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들려주는 과학이야기
앞에서는 빅뱅과 그 진화 과정에 대해 설명하였다. 그런데 그 설명을 보고 있자면 다른 수많은 의문이 떠오른다. 여기서는 빅뱅의 진화 과정을 둘러싸고 우리가 당연히 품게 되는 몇 가지 의문에 대해 검토해 보도록 하자.
앞에서 우리는 138억 년에 걸친 우주의 진화 과정을 12개의 시대로 구분했을 때, 앞의 6개 시대는 모두 합해 1초 안에 종료되었다. 특히 쿼크 시대까지의 4개 시대는 현대의 과학으로는 측정조차 할 수 없는 짧은 시간에 지나가 버렸다. 정말 그렇게 짧은 시간에 전체 우주의 상태가 완전히 바뀌는, 상상을 초월하는 대변화가 진행되었을까?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시간’이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시간은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중력(질량)과 속도는 시간의 진행에 영향을 미친다. 즉, 중력이 클수록, 속도가 빠를수록 시간은 느려진다. 이는 실제 관측에 의해서도 입증되는 현상이다.
예를 들면 아주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가 있다고 할 때, 밖에서 그 물체를 관찰하는 사람에게는 1시간으로 측정되지만, 그 안에서 시간을 측정할 경우 속도에 따라 30분이 될 수도, 10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중력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중력(질량)이 무지무지하게 큰 별을 관찰하고 있다고 한다면, 우리에게는 1시간이라는 시간이 그 별 안에서는 1분으로도, 1초로도 측정될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은 고유 시간(Proper Time)과 좌표 시간(Coordinate Time)으로 구분할 수 있다. 좌표 시간이란 ‘관측 시간’이라고도 하는데, “특정 좌표계에서 측정하는 시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우리가 느끼는 시간이란 바로 이 좌표 시간이다. 이에 비하여 고유 시간은 ‘실제 시간’이라고도 하는데, 움직이는 물체나 특정 질량 속에서 측정한 시간이다.
우리가 SF 영화에서 이러한 장면을 종종 만날 수 있다. 예를 들면 1970년대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 <혹성탈출>을 보면 몇 년의 우주여행 끝에 지구로 돌아오니, 지구는 이미 수백 년이 흘러 인간은 거의 멸종 상태에 이르렀다는 설정이 나온다. 이러한 현상은 영화에서 억지로 만들어 낸 가공의 설정이 아니라, 우주선의 속도가 아주 빨랐을 경우 현실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사건이다. 물론 인간이 그 정도로 빠른 우주선을 만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말이다.
빅뱅이 138억 년 전에 이루어졌다고 할 때 이는 좌표 시간, 즉 관측 시간을 의미한다. 그런데 빅뱅 초기에는 우주의 질량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컸다. 그래서 실제 시간은 훨씬 느리게 진행되었다. 만약 빅뱅 이후 그 우주 속에서 누군가가 시간을 측정할 수 있었다면, 빅뱅은 관측 시간에 비해 훨씬 느린 시간 동안 진행되었을 것이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빅뱅 이후 우주의 실제 진화 속도는 138억 년보다 훨씬 짧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1초에 30만 킬로미터를 가는 빛의 속도는 우리가 “절대 속도”라고 이해하고 있다. 이는 빛보다 더 빠른 속도는 있을 수 없으며, 또 빛의 속도는 불변이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앞에서 빅뱅은 138억 년 전에 한 점에서 시작되어 팽창을 계속한 결과, 현재 관측 가능한 우주의 크기는 930억 광년에 이르렀다고 한다. 우주가 빛과 같은 속도로 팽창한다고 하더라도 지난 138억 년 동안 우주는 사방으로 팽창할 테니 그 지름이 276억 광년에 그쳐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관측 가능한 우주의 지름이 930억 광년이 될 수 있는가? 이는 우주의 팽창 속도가 빛보다 빠르지 않는 한 성립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빛보다 빠른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이해해 왔다. 그동안 우리가 배워 왔던 것은 잘못된 것이었나? 우주의 팽창 속도가 빛의 속도보다 빠르지 않는 한 우주의 지름이 930억 광년이나 될 수는 없다.
이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한마디로 우주의 팽창 속도는 빛의 속도보다 빠를 수 있다. 가까운 두 점 사이의 팽창 속도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두 점 사이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팽창 속도는 급속히 커진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 고무줄의 예를 들어 생각해보자. 1미터짜리 고무줄을 양쪽으로 당겨 2미터로 만든다고 하자. 거리가 1센티미터인 두 점 사이의 거리는 2센티미터가 된다. 그렇지만 고무줄 양쪽 끝 사이의 거리는 1미터였다가 2미터로 늘어난다. 우주 팽창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우주가 같은 비율로 팽창할 경우 가까운 별 사이의 거리는 조금 늘어나지만, 멀리 있는 별 사이의 거리는 같은 시간에 훨씬 더 길게 늘어난다.
