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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 우주의 진화(6): 무한 우주론과 빅뱅이론

by 이재형

11.1. 무한 우주론과 빅뱅 이론의 조화


앞에서 현 단계에서는 우주가 유한한지 무한한지 알지 못한다고 설명하였다. 그렇지만 우주가 무한할 가능성도 상당히 크다고 하였다. 그런데 빅뱅 이론에서는 빅뱅 초기에 아주 작은 특이점에서 우주가 팽창하기 시작하였으며, 우주 진화의 초기 단계에서는 우주의 크기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는 우주가 유한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무한 우주론과는 충돌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 우주의 크기가 무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빅뱅 이론과 충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현대 우주론에서 빅뱅 이론과 잘 조화되는 개념이다. 일반인들이 종종 빅뱅 이론으로부터 “우주의 유한성”을 연상하는 것은 ‘빅뱅’이라는 현상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람들은 빅뱅을 “우주 공간의 특정 지점에서 물질이 폭발하여 외부로 퍼져나가는 현상”으로 상상하곤 한다. 빅뱅 이론이 설명하는 것은 그런 종류의 폭발이 아니다. 빅뱅 이론은 "우주 전체의 시공간이 모든 곳에서 동시에 팽창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빅뱅은 어떤 특정한 '점'에서 일어난 폭발이 아니며, 특정한 중심이 없이 모든 시공간에서 팽창이 동시에 나타난 현상이다. 이런 점에서는 우주의 모든 곳이 팽창의 중심이라고 볼 수 있다.

빅뱅과 무한우주

우주는 빅뱅이 시작될 때부터 이미 무한한 크기였을 가능성도 있다. 언뜻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것이 바로 우주론에서 논의되는 중요한 가능성 중 하나이다. 무한한 공간도 팽창할 수 있다. 무한한 공간이 팽창한다면, 여전히 무한하지만 각 지점 사이의 거리는 더욱 멀어지게 된다. 이는 공간이 특정한 '끝'이나 '경계'가 존재해야만 팽창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허물어뜨린다.


11.2. 우주의 무한성 추정 방법으로서의 우주 배경 복사


현대 우주론의 핵심인 ‘인플레이션 이론’(Inflation Theory)에서는 우주가 빅뱅 직후 극히 짧은 시간 동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팽창했다고 설명한다. 이 인플레이션은 우주를 너무나 거대하게 만들어서, 우리가 관측 가능한 우주는 전체 우주의 극히 일부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만약 인플레이션이 충분히 강력했다면, 우리 우주가 평탄하고 무한하게 보일 정도의 크기를 가질 수 있다.


현재까지 과학자들이 우주 배경 복사(CMB)를 관측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 우주가 매우 평탄하다고 한다. 평탄한 우주는 이론적으로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 만약 우주가 유한하다면, 그것은 양의 곡률을 가진 볼록 형태여야 하는데, 이는 관측 결과와 일치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주의 크기가 무한할 가능성은 빅뱅 이론과 충돌하지 않으며, 오히려 현재 우주론의 중요한 해석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빅뱅은 무한한 공간이 동시에 팽창하기 시작한 사건일 수 있으며, 우리가 관측 가능한 우주는 그 무한한 전체의 작은 부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주 배경복사의 출발

우주의 크기와 모습을 추정하는 데 있어서 “우주 배경 복사”(CMB)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데이터가 된다. 우주 배경 복사에 대해서는 이전에 한 번 설명한 바 있으나, 아주 중요한 개념이므로 다시 한번 설명하고자 한다.

우주 진화의 12대 시대 구분 중 9번째 시대에 해당하는 재결합 시대(빅뱅 후 38만 년)에 이르러 빛이 비로소 자유롭게 우주 공간으로 방출되었다. 이때 우리가 현재 볼 수 있는 그 빛이 출발한 지점은 당시에는 지구로부터 약 4,200만 광년 떨어진 곳이었다. 그리고 그 빛이 138억 년 동안 우리에게 오는 동안 우주는 계속 팽창했고, 현재 그 지점은 우리로부터 465억 광년 떨어진 곳에 있다. 그때 출발하여 우리에게 도달한 빛을 바로 “우주 배경 복사”라 한다. 당시의 관측 가능 우주의 크기는 4,200만 광년이었지만, 실제의 전체 우주의 크기는 그보다 훨씬 더 컸을 수도 있다.


11.3. 우주의 모습은 구형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관측 가능한 우주는 우리를 중심으로 한 '구형'이지만, 우주 전체의 '실제 모양'은 구형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가 우주를 관측할 때, 빛의 속도가 유한하고 우주의 나이가 유한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로부터 출발하여 138억 년 전 우주가 탄생한 시점부터 우리에게 도달한 빛의 거리의 범위 내에 대해서만 관측할 수 있다. 이 '빛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먼 지점'들은 우리를 중심으로 한 구의 형태를 이루게 된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우리가 수평선을 볼 때, 수평선의 모습은 우리의 위치를 중심으로 한 원형의 형태를 이루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런데 전체 우주의 모습은 우리가 생각하는 3차원 공간을 넘어서는 개념이며, 주로 우주의 “곡률(Curvature)”과 “위상수학(Topology)”으로 설명된다. 곡률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설명한 바 있으므로 여기서는 더 이상의 언급을 생략하고자 한다. 위상수학으로 우주의 모습을 설명한다는 것은 우주의 전체적인 연결성을 고려한다는 의미이다. 평탄한 우주라고 해서 반드시 무한한 것은 아니다.

관측가능한 우주

설명이 아주 어렵기 때문에 쉬운 예를 들도록 하겠다. PC 보급 초기에 ‘팩맨’(Pac-Man)이라는 컴퓨터 게임이 인기를 얻었다. 동그란 입 모양의 캐릭터가 미로를 따라가면서 풍선을 잡아먹는 게임이다. 이 게임을 하다 보면 화면의 오른쪽으로 사라진 캐릭터가 왼쪽에서 나타난다. 즉 평면의 양 끝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공간의 연결을 설명하는 것이 위상수학이다.


예를 들어, 마치 2차원 공간에서 게임 화면이 끝에서 끝으로 연결되는 것처럼, 우주도 끝이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 우주는 유한하면서도 경계가 없는 형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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