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24) 칭다오에서 둔황까지- 중국 횡단여행 (06)
오늘은 태산에 가는 날이다. 잘 아시다시피 예로부터 우리에게 태산(泰山)이란 높고 큰 산의 대명사였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리로다”라는 시조나 “태산명동에 서일필”이라는 속담. 태산북두(泰山北斗)같은 고사성어 등에서 보듯이 아주 높고 범접할 수 없는 경지를 가리켜 태산이라 한다.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한족 문화권에서 가장 신성시되는 다섯 개의 명산을 “중원오악”(中原五岳)이라 하였다. 중원오악은 동악인 태산, 서악인 화산(華山), 남악인 형산(衡山), 북악인 항산(恒山), 중악인 숭산(嵩山)을 가리킨다. 이 산들은 단순한 자연 경관을 넘어 제왕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신성한 장소이자 중국 고대 신화, 도교, 불교의 성지로서 문화적, 종교적 의미를 지닌다. 이런 오악 중에서도 그 으뜸은 태산이다. 그래서 흔히 태산을 가리켜 “오악독존”(五岳獨尊)이라 하였다. “오악 가운데 가장 으뜸이다”라는 뜻이다.
태산은 제천(祭天)의 산이다. 태산에서는 역사상 진시황, 한무제, 당현종 등 수많은 황제들이 천지에 제사를 지내며 자신의 통치의 정당성을 하늘로부터 인정받는 의식인 봉선(封禅) 의식을 거행했다. 이러한 이유로 중국인들은 태산을 황권(皇權)과 천명이 연결되는 신성한 장소로 인식하였다.
태산에는 120위안(약 24,000원)의 입장료를 받지만, 65세 이상은 무료이다. 그렇지만 무료일지라도 미리 예약은 하여야 한다. 중국에서는 대부분의 중요 문화재에서는 인터넷을 통한 사전예약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현장 매표가 아예 없는 곳도 있고, 현장 매표가 가능하더라도 표를 사는데 시간이 걸리고 또 표가 매진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꼭 예매를 하라고 한다. 나는 어제 저녁에 미리 예매를 마쳤다.
태산은 제남에서 약 70킬로 떨어져 있는 태안시(泰安市)에 위치하고 있다. 어제 딥시크에게 제남으로 가는 방법을 물으니 제남역에서 태안까지 기차를 타고 가 태안역에서 다시 택시를 타고 태산으로 가는 방법과 제남역 광장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태산까지 바로 가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어제 저녁 제남역 광장에 있는 버스터미널의 위치를 이미 예약해두었다.
호텔을 나와 제남역 광장에 있는 버스 터미널로 갔다. 꽤 큰 터미널인데 대합실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통역기를 통해 직원인듯한 사람에게 태산가는 차를 어디서 타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태산가는 버스는 없다고 한다. 갑자기 당황스러워진다. 여러 사람들에게 물었지만 모두들 잘 모르겠다고 한다. 할 수 없이 터미널에서 나와 근처에 있는 교통순경에게 물었다. 순경은 태산가는 버스는 없으며, 기차를 타는 것이 좋다고 한다. 아! 못 믿을 딥시크!
급히 태안으로 가는 기차표를 예약하고 무사히 기차에 올랐다. 우리로 치면 옛날 비둘기호 같은 완행열차이다. 기차 안의 분위기가 아주 인간적이다. 열차 차장이 객차에 들어와 앉아 손님들과 노닥거린다. 내가 외국인같아 보이니까 말을 걸어오는데, 어디까지 가느냐고 묻는 것 같다. “타이샨”이라고 대답하니 웃으면서 좋아한다. 내릴 때가 되면 가르쳐 주겠다고 한다.
한 시간쯤 지나 태산 근처에 온 것 같다. 기차 창밖으로는 고층아파트들이 보인다. 시골인 듯한데 고층아파트들만 줄지어 서있다. 가끔 가다가 흰 페인트칠을 한 깨뜻한 연립주택들도 보인다. 기차 주위로는 제법 산들이 만다. 한 시간이 조금 지나 태안에 도착하였다. 태안역은 지은지 얼마되지 않은 새 역이었다. 역을 나오니 꼭 우리나라의 한적한 신도시 같은 느낌이다. 그다지 높이 않는 건물들이 있고, 높고 낮은 아파트들도 많이 들어서 있는데, 모두다 새 건물들이다. 거리는 아주 깨끗했다.
태안은 느낌으로는 인구가 10만 정도 되어 보이는 중소도시로 보였다. 그러다가 인터넷을 검색해보았다. 우와! 인구가 540만이란다. 부산이나 인천보다도 훨씬 더 많은 인구이다. 도시가 아마 넓게 퍼져 있는 것 같다.
택시를 탔다. 딥시크는 기차를 타면 태안역에서 태산까지 20킬로 이상이라 했는데, 실제로 타보니 2킬로가 조금 넘은 거리였다. 정말 못 믿을 놈이다. 택시비 9위안.
택시를 내리니 흰 화강암으로 만든 거대한 구조물이 보인다. 바로 태산 입구이다. 태산 입구의 구조물을 넘어 저 멀리 태산이 보인다. 산맥이 아니라 단독으로 우뚝 솟은 산이다. 산은 두 개의 봉우리로 된 것 같다. 태산의 높이는 1,545미터로서 설악산(1,708미터)보다도 낮다. 그뿐만 아니라 설악산은 백두대간의 일부로서 웅장한 모습을 보이지만, 태산은 단독 산이라 그런 위용을 보여주진 못한다.
태산 입구는 도로가 T자 형태로 되어 있는데, 도로 이쪽에 내린 사람들은 지하도를 통해 태산입구로 가게 된다. 지하도를 통과하는 동안 선물가게 등 상가를 통과한다. 상가를 포함한 태산의 아래쪽 일대를 천외촌(天外村)이라 한다.
태산은 시작점인 천외촌에서부터 정상인 옥황봉까지 돌계단이 만들어져 있다. 통상 6,600계단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마음만 먹는다면 발에 흙을 뭍히지 않고 태산 정상에 오를 수 있다. 태산을 오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중외촌에서 시작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도보로 오르는 방법인데, 이를 택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둘 째는 중외천에서 중간 지점인 중천문까지는 버스로 가고, 중천문에서 정상 근처의 남천문까지 도보로 가는 방법이다. 도보 등산을 원하는 사람들은 대개가 이 방법을 택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천문까지 버스로 간 후, 그곳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남천문까지 가는 방법이다. 등산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은 대개 이 방법을 선택한다.
우리는 물론 세 번째 방법을 선택했다. 딥시크에게 물으니 노약자는 절대 걷지말로 버스와 케이블카를 타야한다고 강력히 권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