이렇게 되다 보니 아주 먼 두 점 사이의 거리는 빛보다도 빠른 속도로 팽창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는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 만약 우주의 A, B 두 점 사이의 거리가 빛보다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난다면 A에서 출발한 빛은 영원히 B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 아닌가? 즉 B에서는 영원히 A를 관찰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그렇다. 만약 A, B 두 점 사이의 공간의 팽창 속도가 빛보다 빠르다면 우리는 A에 있는 우리가 영원히 B를 관찰할 수 없다.
여기서 “관측 가능한 우주”(Observable Universe)라는 개념이 나온다. 앞에서 우리는 빅뱅 이후 우주의 진화에 따른 우주의 크기를 살펴보았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 지름이 930억 광년에 이르고 있다고 하였다. 이때의 우주의 크기는 “관측 가능한 우주”를 의미한다. 실제 우주는 이것보다 훨씬 더 클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우리는 관찰 가능한 우주 이상을 현실적으로 관찰할 수 없기 때문에 실제 우주, 즉 “우주 전체”(Entire Universe)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가 없다.
앞에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우주는 관측 가능한 우주이며, 이는 실제 우주 전체에 비해서는 현저히 작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실제의 전체 우주는 관측 가능한 우주보다 얼마나 더 크며, 또 이를 넘어서 과연 우주는 유한한가, 무한한가?
이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지금까지 골치를 썩여 온 문제였다. 우주가 유한한가, 무한한가의 여부는 우주 공간의 “곡률”에 달려 있다. 우주 공간의 곡률이란 “우주가 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즉 공간이 평탄한가(곡률=0), 볼록한가(곡률>0), 오목한가(곡률<0)에 따라 우주가 유한한지 무한한지 결정된다. 우주 공간이 볼록하다면 결국 우주는 거대한 공 형태가 된다. 이럴 경우 우주의 크기는 유한하며, 이를 닫힌 우주(Closed Universe)라고 한다. 우주 공간이 오목하다면 우주는 마치 말 안장과 같은 형태를 지니며, 이 경우 우주는 무한하다. 평탄한 우주의 경우도 역시 우주는 무한에 가깝다.
우주 공간이 볼록하다느니, 오목하다느니 하는 표현은 3차원 세계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이해가 쉽지 않다. 간단한 예를 들어 설명하겠다. 우리는 학교에서 기하학을 배웠다. 우리가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기하학은 “유클리드 기하학”이다. 유클리드 기하학은 평면 공간을 전제로 하고 있다.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이다”라는 명제는 평면 공간인 유클리드 기하학에서만 진실이다. 만약 닫힌 공간(볼록한 공간)이라면 삼각형 내각의 합은 180도보다 크게 되며, 반대로 열린 공간(오목한 공간)의 경우에는 삼각형 내각의 합은 180도보다 작아지게 된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평행하는 두 선은 서로 만나지 않으며, 두 선 사이의 거리는 일정하다. 그렇지만 볼록한 공간에서는 평행하는 두 선은 거리가 좁아지며 결국은 만나게 된다. 반대로 오목한 공간에서는 평행하는 두 선은 만나지 않고 두 선 사이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게 된다.
이렇게 공간의 형태, 즉 곡률에 따라 우주의 유한, 무한성이 결정되기 때문에 많은 학자들이 우주 공간의 곡률을 측정하려고 하였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로는 우주 공간이 곡률=0인 평면 공간, 즉 유클리드 공간에 아주 가깝다는 것이 주류인 것 같다. 그래서 이러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실제의 전체 우주의 유·무한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관측 가능한 우주에 비해 최소한 250배 이상 클 것이라는 추정이 설득력을 갖는 것 같다.
그러면 우주의 팽창 속도가 빛의 속도보다 더 빠른데, 이는 물리 법칙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물리 법칙에 어긋나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에서는 “정보(에너지)가 공간 속에서 이동할 수 있는 최대 속도는 빛의 속도(c)를 넘을 수 없다”라고 한다. 이는 “어떤 질량을 가진 물체도 시공간을 통해 움직일 때 빛의 속도에 도달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유의점은 이 표현은 “공간 속에서(through space)” 또는 “국소적으로(locally)” 움직이는 것에 대한 설명이라는 것이다. 우주 팽창은 물체가 공간 속에서 움직이는 것과는 다르다. 우주의 팽창은 “공간 그 자체가 늘어나는 현상”이다. 마치 풍선에 점을 찍고 풍선을 불면, 점들은 풍선 표면 위에서 움직이지 않지만 점들 사이의 거리는 멀어지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이를 팽창하는 우주에 적용하면 은하는 각각의 은하단 내에서는 중력에 의해 묶여 거의 움직이지 않지만, 은하단 사이의 공간이 늘어나면서 은하단들이 서로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공간의 팽창 속도는 빛의 속도 제약을 받지 않는다. 특수 상대성 이론은 국소적인 공간에서 물체가 움직이는 것에 대한 제약이지, 공간 자체의 팽창에 대한 제약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멀리 있는 은하일수록 더 빠르게 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