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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Aug 22. 2021

영화43: 히미코(卑弥呼)

수수께끼의야마타이 국최초의 여왕의 사랑과 질투, 그리고 권력의지

일본은 대대로 천황이 다스려왔다고 한다. 초대 천황인 진무 천황(神武天皇)에서 시작하여 현재의 127대 나루히토(徳仁) 천황에 이르기까지 거의 2,000년 동안을 천황가에서 천황이 배출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그들의 역사를 만세일통(萬世一統)이라 자랑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초기의 천황은 거의 전설상의 인물들이며 실제로 역사상에 존재하기 시작한 천황은 10대부터라 하기도 하고, 15대부터라 하기도 하고, 또 어떤 학설에서는 26대부터라 하기도 하는데, 어느 설이 맞는지에 대해서는 정답이 없는 실정이다.


정확히 하자면 천황이 재위하였던 기간에 쓰여진 역사책이 있다면 쉽게 확인되겠지만, 그 시대 일본에는 문자라는 것이 없었고, 그러다 보니 기록이 남아있을 리 없다. 그래서 후대에 쓰여진 기록을 바탕으로 천황의 실존을 추리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점은 우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단군이 나라를 세운 것은 약 5,000년 전이라 하지만 그 기록이 나타난 것은 그로부터 3,000년도 훨씬 넘는 세월이 흘러 삼국사기 등의 후대의 역사에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시기가 이보다 앞선 중국 역사서의 기록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있다고 하더라도 단군 사후 거의 3,000년이 지나서 쓰여진 역사서라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동시대의 역사서에서 일본의 왕가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 나오는 것은 중국의 역사지리서인 위지왜인전(魏志倭人傳)이다. 이 책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일본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동쪽 섬나라에는 야마타이 국(邪馬台国)이라는 나라가 있어, 히미꼬(卑弥呼)란 여왕이 이 나라를 다스린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야마타이 국과 히미꼬 여왕이 일본의 문헌에는 잘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야마타이 국이 실제로 일본의 어느 곳에 있었는지(규슈에 있었다는 설과 간사이 지방에 있었다는 설로 나뉘어져 있다.) 불분명하며, 히미꼬가 일본 역사서에 나오는 실존 인물 누구와 겹치는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어찌 되었던 히미꼬는 공식적인 역사 지리 문헌에서 등장하는 일본 최초의 여왕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히미꼬 여왕이 재위하였던 시기는 서기 2-3세기로 추정되고 있다. 이 시기는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지 않는 시대여서, 히미꼬는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국왕이라기보다는 무녀(巫女)였을 것이라는 게 정통적 학설이다.


영화 히미꼬(卑弥呼)는 1974년에 제작된 영화로서 히미꼬의 권력투쟁과 그녀의 이복동생과의 사랑과 질투에 대해 그리고 있다. 야마타이 국의 왕 카토 요시(加藤嘉)는 무녀인 히미꼬의 신탁을 이용하여 정치를 행하고 있다. 그는 후계자로서 2명의 무장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나 히미꼬는 이교도가 되어 돌아온 배다른 동생 쿠사가리 마사오(草刈正雄)를 사랑하고 만다.

무녀가 사랑을 하면 신탁의 능력이 사라진다고 믿는 카토 요시는 히미꼬의 사랑을 막지만 역부족이다. 그리하여 그는 히미꼬를 제거하고 새로운 무녀를 세우려 한다. 이러한 음모에 대하여 히미꼬는 신탁을 핑계로 카토 요시를 죽이고 그의 권력을 빼앗아 스스로 왕이 된다. 그러나 대규모의 병력을 거느린 다른 부족이 쳐들어오고, 히미꼬의 동생이자 애인인 쿠사가리 마사오는 이들과의 전쟁에서 전사하고 만다.


히미꼬는 쿠사가리를 찾아 광야를 헤매며 행방을 감춘다. 남은 부족의 사람들은 히미꼬를 필사적으로 찾아 나서지만 히미꼬의 행방은 알 수 없고, 그러한 그들 앞에는 멸망의 예감이 닥치는 것으로 영화가 끝난다.


이 영화가 그리고 있는 시대는 서기 2-3세기 경이다. 그러므로 지금으로서는 그 당시의 복식이나 풍습을 알 길이 없다. 그래서 감독의 생각대로 그 시대를 그릴 수밖에 없는데, 부족들이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기원을 드리는 모습은 마치 현대 전위예술의 무용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얼굴과 온몸에 기괴한 흰 칠을 한 그들의 모습은 현대의 열대 오지에서 가끔 발견되는 원주민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시대 배경이 거의 2,000년 전이므로 언어도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그런 탓인지 영화 전체에서 말의 사용이 아주 제한되어 있고, 대개는 몸짓으로 의사를 전달하려 한다. 그래서 영화의 스토리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영화 전반적으로 주술적인 분위기가 짙게 깔려져 있는 대신, 고대사회에서 기대할 수 있는 풍요한 자연의 모습은 그다지 발견되지 않는다.


이 영화는 몇개의 영화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으나, 스토리가 잘 이해되지 않는 탓인지 전반적으로 따분한 느낌이 들었다. 재미있는 영화로 추천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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