빛은 다음과 같은 정도의 거리를 나아갔다.
- 플랑크 시대 말기: 약 3×10-35 미터(플랑크 길이라 하며, 물리학에서 가장 짧은 거리 의미)
- 대통일 시대 말기: 약 3×10−28 미터
- 급팽창 시대 말기: 약 3×10−24미터
- 전자기-약력 시대 말기: 약 3밀리미터
- 쿼크 시대 말기: 약 300 m
- 경입자 시대 말기: 약 30만 km
참으로 “시대”라 부르기에는 민망할 정도의 짧은 기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