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22) 아타미 해변, 금색야차(金色夜叉)의 무대
여기는 대동강변 부벽루(浮碧樓). 구름 사이로 휘영청 밝은 보름달 아래 두 청춘남녀가 처연하게 걷고 있다.
"순애야!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그렇게도 탐이 나더냐?"
"아니에요, 수일 씨! 당신을 외국 유학 보내려고, 부모님의 말씀에 따라 김중배에게 시집을 가오"
그리고 수일이의 바지 자락을 잡으며 매달리는 심순애.
"놓아라! 이 더러운 년. 내 반드시 내년이 되면 금일금야(今日今夜) 떠있는 저기 저 달을 사나이의 피눈물로 흐리게 하리라"
수일이는 바지자락을 잡고 매달리는 심순애를 발길로 차 버리고, 피눈물을 흘리며 사라진다.
바로 유명한 신파 소설(新派小說) "장한몽"(長恨夢)의 명장면, 명대사이다. 이 소설은 <장한몽> 또는 <이수일과 심순애>란 제목으로 연극으로, 영화로, 그리고 노래로 여러 차례 소개되었다. 대동강변 부벽루 아래의 이별 장면은 장한몽의 하이라이트 부분으로 수많은 패러디를 만들기도 하였다.
그런데 사실 장한몽은 순수한 우리나라 소설은 아니다. 1920년대 일본 요미우리 신문에 연재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소설을 번안한 것이다. 원작 제목은 <곤지키야샤>(金色夜叉), 우리말로 굳이 번역하자면 수전노(守錢奴) 쯤 될까?
이수일이는 칸이찌(貫一), 심순애는 오미야(お宮)이다. 그리고 김중배는 토미야마(富山)이고.
칸이찌와 오미야가 이별을 한 곳은 대동강변 부벽루 아래가 아니고, 일본의 아타미(熱海) 해변이다. 아타미는 동경에서 서쪽으로 150킬로 정도 떨어진 유명한 온천도시이다. 둘이서 아타미 해변을 걸으며 오미야는 칸이찌의 바짓가랑이를 잡았고, 칸이찌는 오미야를 발길로 차 버렸다. 둘이서 나눈 대화는 이수일과 심순애의 그것과 거의 동일하고.
몇 가지 일이 있어 오늘 아침 일본으로 출장을 왔다. 김포공항에서 하네다 공항으로 와, 하네다 공항에서 동경역으로 와, 다시 동경역에서 기차로 이곳 아타미로 왔다. 아타미 온천타운은 거의 절벽에 붙어있는 듯하다. 역에서 온천장이 있는 해변으로 가는 길은 매우 가파른 길이다.
여기는 바로 그 아타미로. 호텔 창 아래로 칸이찌와 오미야가 이별을 했던 바로 그 해변이 내려다 보인다. 달이 뜨면 해변으로 내려가 그 이별의 아픔을 나도 한번 느껴 보련만.... 유감스럽게도 몇 시간 뒤 초강력 태풍이 이곳을 직격한다나. 방송을 보니 태풍이 바로 여기로 상륙할 예정이란다. 근처 몇몇 도시와 마을은 대피령도 내리고.
내일 날씨가 개이면, 오미야 동상 앞에서 사진이나 한 장 찍어야겠다.
칸이찌와 오미야 그 둘은 나중에 어떻게 되었을까? 아무도 모른다. 작가가 그만 소설 연재 중에 죽어버린 것이다. 사랑에 배반당하고 돈에 운 칸이찌는 고리대금업자가 되어 피도 눈물도 없이 혈안이 되어 돈을 긁어모으는 중에, 그리고 오미야는 남편 토미야마의 바람기와 학대에 불행한 결혼 생활을 보내던 중에, 작가가 무책임하게 죽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둘이 그 후 어떻게 된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럼 수일이와 순애는?
수일이는 고리대금업자 밑에서 일을 하다가 그가 죽는 바람에 횡재를 하여 큰 부자가 되었다. 순애는 수일이를 배반한 죄책감과 김중배의 학대에 괴로워하다 대동강에 뛰어들어 자살을 기도한다. 그때 수일이의 친구가 그녀를 구하고, 다시 만난 수일이와 순애는 재결합을 한다.
어쨋던 이수일이와 심순애는 이걸로 해피앤딩인가??
고복수 백년설의 장한몽
https://www.youtube.com/watch?v=jB2n-rsIYDs
<장한몽>
대동강변 부벽루에 산보하는
이수일과 심순애의 양인이로다.
악수론정(握手論情)하는 것도 오늘뿐이요
보보행진(步步行進)하는 것도 오늘뿐이다
이수일과 심순애 이야기의 원본이 된 곤지키야샤의 주제곡
<곤지키야샤(金色夜叉)>
金色夜叉
1. 1.
熱海の海岸 散歩する 아타미 해변을 산보하는
貫一お宮の 二人連れ 칸이치 오미야 두 사람 연인
共に歩むも 今日限り 둘이서 걷는 것도 오늘뿐이요
共に語るも 今日限り 둘이서 속삭임도 오늘뿐이다
2.
僕が学校を 終わるまで 이 몸이 학교를 마칠 때까지
何故に宮さん 待ったなんだ 어이하여 미야 씨 못 기다렸나
夫に不足が 出来たのか 남편이 부족함이 있었다느냐
さもなきゃ お金が欲しいのか 그게 아니면 금전이 탐이 났더냐
금색야차의 이야기가 끝난 몇십년 후, 사랑을 배신한 한 사람의 여자가 금색 야차의 오미야를 생각하며 부르는 노래
<소화 금색야차 (昭和金色夜叉)>
胸にひとりの魔女が住み 가슴에 한 사람의 마녀가 있어
女は愛に背くのね 여자는 사랑에 등 돌리네요
過ぎて思えばあなたが命 지나서 생각하니 당신은 내 생명
いまさら知った己が罪 지금에야 알게 된 내 무거운 죄
悔み足りないお宮の松に 후회에 뉘우치는 오미야의 솔밭에
金色夜叉の月が出る 금색야차의 둥근달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