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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Aug 20. 2021

영화41: 란(乱)

일본판 리어왕

영화 <란>(乱)은 일본의 명감독 쿠로자와 아키라(黒澤明)가 1985년에 제작한 영화로서, 일본과 프랑스가 합작하였다. 잘 아시다시피 쿠로자와 아키라 감독은 <라생문>(羅生汶, 라쇼몬), <7인의 사무라이>, <카게무샤>(影武者) 등의 명화를 제작한 세계적 감독으로 평가받고 있다.


영화 <란>은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을 기본 토대로 하고, 여기에 전국시대(戰國時代)의 다이묘(大名)인 모리 모토츠구(毛利元就)의 <3자교훈장>(三子教訓状)의 이야기를 적당히 섞어 넣은 이야기이다. 모리 모토츠구는 특히 아들들의 교육에 큰 신경을 썼는데, 모리 모토츠구의 교육철학은 이후 일본 교육의 큰 줄기가 되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모리 모토츠구가 죽기 전에 아들 셋을 불러 모아 집안의 융성을 위해서는 아들 셋의 우의와 단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그 예로서 화살을 세 개 가져오라 하여 화살을 하나씩 부러뜨리면 쉽게 부러지지만, 3개를 한꺼번에 부러뜨리려 하면 부러지지 않는다고 는 옛 중국의 고사를 가져와 아들들에게 부디 싸우지 말고 힘을 합하라고 당부한다. 이 이야기를 근거로 자식들에게 남긴 교훈서를 <3자교훈장>이라 한다.


영화 <란>의 이야기는 가공의 전국시대 무장인 이치몬지 히데토라(一文字秀虎)의 가독 승계를 둘러싼 세 아들의 집착, 그리고 형제들 간의 골육상쟁과 파멸을 그리고 있다. 당시 일본 영화로서는 파격적인 26억 엔의 제작비를 투입한 대작으로서, 구상에서 완성까지 9년이 걸렸다고 한다. 쿠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최고 걸작 가운데 하나로 일본 국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제58회 아카데미상의 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어, 의상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 외에도 영국 아카데미상, 전미 영화 비평가 협회상, 뉴욕 영화 비평가 협회상 등 다수의 국제 여오하상을 수상한 바 있다.


전국시대를 무자비하게 헤쳐 온 나이 70세의 맹장 이치몬지 히데토라는 돌연 은퇴의사를 표명하고, 세 아들에게 성을 하나씩 나누어준다. 그리고 아들들에게 3자루의 화살의 교훈을 이야기해주며, 부디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고 당부한다. 그러나 셋째 아들아 아버지가 부러뜨려 보라고 내 준 3개의 화살을 있는 힘껏 꺾어버리자 히데토라는 격노하여 셋째 아들을 추방해 버린다. 옆의 지방 영주인 후지마키(藤巻)는 셋째 아들을 마음에 들어 하여 사위로 삼는다.


가독(家督)과 한 개의 성을 이어받은 장남은 부인의 속삭임에 넘어가 집안의 상징인 마인(馬印, 우마지루시)를 빼앗아 오려고 한다. 이로 인해 가신들 간의 다툼이 벌어져, 히데토라는 장남의 가신 한 명을 활로 쏘아 죽인다. 장남은 아버지를 불러, 앞으로는 모든 것을 영주인 자신의 의지에 따르도록 핍박한다. 격노한 히데토라는 부하들을 이끌고 차남이 있는 성으로 가지만, 장남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둘째 아들은 부하를 내치고 아버지 혼자서만 성으로 들어온다면 받아들이겠다고 통보한다. 실의에 빠진 히데토라는 어쩔 수 없이 주인을 잃고 빈 성이 된 셋째 아들의 성에 들어가게 된다.  

거기에 장남과 차남의 대군이 들이닥쳐 성은 불타고 히데토라의 부하들과 측실들은 모두 살해된다. 거기에 장남과 차남 간에 내분이 일어나, 장남은 차남의 부하에게 죽음을 당한다. 계속되는 골육상쟁에 히데토라는 거의 미친 사람이 되어 성을 떠난다. 그리고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저질러온 잔학무도 함의 업보에 떨며 마치 귀신처럼 황야를 떠돈다.


남편을 잃는 장남의 처는 이번에는 차남을 농락하여 차남에게 부인을 죽이고 자신을 정실로 맞아들이라고 압박한다. 이러한 와중에 히데토라를 구하기 위해 셋째 아들이 차남에게 쳐들어온다. 형제간의 싸움의 와중에 히데토라의 숙적인 아야배(綾部軍) 가문이 쳐들어오고, 이러한 상황에서 셋째 아들은 겨우 아버지인 히데토라를 찾아내고 부자는 화해를 한다. 그러나 이 순간 셋째 아들은 차남의 부하가 쏜 총탄에 맞아 죽고 만다. 이러한 골육상쟁의 뒤에는 히데토라에 의해 집안이 멸망당한 장남의 처의 계략이 숨어 있다.


아들과 성을 모두 잃어버린 히데토라는 눈앞의 비극에 몸서리치면서 숨을 거둔다. 그때까지 히데토라를 따르던 두 부하 가운데 하나인 피터는 “신이나 부처는 없는 건가?”라고 부르짖으며 하늘을 원망하자, 다른 부하인 단고는 “서로 죽이지 않으며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의 어리석음은, 신이나 부처도 구할 수가 없다.”라고 달랜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은 책으로 읽었을 뿐 영화나 연극으로 감상한 적은 없다. 그렇지만 이를 모티브로 만든 영화 <란>을 보고서는 정말 책이 주는 감동보다는 영상매체인 영화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반쯤 미친 상태에서 맨발에 산발을 하고 광야를 헤매는 히데토라의 모습에서 리어왕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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