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01a) 칭다오에서 둔황까지- 중국 횡단여행 (18)
병령사 터미널에서 버스를 내렸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직원에게 유가협 항으로 가는 방법을 물었다. 택시를 타면 금방 가는데, 지금은 날씨가 좋지 않아 배가 운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이런, 졸지에 또 황당해진다. 여기까지 고생고생 와서 병령사에 갈 수 없다니!
그때 어떤 중년여자가 다가오더니 자기 남편이 택시 운전사인데 남편의 택시를 타고 가라고 한다. 얼마냐고 물으니 300위안이라고 한다. “헉! 300위안?” 중국에서 택시비로 300위안이라면 아주 큰돈이다. 서울 상계동에서 광화문 정도의 거리라 해봤자 20~30위안 정도다. 너무 비싸다고 하자 그녀는 왕복 거리만 거의 250킬로미터나 되며, 또 그곳에서 3시간 정도를 대기해야 하니 결코 비싼 것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그 말을 듣으니 나도 수긍이 간다.
택시를 탔다. 택시로 달리면서 딥시크에게 “유가협에서 배편이 없어 택시로 병령사까지 가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라고 물었다. 그러자 딥시크로부터 “병령사까지 가는 걸 당장 포기하고 다른 명소를 관광하도록 하세요. 배로 유가협 협곡을 보지 못한다면 병령사에 갈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도로사정도 아주 열악하여 차로 가는 것은 극히 비추천입니다.”이놈이 사람의 김을 빼는 것도 유분수지, 꼭 이렇게까지 말해야 하나... 나도 화가 나 유가협 가는 버스 타는 곳을 왜 잘못 가르쳐 주었느냐고 질책하자, 또 주절주절 변명을 늘어놓는다.
택시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리는데, 예상한 것보다는 도로가 좋다. 포장도 잘 되어있고 경사도 그렇게까지 심하지 않으며 커브도 비교적 완만하다. 그래도 택시 기사는 속도를 너무 낸다. 속도를 줄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전달할 방법이 없다. 생각 끝에 파파고 통역기를 꺼내 음성으로 “천천히!”라고 말하니 그제서야 속도를 조금 줄인다. 그래봤자 별 소용도 없다. 조금 있으면 속도는 다시 올라간다.
도로가 높은 곳에 위치하다 보니 도로 옆은 깊은 계곡이다. 도로 옆에 있는 전망대에 세워준다. 세상에!! 저 멀리 펼쳐진 긴 산맥이 보이고, 산맥은 만년설로 덮여있다. 이곳의 고도를 확인해 보았다. 해발 2,500미터 정도로 나타난다. 호수의 절경을 못 본 것은 안타깝지만, 눈 덮인 산맥이 그 보상을 해줬다. 가까이도 산들이 계속 겹쳐 있으며, 그 아래는 까마득한 절벽이다. 저 아래 낮은 곳에는 황톳빛의 강물이 흐르고 있다. 바로 황하이다. 최고의 절경이다. 오늘 이 경치를 본 것만으로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다. 가히 “녹색의 그랜드 캐년”이라 할 만하다.
얼마 후 병령사 입구에 도착했다. 비는 그쳤다. 택시 기사와는 2시간 30분 후에 이곳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택시에서 내리니 바다와 같은 호수 저편에 누런 황토색의 바위가 병풍처럼 서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병령석림”이라 한다. 병령석림은 황토고원에서 형성된 단층 석림으로, 빨간색 사암이 오랜 세월 풍화와 침식作用을 받아 마치 돌로 된 숲처럼 우뚝 솟은 모습을 하고 있다. 병령석림은 안으로 들어가면 형태가 다양하고 길이 마치 미로와 같아서 "지상의 사막미궁"(地上沙漠迷宫)이라 불린다고 한다. 산 형태가 카르스트 지형과 비슷하여 확인을 해보니 카르스트 지형이 아니라 황토흙의 침식 작용에 의해 생긴 지형이라 한다.
