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둔황 사막 위의 용문객잔(龍門客棧)

(2025-10-05) 칭다오에서 둔황까지- 중국 횡단여행 (26)

by 이재형

(사막 위에 자리 잡은 영화촬영 세트장)

오전 8시에 차가 호텔로 오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10분 전에 로비로 나갔으나 이곳은 해가 늦게 뜨기 때문에 겨우 날이 뿌옇게 밝아온다. 오전 8시 조금 못되어 기사가 호텔로 찾아왔다. 차는 택시가 아니라 SUV였다. 이곳엔 관광객을 상대로 대절 차량 영업을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기사는 50대 후반 내지 60대 초반 정도의 남자였는데, 말은 전혀 통하지 않는다.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통역기를 잘 사용하면 의사는 소통 가능한데, 그렇지도 못한 것 같다.


기사와 12시간에 400위안이라는 계약조건을 서로 확인한 후 출발하였다. 제일 먼저 틀린 곳은 둔황 영화세트장, 둔황 시내에서 20킬로가량 떨어져 있다. 사막 한가운데 위치한 대규모 야외 촬영장으로서, 무협물과 사극의 주요 촬영지로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입장로는 1인당 100위안. 진짜 유적이 아닌 모두 짝퉁인데도 비싸다.


이 세트장은 중국 서부의 역사적 분위기를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으며, 드넓은 사막과 하늘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세트장은 송나라 시대 둔황 성벽스타일의 본성과 그 주변의 여러 구조물로 구성되어 있다. 긴 성벽 위에는 성루, 종루 등이 있으며, 성벽 아래에는 공성 무기가 놓여 있다. 이 성은 송나라 시대 가상의 도시 “사주성”(沙州城)을 재현하였는데, 성문을 들어서면 고풍스러운 거리, 관아, 상점, 주택 등이 늘어서 있다. 좀 더 들어가면 주루, 객잔, 표국, 도박장 등 무협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장소들이 보인다.

20251005_083140.jpg
20251005_083313.jpg
돈황영화촬영세트장

(이국적 분위기의 세트장)

세트장 전반에 걸쳐 이국적인 느낌이 난다. 파미르 고원의 성채, 이슬람 양식의 사원 등 중앙아시아와 서역(西域) 느낌의 건축물들이 많이 들어서있다. 이 때문에 실크로드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서유기' 같은 판타지 물의 촬영에 많이 이용된다고 한다. 세트장 곳곳에 의도적으로 낡고 폐허 같은 느낌을 준 세트들이 많다. 자연스럽게 색이 바랜 건물들과 사막의 황량함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세트장은 상당히 크고 넓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문경새재세트장, 완도의 장보고 세트장 등 몇 곳에 가본 적이 있는데, 그곳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크고 넓다. 또 하나 차이라면 우리나라 세트장은 상당히 현대화되어 있다. 옛시대의 재현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로 깔끔하다. 이에 비해 이곳은 정말 옛날을 그대로 옮겨온 듯 낡고 투박하고 거칠다.


(용문객잔, 이곳에서 임청하와 양만옥이 신경전을 벌였다고?)

아무리 잘 만든 세트장이라지만 입장료 100위안은 너무 비싸다. 어차피 짝퉁인데... 돌아 나오려는데 허름한 객잔이 히나 보인다. "용문객잔"이란 간판이 붙어있었다. 얼른 들어가 보았다. 임청하, 장만옥, 견자단 등이 출연하였던 1992년의 신용문객잔을 촬영하였던 바로 그곳이었다.

20251005_083542.jpg
20251005_083531.jpg
용문객잔 세트장

신용문객잔은 내가 아주 좋아하는 무협영화다 1968년에 제작된 용문의 결투(원제: 용문객잔)를 리메이크한 영화로서, 원작과 리메이크작 모두 수작이다. 객잔 안으로 들어가니 영화 속의 객잔 내부구조와 함께 장면들이 떠오른다. 장만옥의 졸개들이 인육으로 만투를 빚었던 그 주방도 보인다.


그런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이곳은 진짜 신용문객잔 촬영세트는 아니라 한다. 신용문객잔은 닝샤사위안(寧夏沙坡頭)에서 촬영되었는데, 하도 인기가 있어 그쪽의 세트를 모티브로 이곳에 다시 복제품을 만든 것이라 한다. 그런데 내부 구조는 영화에서 본모습 그대로이다. 신용문객잔의 영화 속의 배경은 둔황의 사막이 맞다.


