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북전쟁기를 무대로 시대에 맞서 싸우는 여자의 삶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는 마거릿 미첼의 1936년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1939년에 제작된 미국 시대극 로맨스 영화이다. 배경은 미국 남북 전쟁과 재건 시대의 조지아주 남부이며, 거대 농장주의 딸로 태어난 강인한 여성 스칼렛 오하라(비비언 리 분)의 인생과 사랑을 그리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사촌 멜라니와 결혼한 애슐리를 사랑하지만, 항상 자신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바쳐온 레트 버틀러(클라크 케이블 분)가 자신의 진정한 사랑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영화를 제작하기까지는 많은 난관이 있었다. 감독인 셀즈닉은 레트 버틀러 역에 클라크 케이블을 기용하기 위해 2년간 촬영을 미뤘다고 한다. 여주인공 스칼렛 역으로는 무려 1,400명의 무명 여배우들을 인터뷰한 끝에 비비언 리로 낙점되었다. 비비언 리는 이 영화를 통해 일약 톱스타의 반열에 올랐으며, 이듬해에 제작된 <애수>(哀愁, Waterloo Bridge)를 통해 세계적인 여배우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하였다. 비비언 리는 20세기를 빛낸 배우 중 한 사람으로서 평가되고 있다. 영화 《애수》에 대해서는 다음의 링크를 참고하기 바란다. 이 링크에서는 그녀가 얼마나 위대한 여배우였는지 잘 설명하고 있다.
https://blog.naver.com/weekend_farmer/222131495731
이 영화는 개봉되자마자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3시간 58분이라는 긴 상영 시간 때문에 비판도 다소 있었다. 1940년 제1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3개 부문 후보에 올라 10개 부문 수상(8개 본상, 2개 명예상)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는데, 이는 그때까지 최다 수상 기록이었다. 특히 해티 맥대니얼은 흑인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 영화는 개봉하면서 엄청난 흥행을 기록하며 25년간 최고 흥행작 자리를 지켰고, 물가 상승률을 반영한다면 지금도 역사상 최고 흥행 영화로 평가되고 있다. 영화는 수차례 재개봉되어 20세기 문화를 대표하는 작품의 하나로 평가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노예제를 미화하고 남부 연합을 낭만화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1989년에는 미국 국립영화등록부에 보존 가치가 있는 영화 25편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영화 팬들 사이에는 “영원한 고전”의 하나로서 사랑받고 있다.
영화 제목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남북 전쟁으로 인한 격변으로 그동안의 사회 질서를 비롯한 모든 것이 일거에 바람처럼 날아가 버리고 새 시대가 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1861년, 미국 남북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16세의 스칼렛 오하라(비비언 리 분)는 조지아의 대농장 ‘타라’에서 부모님과 두 여동생, 그리고 흑인 노예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스칼렛은 이웃 농장의 청년 애슐리 윌크스를 사랑하고 있지만, 그는 스칼렛의 사촌인 멜라니 해밀턴과 약혼한 사실을 알게 된다.
다음 날 스칼렛 가족은 애슐리 일가의 바비큐 파티에 초대받는다. 그 파티는 애슐리와 멜라니의 약혼을 발표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파티에 앞서 애슐리를 만난 스칼렛은 그에게 자신의 사랑을 털어놓으며 자신과 결혼해달라고 애원한다. 그렇지만 애슐리는 자신은 멜라니를 사랑하고 있다면서 그녀의 구애를 거절한다. 그날 파티에서 스칼렛은 능글맞은 성격의 레트 버틀러를 만나지만, 모든 관심이 애슐리에게 쏠린 그녀에게는 그가 마음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파티에서 많은 청년들이 아름다운 스칼렛 주위에 몰려들어 사랑을 고백한다. 그중에는 멜라니의 오빠 찰스도 있었다. 찰스는 스칼렛의 아름다움에 질려 더듬더듬 그녀에게 결혼 신청을 하는데, 뜻밖에도 그녀는 선선히 그 청혼을 받아들인다. 애슐리에게 차인 복수로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그냥 청혼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얼마 후 스칼렛도 찰스와 결혼한다. 정말 스칼렛으로서는 홧김에 한 결혼이었다.
전쟁의 기운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청년들은 모여서 빨리 전쟁이 시작되어 북쪽을 무찔러 버려야 한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다. 그들은 북군 정도야 상대도 되지 않는다면서 자신들의 용기를 뽐내고 있다. 레트가 제조업 시설 등을 생각할 때 북군이 만만하지 않다고 하지만, 청년들은 오히려 자신들을 모욕하느냐면서 화를 버럭 낸다.