병령사 석굴도 당연히 입장료를 받는다. 80위안, 이 정도는 이제 익숙해졌다. 병령사 일대는 황하 상류지역의 황토 고원의 침식작용으로 생긴 지형과 사암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병령사 입구를 들어가면 왼쪽으로 높은 사암 절벽이 계속된다. 높고 거대한 사암 절벽에는 크고 작은 수많은 석굴이 파져 있고, 그 속에는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바위의 색을 밝은 누런색 혹은 주황색에 가까운 누런색이다. 그래서인지 전체적으로 상당히 밝은 분위기이다. 석회암 지대에 만들어진 검은색의 용문석굴과는 대조적이다.
병령사에는 420개 이상의 석굴이 있다. 순로를 따라 걸어가면 전체 석굴을 모두 탐방할 수 있다. 병령사 석굴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제169 굴과 제171 굴이다. 제169 굴은 병령사 석굴 중 가장 오래되고 잘 보존된 굴로 꼽히며, 서진 시대인 420년의 조성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제171 굴에는 높이 약 27m에 달하는 거대한 미륵보살 좌상이 있다. 당나라 때 조성되기 시작하여 803년에 완공된 것으로, 상반신은 석주를 이용하고 하반신은 찰흙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 마애석불은 병령사 지역 전체를 인자한 눈으로 내려보고 있다.
위의 두 굴을 포함하여 몇몇 특별한 굴에 대해서는 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또 별도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가장 비싼 것은 169호 굴로서 300위안 이상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입장료가 150~200위안에 이르는 굴이 몇 개 있다고 한다. 나는 불상이나 중국 불교에 대한 특별한 전문가가 아니므로 밖에서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이 외에도 병령사 석굴에는 크고 작은 석굴들이 있다. 작은 것은 가로 세로 1미터도 되지 않는 것도 있다. 그런 작은 석굴에도 그 크기에 비례하여 불상이 모셔져 있다. 병령사 석굴은 규모면에서는 용문석굴보다 조금 작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그 이상이다. 171 굴 앞에 다리가 있고, 그 다리를 건너면 더 이상 석굴은 없다. 그러나 건너편에서는 병령사 석굴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어서 좋다.
혼자서 구경을 하고 다니니 군더더기 시간이 없어 효율적이어서 좋다. 탐방에 두 시간 이상을 예상했지만 두 시간이 조금 안돼서 모든 곳을 돌아볼 수 있었다. 한 번도 쉬지 않고 걸은 결과이다. 돌아서 나오니 호수 위에 관광객을 태운 배들이 떠있다. 비가 그쳐 이제 배들이 다니는 것 같다. 택시를 보내고 배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선박 매표소에 가서 어디로 가는 배냐고 물었지만 의사소통이 잘 안 된다. 나는 유가협으로 간다고 하니까 그리로 가는 배는 아니라고 한다.
주차장으로 나와 대기하고 있는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터미널에 돌아오니 오후 5시 가까이 되었는데, 마침 곧바로 버스가 온다. 힘들었지만 재미있는 하루였다.
중국은 이제 전국적으로 고속철이 거미줄처럼 깔려있다. 스피드는 대략 시속 305킬로 정도로 우리 KTX보다 빠르다. 보통실 기준 좌석은 1열 5석으로 KTX에 비해 좁고, 승차감도 떨어진다. 고속철 역사는 대개 시 외곽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신분증이 기차표를 대신한다. 역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신분증 검사와 짐검사를 해야 한다. 짐 속에 과도라도 있으면 그냥 압수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칭다오 역에서 과도를 뺏긴 이래 껍질을 벗겨야 하는 과일은 못 먹는다. 역사에 들어가면 개찰시간까시 기다려야 한다. 대략 열차 출발시간 10분 전에 개찰이 시작된다.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개찰 시에 다시 신분증 확인을 한다. 자동개찰기로 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시간이 걸린다. 줄이 길게 늘어서 있기 때문에 개찰구 통과에 5분 이상 걸릴 수도 있다. 역이 크기 때문에 개찰구에서 플랫폼까지 가는데도 시간이 걸린다. 열차가 길기 때문에 플랫폼에 내려가서도 자신의 객차까지 한참 걷는다. 객차에 오르면 열차는 바로 출발한다.
이렇기 때문에 특히 초행길인 우리 같은 사람은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냥 허겁지겁 행동할 수밖에 없다. 15분 전에만 개찰하더라도 이렇게 허둥대지는 않을 텐데, 사회주의 국가라 완전히 공급자 중심인 것 같다. 중국인들은 불평도 안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