나오면서 보니까 진시황의 암살을 그린 영화 <영웅>과 2008년의 중국 드라마 <신조협려>(神鵰俠侶)도 이곳에서 촬영하였다고 한다. 영웅도 재미있게 본 영화였지만, 이곳과 관련된 장면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자금성의 태화전(太和殿)과 파르테논 신전이 공존하는 테마공원)

둔황 촬영장을 출발 후 20킬로 정도를 달려 한 곳에 세워준다. 성벽과 성문이 있고, 성문 위에는 둔황 실크로드유산성(敦煌絲綢之路遺產城)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입장료는 20위안, 아주 싸다.


성문을 들어가니 왼쪽에 높은 황금색 탑이 서있다. 그 황금탑에는 사방으로 불상이 새겨져 있다. 큰 조형물이지만 어딘가 좀 조잡스러운 느낌이 난다. 거의 20만 평에 가까운 넓은 부지이다. 성문을 들어서서 아래로 뻗어있는 길을 따라 곧장 내려가면 큰 연못이 있고, 그 뒤로 태화전이라는 거대한 중국 전통 건물이 보인다. 태화전은 북경의 자금성안에 있는 중심 건물로서, 우리로 치면 경복궁 근정전에 해당한다. 그런 건물이 왜 여기에 있을까? 넓은 건물 안에는 천자의 자리와 같은 황금색 의자가 있고, 그 외에는 이렇다 할 만한 것이 없다. 건물을 나오니 오른쪽 저쪽 멀리 파르테논 신전 같은 모습의 건물이 보인다.


다시 성문 쪽으로 돌아 나오니, 왼쪽으로는 서부영화에나 어울릴 듯 보이는 지형이 보인다. 그리고 멀리 성벽 아래쪽 사암벽에는 막고굴의 대형 불상과 비슷 한 모습의 대형 불상들이 조각되어 있다. 뭔가 전체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20251005_090628.jpg
20251005_090641.jpg
20251005_090915.jpg
20251005_090927.jpg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은 유적지가 아니라 대규모 테마파크 형식의 인공 관광지라 한다. 동서양의 문명을 아우른다는 의미로 실크로드 연선에 있는 유명한 건축물과 불상을 실물 크기로 재현해 놓았다 한다. 공원 전체로 보면 태화전 외에 장안성, 북경의 천단, 낙양의 용문석굴 등 중국의 유물과 함께 이슬람 사원, 파르테논 신전, 로마의 콜로세움, 파리의 에펠탑, 베트남 후에의 왕궁까지 실물 혹은 미니추어로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부지가 너무 넓어 전체적으로 돌아보지는 못하고, 중앙 통로를 중심으로 둘러보고 나왔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촬영하는데 갑자기 이상해진다. 화면이 이상한 모습으로 변하더니 전원이 꺼져 버린다. 확인해 보니 배터리가 완전히 소진되었다. 차로 돌아와서 보조배터리로 충전을 시작했다.


▪ 중국단상(19): 중국인들과의 소통


중국에서 내가 택시를 타거나 물건을 사거나 음식점에 가서 만난 사람들에게는 아마 내가 최초로 접촉한 외국인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중국 대부분의 도시에서는 외국인을 만나기가 힘들다. 그들에게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경험은 처음일 테고, 그럴수록 목소리는 높아진다.


통역기를 통해 겨우 의사가 통하면, 그들은 아주 친절해진다. 한국인이라고 이야기해 주면 엄지 척을 해주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사람들이 무뚝뚝하고 무표정하지만, 조금만 소통이 되면 아주 친절하다. 이번 여행 중 바가지를 씌운다거나 속이는 경우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다. 한 번은 알리페이가 되지 않아 현금을 내었더니 거스럼돈 0.5위안 대신 1위안을 받아가라며 끝까지 쥐어준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인들에게 증오감과 적대감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중국에서도 한국인에 대한 감정이 악화되고 있는 것 같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웃나라로서 국가 차원에서는 물론, 국민 개개인 레벨에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특히 중국과 중국인들에 대한 증오심을 선동하는 정치집단을 보면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중국인의 무례함, 예의 없음을 지적한다. 그에 대해서는 우리의 이해가 필요하다. 우리도 예전에 그랬다. 3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일본인들이 한국인을 보면 무섭다고 했다. 시끄럽고, 무례하다고도 했다. 그렇지만 사회가 발전하면서 사람들의 자세와 태도도 바뀌게 되는 것이다. 지금의 중국인을 30년 전의 우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