그러는 가운데 링컨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전쟁을 선포하였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남부 청년들은 일제히 전쟁터로 달려간다. 애슐리와 찰스도 전장으로 달려갔다. 얼마 뒤 스칼렛 앞으로 찰스가 전쟁터에서 병으로 사망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온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원래부터 홧김에 한 결혼이었기 때문에 스칼렛에게는 남편의 죽음이 조금도 슬프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과부로서 상복을 입은 몸으로 파티에 나갈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 불편하였다.
그러던 중 레트가 스칼렛을 찾아온다. 그는 스칼렛에게 마을에서 열리는 자선 무도회에 참석하자고 권유한다. 스칼렛은 무도회에 가고 싶었지만 상복을 입은 몸으로 무도회에 가자니 사람들의 시선이 꺼림칙했다. 레트는 망설이는 스칼렛을 끌다시피하여 무도회에 데리고 간다. 검은 상복 차림으로 춤추는 스칼렛을 보고 여자들은 수군거린다. 레트는 이즈음 남부군에게 군자재를 납품하는 일을 하면서 큰돈을 벌고 있었다.
전쟁은 당초 남부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낭만적인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청년들이 부상당하거나 죽었다. 농토는 황폐해졌고, 사람들의 경제적 기반은 무너졌다. 스칼렛이 머물고 있는 애틀랜타가 북군에 포위당하였다. 이때 멜라니는 만삭 상태였다. 스칼렛은 만삭의 멜라니를 보호하면서 자신의 옛집인 ‘타라’로 돌아온다. 그렇지만 타라도 전쟁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집은 허물어져 내려앉기 일보 직전이며, 농토는 황폐해졌다. 어머니는 장티푸스로 사망하였고 아버지는 연이은 충격으로 정신적으로 무너진 상태이다.
농장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멜라니가 진통을 시작한다. 의사를 부르려 했지만, 전쟁 통이라 불가능하다. 스칼렛은 스스로 멜라니의 아기를 받아내고 정성껏 그녀를 돌본다. 멜라니도 얼마 후 건강을 회복하였다. 스칼렛은 농장의 여주인으로서 황폐해진 농장을 다시 일으키려고 한다. 그녀는 여동생들과 멜라니와 함께 스스로 농장일을 하면서 농장의 재건에 힘쓴다.
전쟁은 남군의 패배로 끝나고, 얼마 후 애슐리가 돌아온다. 애슐리에 대한 스칼렛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 스칼렛은 애슐리에게 함께 도망치자고 애원하지만, 그는 멜라니를 떠날 수 없다면서 그녀의 애원을 거절한다. 얼마 후 스칼렛의 아버지는 자신의 땅을 팔라고 하는 북부 사업가를 쫓다가 말에서 떨어져 죽는다.
고난은 또다시 찾아온다. 이 시대 남부 각 주는 전쟁의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세금을 크게 올렸다. 스칼렛의 농장에도 300달러라는 무거운 세금이 부과되었다. 300달러라면 당시 건강한 남자의 1년치 임금이었고, 징집을 당할 경우 군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큰 돈이었다. 스칼렛으로서는 도저히 그 돈을 감당할 수 없었다. 돈을 내지 않으면 농장을 압류당한다.
스칼렛은 돈을 구하기 위해 한껏 차려입고 레트를 찾아간다. 그러나 레트는 큰 부자이지만 돈이 다른 곳에 묶여 있어 현재 가진 돈은 없다. 할 수 없이 그녀는 여동생 수엘렌의 약혼자로서 현재는 상점을 경영하고 있는 프랭크 케네디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가 많은 돈을 저축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를 유혹하여 결혼한다. 수엘렌은 언니가 자신의 약혼자를 빼앗아 갔다고 울며불며 화를 낸다. 스칼렛은 프랭크의 돈으로 세금을 내고 농장을 지킬 수 있었다.
스칼렛은 프랭크와 함께 제재소를 시작한다. 사업은 나날이 번창해갔다. 그러나 프랭크와의 결혼은 어차피 돈을 노린 결혼이었다. 그녀에게 프랭크에 대한 사랑이란 전혀 없다. 그녀는 걸핏하면 프랭크에게 화를 낸다. 프랭크도 저렇게 화를 잘 내는 여자는 처음 봤다고 하면서 고개를 내젓는다. 그러던 어느 날 스칼렛은 빈민촌에서 괴한에게 습격당하지만, 레트의 도움으로 겨우 위기를 벗어난다. 그날 밤 애슐리와 프랭크는 복수를 하기 위해 나갔다가, 괴한들은 죽이지만 애슐리는 큰 부상을 당하고, 프랭크는 죽는다. 그렇지만 원래 사랑 없이 한 결혼이라 스칼렛은 남편의 죽음이 조금도 슬프지 않다. 장례식 후 레트가 스칼렛에게 청혼하고, 그녀는 이를 받아들인다.
