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20) 동남아 횡단여행 (18)
오늘은 속짱(Sóc Trăng) 남부 해변 쪽의 메콩 델타를 둘러보고 빨리 돌아와 시내 명소 몇 곳을 들를 예정이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아침을 먹지 않고 출발했다. 가다가 적당한 노변 식당에서 아침을 해결하면 된다.
오전 9시 반경 숙소를 출발했다. 첫 행선지는 속짱에서 4시 방향에 있는 모오 해변(Biển Mỏ Ó)으로 정했다. 그곳에서 해안을 따라 빈쩌우(Vĩnh Châu)에 들렀다가 다시 속짱으로 돌아오는 코스이다. 이 경로는 메콩 델타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지방도를 달린다. 차는 그리 많지 않고 오토바이 통행이 많다. 오토바이는 아무리 많아도 위험하지 않으니 괜찮다. 모오까지는 한 시간 거리라는데, 두 시간으로 잡고 달리면 된다. 교통량이 좀 뜸한 곳에 있는 길가 식당에 들렀다. 메뉴에 분 느억 레오(Bún nước lèo)가 보인다. 속짱의 대표 음식으로서, 생선 젓갈(Mam)로 맛을 낸 국물에 바싹 구운 돼지고기, 새우, 생선 등을 얹은 국수이다. 어제 저녁에 먹으려다 못 먹었는데, 꽤 괜찮은 음식이었다. 또 먹고 싶어지는 맛이다.
식사 후 다시 달린다. 메콩 델타의 정취를 듬뿍 담은 수로가 도로와 평행하게 이어지고 있다. 드문드문 마을이 나타나며 왁자지껄해진다. 교복을 입은 중고등학생들이 자전거나 작은 오토바이를 타고 길을 간다. 이 시간에 어디를 가는 것일까?
가다보니 화려한 사원이 나타난다. 확인해보니 ‘스레이 타 몬 사원(Wat Srey Ta Mon, Chùa Srey Ta Mon)’이다. 이 사원은 지붕 위의 가루다 장식, 화려한 기둥 장식, 그리고 입구를 지키는 대형 사자상(Singha) 등 전형적인 크메르(Khmer) 불교 양식을 띠고 있다. 이 사원은 1615년에 처음 건립되었다고 하는데, 당시 이 지역의 자산가였던 콩 몬(Kong Mơn, 일명 타 몬) 할아버지와 티 떠이(Thị Tây) 할머니 부부가 사원 부지로 약 3헥타르(약 9,000평)의 땅을 기부하면서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사원에서 가장 유명한 상징물은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대형 황금 입불상이다. 이는 메콩델타 지역의 다른 크메르 사원들과 비교해도 그 규모와 화려함이 뛰어나다고 한다. 사원 내부에는 부처의 생애를 묘사한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11시 반쯤 되어 모오 해변에 도착했다. 이곳은 메콩강과 바다가 합류하는 지점이다. 그런데 어제 가려다가 못 간 꾸라오중(Cù Lao Dung) 섬 최남단에 있던 농쯔엉(Nông Trường) 선착장이 위도상 이곳 모오 해변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른 인공지능으로 확인해 보았다. 역시! 농쯔엉 선착장에서 운항하는 배는 이곳 모오(Mỏ Ó) 인근의 선착장에 도착한다고 한다. 급히 계획을 변경했다. 이곳에서 농쯔엉까지 배를 타고 건너간 후 꾸라오중 섬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횡단하고, 동쪽 끝의 다이응아이(Đại Ngãi) 선착장을 통해 나오기로 했다. 어제 포기했던 꾸라오중 섬 횡단을 다시 시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빈쩌우(Vĩnh Châu)를 포기하는 것이 아쉽다. 그래, 메콩 델타를 조금만 더 보자. 빈쩌우를 향해 가다가 도중에 돌아오기로 했다. 빈쩌우를 향해 달리니 길 양쪽에 메콩 델타의 벌판이 펼쳐지는데, 지금까지 본 다른 지역과는 다르다. 논도 그리 많지 않고 농장도 별로 없이 마치 황무지 같은 벌판이 계속된다. 무성한 풀로 뒤덮인 버려진 땅과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벌판에는 인가도 거의 없다.
