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8) 칭다오에서 둔황까지- 중국 횡단여행 (13)
(선(禪)과 무(武), 소림사의 두 얼굴)
오늘은 소림사에 가는 날이다. 여행사에서 아침 7시에 호텔로 픽업하러 온다고 해서 일찍 준비를 하고 나갔다. 얼마 후 밴이 픽업을 왔다. 처음에는 이 밴을 타고 소림사로 가는가 했더니, 밴은 몇 사람을 더 픽업한 후 우리를 관광버스까지 데려다준다. 관광버스는 시내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더 태워 소림사로 향해 출발한다. 덕택에 낙양 시내 구경을 잘 한 셈이다. 몇 번을 봐도 낙양은 깨끗하고 잘 정돈된 도시이다. 넓고 반듯한 거리, 풍요한 도시 숲이 이전에 생각하던 중국 도시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잘 아시다시피 소림사는 중국무술의 본산이다. 소림사에 대해서는 모두들 잘 알고 있겠지만 여기서 간략히 소개하기로 한다. 소림사는 중국 선종(禅宗)의 발상지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중국 무술의 본산으로서, 낙양에서 70킬로 정도 떨어진 등봉시(登封市) 숭산(嵩山) 서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소림사는 선(禅)과 무(武)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옛날 인도에서 온 달마대사가 소림사 부근의 석굴에서 9년 동안 면벽좌선함으로써 선종(禅宗)을 창시했다고 한다. 달마는 수도승들의 건강과 정신 수양을 위해 무술을 가르쳤다고 한다. 이로 인해 소림사의 무술은 단순한 격투 기술이 아닌, '선(禅)의 실천 방법'이라는 깊은 철학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소림무술(少林功夫)은 1,5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무술 유파 가운데 하나이다. 소림무술은 강력한 권법과 다양한 병기술(兵器術)도 아울러 갖추고 있다. 과거 사찰 내에서만 전수되던 무술은 소림사와 직간접으로 관련된 수많은 무술 학교에서 전 세계 학생들을 가르치며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다고 한다.
소림사가 위치한 숭산의 정상 근처에는 삼황채(三皇寨)라는 절벽 명승지가 있다. 소림사로 가는 버스 안에서 가이드는 삼황채에 가려면 케이블카를 타야 한다고 하면서, 삼황채에 가길 원하면 케이블카 요금을 지불하라고 한다. 금액은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두 사람의 케이블카 요금으로 200위안 정도를 지불하였다. 출발한 지 한 시간 반이 지나 소림사에 도착하였다. 간간이 비가 뿌리는데도 불구하고 사람은 많았다. 주차장에는 차가 반쯤 차 있었다. 버스는 주차장 근처 도로가에서 우리를 내려 주었는데, 가이드는 오후 4시 반까지 이곳으로 오라고 한다.
가이드와는 커뮤니케이션이 전혀 되지 않는다. 통역기를 통해서 겨우 의사를 주고받을 뿐이다. 소림사 입구에는 화강암으로 만든 큰 문이 있다. 그리고 옆에는 소림무술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서있다. 소림사 관광구역 입구에서 소림사 절까지는 거리가 꽤 된다. 그래서 걷기가 싫은 사람은 유료로 운행되는 전동카트를 이용하면 된다.
입구를 통과하여 얼마간 걷다 보면 오른쪽에 소림무술 공연장이 있다. 공연장 관람료는 입장료에 포함되어 있다. 한 번에 40분 정도 하루에 여러 차례 무술 공연을 한다고 한다. 드디어 소림 무공을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할 기회가 왔다. 소림사에 가면 넓은 연무장에서 벌어지는 소림 제자들의 집단 수련 현장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무술 공연은 실내 공연장에서 한단다.
제일 먼저 노고수가 등장한다. 그는 일필휘지로 "가화만사흥"(家和萬事興이)란 글씨를 쓰자 젊은 제자가 그 글을 들고 객석을 향해 보여주면서 관객들의 복을 기원한다. 이어서 젊은 무도가들이 나와 본격적인 무술시범을 보여준다. 마루운동과 곡예와 차력을 합한 듯한 느낌이다. 무술 동작도 부드럽지 못하다. 실망이다. 우리나라 대학생 태권도 공연에 비해 수준이 한참 떨어진다.
현재의 소림방장은 석영신이란 승려다. 그는 소림을 상업적으로 대성공시켰다. 이제 소림사는 하나의 거대 기업이다. 그뿐만 아니다. 그는 얼마 전 50명이 넘는 애인을 두고 그녀들과의 사이에 170여 명의 아이를 두었다는 사실이 발각나서 중국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중원무림의 본산이자 정파의 지도자인 소림이 이졔 무공(武功) 대신 색공(色功)과 상공(商功)으로 방향을 바꾼 건가?
