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떤 국가든 지배계층 사이의 권력투쟁이 없을 수는 없다. 권력투쟁은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무력을 동원하여 정적과 죽고 죽이는 대결을 벌이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온갖 권모술수를 동원하여 상대를 함정에 빠뜨리기도 한다. 대의명분을 앞세워 정파 간에 대결이 이루어지지만 그 이면을 들춰보면 그것은 권력투쟁의 또 다른 방식인 경우가 많다.
조선의 권력투쟁은 상대 세력에 대한 모함이라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경향이 강하였던 것 같다. 이에 대한 전문지식이 깊지 않아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역사 시간에 배웠거나 책을 통해 알게 된 대부분의 권력투쟁은 상대 세력을 역모로 몰아 제거한 경우가 아주 많았던 것 같다. 역모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상대방을 비방하고 모함하여 제거하는 것이 권력투쟁 방식이었던 것 같다. 이 때문에 우리가 존경하고 있는 위인들 가운데 귀양 한두 번쯤 다녀오지 않은 사람이 드문 것 같고, 그러한 싸움에서 많은 분이 아깝게 목숨을 잃었다.
이에 비해 일본에서는 이러한 사례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일본에서의 권력투쟁은 거의가 무력투쟁을 통해 이루어졌다. 전쟁을 통해 적대 세력을 패퇴시키고, 그가 소유했던 자산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권력투쟁의 양태를 두고 일본의 권력투쟁 방식은 정정당당한데 우리나라의 권력투쟁 방식은 너무나 비열하고 치사하다고 비판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다. 특히 조선 중기 이후 당파 싸움을 두고 싸움 방식이 너무 저열하다, 단결이라고는 모른다, 심지어는 민족성이 잘못되었다는 주장에까지 비화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권력투쟁의 속성이나 조선과 일본의 권력투쟁 구도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온 오류라 생각한다. 인간 사회에서 "권력"이라는 것이 생긴 이후 어떤 형태로든 권력투쟁이 일어났으며, 다만 그 구도에 따라 권력투쟁의 형태와 수단이 바뀌었을 뿐이다.
나는 권력투쟁의 구도는 (1) 최고 권력을 위한 투쟁인가, (2) 2인자의 자리를 위한 투쟁인가의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1) 유형의 권력 투쟁은 거의가 무력을 통해 이루어지며, (2) 유형의 권력투쟁은 '말'(모함, 비방 등)을 통해 이루어진다. 2인자 자리를 노린 투쟁에서 무력은 절대 금기이다. 왜냐하면 무력 사용은 최고 권력자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 되므로 최고 권력자가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의 경우 왕이라는 절대권력이 있고, 권력투쟁은 왕 아래서 누가 2인자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의 싸움이었다. 이 싸움에서 무력 동원은 용납되지 않는다. 그 자리를 노리는 정치 세력들은 무력 자체를 가지지 못했다. 무력은 오직 왕만이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 세력 간의 싸움은 '말'을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2인자 자리를 위한 싸움의 승패는 누가 최고 권력자의 지지를 얻는가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 각 정치 세력은 최고 권력자인 왕에게 자신들 세력이 옳다고 주장하고 상대방의 주장에 반대하면서, 심한 경우 비방, 모함에까지 이르는 것이었다. 조선에서도 왕자의 난, 계유정난, 중종반정, 인조반정 등과 같은 최고 권력을 위한 투쟁에서는 무력에 의해 승패가 결정났다.
이에 비해 일본 전국시대의 유력 무장들 간의 싸움은 1인자의 자리를 위한 싸움이었다. 당연히 이 싸움은 무력에 의해 승패가 결정되었다. 비록 직접적인 전투가 없었다 하더라도 한쪽이 패배를 인정하는 것은 상대방이 가진 무력에 굴복하였기 때문이다. 애초에 전국시대의 무장들 간의 싸움은 권력투쟁이라고 보기 어렵다. 한 국가 내에서 벌어지는 권력투쟁이 아니라, 국가와 국가 사이에 벌어지는 생존과 약탈을 위한 전쟁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면 도쿠가와 막부가 사실상 일본을 통일한 에도 시대에는 왜 영주들 간의 권력투쟁이 없었나? 에도 시대에는 중앙 권력을 막부가 독점하였다. 영주에게 돌아갈 "2인자 자리"라는 것 자체가 없었다. 그리고 한 영주가 적대적 영주를 모함하여 파멸에 빠뜨렸다 하더라도 얻는 것이 없었다. 오히려 "싸움은 양자 모두 벌한다(겐카 료바이바이, 喧嘩両成敗)"라는 막부의 법에 따라 모함을 한 자신에게도 화가 미칠 가능성이 컸다.
일본에서도 2인자 자리를 둘러싼 권력투쟁은 추악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나라 고려와 비슷한 시기였던 헤이안 시대는 천황을 권력의 정점으로 후지와라 가문을 중심으로 한 귀족들이 권력을 잡았다. 일본 역사에서는 이 시대를 "악령(惡靈)의 시대"라 부르기도 한다. 천황을 명목상의 절대권력으로 두고 2인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비방, 모함, 저주 등 온갖 저열한 수단이 총동원되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억울하게 죽어 나갔으며, 사람들은 그 억울한 죽음이 ‘원령(온료, 怨霊)’이 되어 궁성 전체를 뒤덮고 있다고 생각했다.
에도 시대도 마찬가지였다. 영주들 간의 싸움은 드물었지만 막부 내에서 2인자를 노린 싸움은 치열하였다. 막부는 쇼군이 최고 권력자이며, 조선의 영의정에 해당하는 다이로(大老)나 로주(老中)가 정사를 대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 다이로 자리를 두고 치열한 암투가 벌어졌으며, 도승지 격인 소바요닌(側用人)과 다이로 사이의 권력 투쟁도 치열하였다. 이러한 싸움은 거의가 상대방에 대한 비방과 모략, 모함을 통해 이루어졌다. 역모 조작 사건도 여러 번 있었다.
이상과 같이 권력투쟁의 양태는 기본적으로 그 구도와 투쟁의 목표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이는 사람들의 인성이나 국민성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권력투쟁에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의 한계에 따라 결정된다. 무력 동원이 가능한 상황에서는 무력 투쟁이 우선시되며, 이것이 불가능할 때는 상대방에 대한 논리적 비판, 비방, 모함 등의 말을 통한 온갖 수단이 동원되는 것이다.
일견 추악해 보이는 조선의 권력 다툼이나 당파 싸움의 양태나 방식도 조선이 가진 "권력투쟁 환경"에 따른 필연적 결과라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