한참을 달리니 크고 길고 높은 다리가 나타난다. 다리 아래는 넓은 물인데 강인지 바다인지 모르겠다. 이 다리를 넘으면 빈쩌우라고 한다. 구경을 충분히 했다. 다리를 건넌 후 다시 모오로 돌아가기로 했다. 오던 길을 되돌아가는데 오토바이가 뭔가 좀 이상하다. 기분 탓인지 뒷바퀴가 조금 미끄러지는 듯한 느낌이다. 내가 아직 오토바이에 능숙하지 않아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자꾸 마음에 걸려 모오 선착장에 도착하자마자 뒷바퀴 쪽을 살펴봤다. 아니, 이럴 수가 있나! 오토바이를 렌트하면서 너무 낡았다고 생각하면서도 제대로 살펴보지 않은 것이 실책이었다. 뒷바퀴는 완전히 닳아 홈이 보이지 않는 상태였고, 옆면은 터지고 갈라져서 안의 튜브가 보일 지경이었다. 폐기해도 벌써 몇 번은 했어야 할 타이어였다.
이 상태로 섬에 들어갔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지금까지 굴러다닌 것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바로 돌아가야겠다. 돌아가는 동안만이라도 무사했으면 좋겠다. 정말 천천히 운전하면서 속짱 쪽으로 향했다. 덥고 목도 마르다. 아침을 먹은 후 아무것도 먹거나 마시지 못했다. 길가 카페가 보여 사탕수수즙(느억 미아, Nước mía)을 마시며 한참을 쉬었다.
다시 출발하려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오토바이 뒷바퀴를 가리키며 내게 소리를 친다. 가보니 바람이 완전히 빠져 있다. 펑크인지 타이어가 찢어진 것인지 모르겠다. 지도를 보니 숙소까지 아직 30km, 이 상태로는 도저히 갈 수 없다. 아주머니도 위험하다며 빨리 고쳐야 한다고 한다. 물어물어 오던 길을 2km가량 되돌아가 수리점을 찾았다. 타이어를 갈고 나니 사고가 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아찔했다.
관광이고 뭐고 할 기분이 아니어서 바로 숙소로 돌아왔다. 걸어서 근처에 있는 대형 마트를 찾아 러닝셔츠를 두 개 샀다. 시골 소도시라 생각했는데 있을 건 다 있다.
호텔 길 건너편에 아주 큰 식당이 있는데 상호를 보니 'SEOUL'이다. 오랜만에 삼겹살이나 등심을 먹어 볼까 하고 들어갔다. 밖에서 보이는 것보다 훨씬 큰 식당이다. 3층 건물에 내부도 아주 잘 지어졌다. 대도시에 가더라도 이 정도 규모의 식당은 찾아보기 쉽지 않을 것이다.
종업원들에게 교육을 잘 시킨 것 같다. 젊은 여종업원들이 아주 싹싹하고 친절하다. 그런데 메뉴를 보고 크게 실망했다. 메뉴는 많은데 대부분 라면이다. 김치라면, 치즈라면, 해물라면 등 종류만 수십 종이 될 것 같다. 그외에는 비빔밥, 빈대떡, 전골뿐이다. 가격대는 대부분 5만 동(약 2,700원) 미만이다.
이곳은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식당은 아니다. 한국인 관광객이 이곳까지 올 리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이 도시에 한국인 관광객은 나 혼자뿐일지도 모른다. 현지인 상대로 장사는 잘되는지 이른 시간임에도 자리가 상당히 찼다. 닭다리 튀김 두 개와 타이거(Tiger) 맥주 한 캔을 시켰다. 그런데 닭을 아주 잘 튀겼다. 음식값은 5,000원 정도 나왔다.
내일 이곳을 떠난다. 당초 락쟈(Rạch Giá)로 가서 우밍트엉(U Minh Thượng) 국립공원 탐방을 하려 했는데 교통편이 마땅치 않다. 게다가 락쟈에서 국립공원까지는 오토바이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대형 트럭이 많이 다니는 도로라 위험하다고 한다. 락쟈는 포기하기로 했다.
이제 어디로 갈까? 그래, 라오스를 거쳐 방콕으로 가자.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호찌민에서 라오스 팍세(Pakse)로 가는 버스는 캄보디아를 통과한다. 우리 정부가 캄보디아 일부 지역에 대해 여행 경보를 발령하고 있으나, 캄보디아 입국 자체가 형사처벌 대상인 여행 금지 국가(4단계)는 아니다. 다만 안전과 비자 문제를 고려해 캄보디아는 통과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캄보디아를 통과하지 않고 라오스로 바로 가는 방법을 찾았다.
호찌민에서 베트남 국경 도시인 콘툼(Kon Tum)으로 가서 그곳에서 팍세로 가는 버스를 타는 방법이다. 내일부터 이틀간 대장정이 될 것 같다. 이곳에서 호찌민까지 7시간, 호찌민에서 콘툼까지 12시간, 콘툼에서 팍세까지 10시간으로 합계 29시간 동안 버스를 타야 한다. 중간 대기 시간까지 합치면 최소 40시간은 걸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