두 사람은 딸을 낳고 살지만, 스칼렛은 여전히 애슐리에 대한 감정을 버리지 못한다. 레트는 변함없이 그녀에 대해 사랑을 표현하지만, 스칼렛은 여전히 차갑다. 그러던 어느 날, 애슐리의 생일 파티에 참석한 스칼렛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슐리에게 사랑을 털어놓는다.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자신을 잊지 못하고 있는 스칼렛의 모습이 안타까운 애슐리는 그녀를 안는데, 그 모습을 멜라니에게 들키고 만다. 그러나 멜라니는 애슐리를 질책하지 않고 포용한다.
자신의 변함없는 사랑에도 항상 냉정한 모습을 보이는 스칼렛에게 이젠 레트도 지쳤다. 마침내 레트는 스칼렛에게 이혼을 제안한다. 그렇지만 스칼렛은 딸 보니와 주위의 눈을 생각해 이를 거절한다. 레트는 보니를 데리고 런던으로 가 버린다. 레트가 런던에서 돌아왔을 때 스칼렛은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린다. 그 말을 들은 레트는 비아냥거리고, 이에 화가 난 스칼렛은 레트에게 달려들다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진다. 아기는 유산되었다.
얼마 후 딸 보니가 말을 타고 울타리를 넘으려다 추락해 죽는다. 딸의 죽음에 절망한 스칼렛은 쓰러진다. 멜라니가 그녀를 헌신적으로 간호해주는데, 가뜩이나 몸이 약하던 멜라니는 과로로 쓰러진다. 그녀는 죽어가면서 애슐리와 자신의 딸을 보살펴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멜라니는 마지막으로 스칼렛에게 그녀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레트이고, 스칼렛 자신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알려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스칼렛은 그제서야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레트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레트의 마음은 완전히 돌아섰다. 레트는 헤어지겠다고 하면서 집을 나선다. 스칼렛은 가지 말라면서 그에게 매달린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달라지지 않는다. 자신을 잡은 스칼렛을 뿌리치고 집을 나간다. 그가 떠난 뒤 스칼렛은 눈물 속에서 옛 농장 타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녀는 레트를 반드시 돌아오게 하겠다며 다짐하면서 그 유명한 말을 한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거야.”
이 영화는 세 번째 감상함에도 불구하고 다시 봐도 재미있다. 남북 전쟁이라는 엄청난 격변기를 거치면서 노예 제도의 폐지, 경제의 피폐화, 전쟁으로 가족과 친지를 잃은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몰락해가는 구 지주 및 농장주들 등 사회 변혁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이 영화에서 재미있는 몇 가지 장면이 있다. 하나는 남북 전쟁을 앞두고 그에 대비한 남부 청년들의 모습이다. 그들은 정말 철없다 할 정도로 전쟁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 전쟁이 시작되면 일당백의 자신들 손에 북부군 따위와 추풍낙엽처럼 쓰러질 것이라 생각한다. 전쟁만 나면 바로 자신들의 승리가 결정될 것이라 생각한다. 레트가 약간 비판적인 이야기를 하자 모두들 발끈하면서 자신들을 무시하느냐며 으름장을 놓는다.
그러나 전쟁의 대가는 비참했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잃고 삶의 터전은 피폐했다. 친구를 잃고 부상당한 몸으로 귀향하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황폐해진 땅과 비참한 생활 속에 고통받는 가족들이다. 이 모습을 보면서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전쟁을 떠드는 일부 정신 나간 인간들의 모습이 연상된다.
주인공 스칼렛은 팜므파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한다. 그렇지만 강인한 생명력과 집안과 자신의 터전을 지키려는 의지, 그리고 애슐리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은 그녀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의 첫 부분 주요 주인공의 나이가 어느 정도 되었는지 궁금했다. 그때 스칼렛의 극중 나이는 16세, 애슐리와 레트는 20대 중반이었다. 이때 비비언 리의 실제 나이는 23세가량 되었고, 애슐리 역을 맡은 레슬리 하워드는 40대 중반, 레트 버틀러 역을 맡은 클라크 케이블은 20대 후반이었다. 이렇게 극 중 나이와 배우들의 실제 나이가 차이가 나다 보니까, 영화 속의 이야기는 10대 후반 혹은 20대 초반의 주인공들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중년들의 이야기인 듯한 느낌이 든다.
이 영화에서 스칼렛 역을 맡은 비비언 리는 정말 아름답다. 이전에 감상한 《애수》에서도 그렇게 느꼈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그녀의 아름다움이 더욱 부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