무술공연을 관람한 후 소림사 본원으로 향했다. 생각 외로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았고, 전각도 많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중간 규모의 사찰보다도 전각수는 오히려 적은 듯한 느낌이었다. 천왕전을 지나면 곧바로 대웅보전이 나온다. 대웅보전 역시 그다지 크지는 않았다. 우리나라 절들은 대웅전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고, 안에서도 기도 외의 다른 행동은 자제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신발을 신은 채로 대웅보전에 들어가며 사람들은 대웅보전 안 이곳저곳을 돌아보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한다.
나는 소림사에 간다면 제일 보고 싶은 건물이 장경각(藏經閣)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읽었던 무협소설은 <군협지>(群狹志로)서, 아마 중학교 2학년이었던 1968년이었던 것 같다. 그 소설은 주인공이 소림사 장경각에 침입하여 소림 최고의 무공비급인 달마역근경(達磨易筋經)을 훔치려 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막상 소림사에 왔지만, 많은 건물 중에 장경각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포기할 수밖에 없나 하고 대웅보전을 둘러본 후 뒤쪽으로 이동했는데, 세상에나! 대웅전 바로 뒷 건물이 장경각이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휴대폰 카메라를 들었으나, 아뿔싸 배터리가 아웃이다. 별 수 없이 사진은 따로 가져간 카메라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
장경각 안을 들여다보았다. 천하의 무공비급으로 가득 차있어야 할 장경각은 와불 하나가 누워있을 뿐 거의 빈 건물이다시피 하고 있다. 면적도 넓지 않아 100평이 조금 넘는 정도인 것 같다. 이렇게 허무할 수가!!!
누가 무공비급들을 빼돌렸나?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이로서 소림사 본원은 거의 둘러보았는데, 무술을 수련하는 소림제자들이 보이지 않는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현재 소림사 본원은 종교 수행의 장소로서 승려들이 선(禪)과 불법을 수양하는 종교 사원일 뿐이라 한다. 본격적인 무술수련은 소림사에서 약 2km 정도 떨어진 탑구(塔沟)나 십리방(十里坊)에 위치한 전문 무술학교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소림사 탑구 무술학교에는 전 세계에서 온 수만 명의 학생들이 숙식을 하며 수련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곳에 가면 소림제자들의 대규모의 단체 연무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중국 무술은 그동안 우리에게 있어 판타지였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우리가 보는 중국 무술은 무적이었고, 그 한가운데 소림 무술이 있었다. 나는 중국무협이나 쿵후 영화를 좋아한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수많은 소림 고수들을 만날 수 있었다. 백미도사, 삼덕화상, 방세옥, 홍희관, 엽문, 황비홍 등 수많은 소림 직계 혹은 방계 고수들이 바로 그들이다.
요즘은 세계적으로 격투기가 중요한 스포츠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세계 최고의 무도가들이 모이는 미국의 UFC는 세계인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그러면 중국 무술은 실제의 격투에서 얼마나 효용을 발휘하고 있을까?
몇 년 전 쉬샤오둥(徐曉冬)이라는 아마추어 격투가가 등장하여 중국 무술은 사기이며 실전에서는 아무런 위력도 없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펼쳤다. 그런 후 그는 자칭 중국무술 고수들을 찾아가 공개적인 대결을 벌였다. 그와 대결한 무예 고수들은 아마추어 격투가인 그에게 제대로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KO 되어 버렸다. 이로서 중국무술이 실전에서 아무런 위력이 없는 허풍이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공개된 셈이었다.
이를 계기로 수많은 중국 무술고수들이 격투기에 도전하였다. 대결 전에는 호언장담하던 그들이었지만, 막상 시합이 시작되면 꽁무니를 빼다가 KO 당하기가 일쑤였다. 이때 소림 최고수라는 이롱이 격투기에 입문하여 소림무술의 우수성을 세계만방에 알리려 했다. 그렇지만 그는 거의 동네북이 되고 말았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전통 소림무술을 버리고 신종 중국 격투무술인 산타(散打)로 전향하였으나, 그마저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천하비급인 달마역근경과 세수경으로 5갑자의 내공을 쌓고, 항룡십팔장, 소림72절예 등을 수련한다면 감히 누가 소림의 앞을 막을 건가? 소림의 진정한 초고수의 출현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